나의 쓸모를 찾아서 증명하기
‘이 물건이 지금 내게 필요한가?’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조건은 필요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어도, 내게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집 정리를 하며 버릴 것을 고민할 때도 마찬가지다. 살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만 더 이상 내게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 버려진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게 들리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조직에서 내게 요구하는 일이 내가 원하고, 잘하는 일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빛나지 않은 일, 고생해도 별로 티 나지 않는 일, 어떤 팀이 맡아도 이상하지 않은 애매한 영역에 있는 일 등 달갑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감당해야만 한다.
현 직장에서 3년 반 정도 일하는 동안 4개의 직책을 거쳤다. 입사했을 땐 커뮤니티 매니저, 두 달 뒤에는 브랜드 컨설턴트, 여섯 달 뒤에는 콘텐츠 팀장, 그리고 현재는 마케팅 매니저. 내 역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 단계별로 나의 쓸모를 바꿔왔다.
IT 스타트업인 현 회사는 메타, 구글 등의 광고 매체를 API 기술로 연결하여 광고 집행과 데이터 분석을 한곳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솔루션을 서비스하고 있다. 다양한 광고 매체를 한 곳에서 연결하는 것이 경쟁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동 매체를 늘리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우리 플랫폼에 카카오 광고를 연동했을 때의 이야기다(카카오톡 채팅창 목록 상단에 보이는 광고인 비즈보드가 론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이제 우리 플랫폼에서 메타, 구글뿐만 아니라 클릭 몇 번이면 카카오 광고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고 대고객 홍보를 했다. 앞에서는 우리 플랫폼에서 이미지를 업로드하고, 광고 카피를 입력하면 바로 카카오 광고 관리자에 등록되어 광고가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객이 카카오 광고를 론칭하면, 직원이 신규 카카오 계정을 생성하고 이미지와 카피를 일일이 등록하는 수작업이 이어졌다. 카카오 자체에서도 광고 상품을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제3자 플랫폼에서 카카오 시스템에 접근하여 광고를 on/off 할 수 있게 하는 API 기술을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카오 광고 연동은 처음이다 보니 버그도 많았고, 이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내부에 따로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다른 멤버들은 이미 기존에 맡은 업무들로 인해 이걸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당시 나는 입사한 지 5개월도 안 되었을 때인데, 업무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상태였기도 하고 고객의 광고 성과와 우리 브랜드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urgent/important 한 업무라고 생각해서 '나라도 봐야겠다!' 다짐했다.
매일 일정 시간을 투자해서 들여다보니 역시나 버그가 매일 발생했고, 변경된 예산 미반영, 데이터 수치가 안 맞는 오류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렇게 발견한 버그를 개발자에게 공유해서 트러블 슈팅하면서, 내부 다른 직원들도 숙지하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다큐먼트를 만들어서 공유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잘해도 크게 티 나지 않는 업무인데도 주도적으로 나서서 열심히 한 이유가 있다. 비즈니스 발전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케팅 백그라운드가 없는 제너럴리스트로 입사하고, 직무가 바뀌어 광고 운영 업무를 배우면서 담당하고 있다 보니, 내가 잘하는 분야를 찾아 100% 역할을 해내면서 가치를 입증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카카오 광고 론칭으로 찾아온 내부 혼란은 나에게는 기회였다.
매일 이슈를 부딪히면서 해결하다 보면, 회사 내에서 카카오 광고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최소한 회사 내에서는 카카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보기로 했다. 실제 얼마 되지 않아서 카카오 광고 관련된 이슈가 발생하면 팀원들이 나한테 질문을 하고, 슬랙에서 나를 태그하기 시작했다. 아직 네이버, 메타 광고에 비해 덜 알려진 카카오 광고를 홍보하기 위한 콘텐츠를 기획해서 제작하기도 했다.
카카오 광고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바로 전문가다.
시간이 지나고 카카오에서 더 많은 API 기술을 오픈하면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던 작업들이 자동화되었다. 자연스레 한때 카카오 광고 연동 및 버그 해결 전문가를 자처했던 나의 역할도 사라졌다. 대체되었더라도, 주도적으로 나서서 회사의 이익을 보전하려고 노력하고 내부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값진 경험이었다.
역할은 사라졌어도, 또 다른 역할을 스스로 찾아 파고들 열정과 실행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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