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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ug 14. 2024

퇴사를 하면서 얻은 교훈

셀프 오프보딩

생퇴사를 통보하고, 2주 뒤로 퇴사일이 정해졌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타 팀 동료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렸다. 협업할 일이 잦았던 A와의 식사 자리에서 그가 나의 퇴사 이유를 가장 궁금해할 것 같았다.


“궁금하신 것 있으면 다 물어보세요”


그러니 A는 이유도 묻지 않고 "제가 재쇤이었어도 퇴사했을 것 같아요"하는 것이 아닌가.  


슬랙 채널을 통해 주요 업무와 의사소통이 진행되다 보니 타 팀에서도 얼마든지 우리 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최근 나를 힘들게 했던 불합리한 사건들에 대해 다 파악하고 있어 살짝 놀랐다. A와 친한 다른 동료와 함께 슬랙을 보면서 분개하는 일이 많았다고. 나를 퇴사로 이끌었던 괴로운 과정에서 나의 억울함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어 뭔가 통쾌하고 후련했다.




셀프 오프보딩(Offboarding)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그런 사람들과 일하기가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나는 무고하기만 한가?


그건 아닐 것이다. 퇴사 원인을 남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없다. 나는 문제없이 잘했는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 고생하다가 퇴사한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과정 속에서 내가 100%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HR 영역에는 오프보딩(Offboard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입사하는 신규 직원을 맞이하고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절차가 온보딩이라면 오프보딩은 정반대로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과정 속에서 하는 면담, 인수인계 등 퇴사를 위한 절차다.


ENFJ들의 특징인 것 같은데, 나는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면서 성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인가 싶어 심리적으로 괴로웠기도 하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없다면, 발전 또한 없기에 이번 퇴사 과정도 나답게, 셀프 오프보딩을 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B2B 마케터라는 직업인, 직장인으로서 나의 부족했던 점은 무엇이고, 그다음 회사에 간다면 어떤 점들을 개선하면 좋을지. 다시 이 회사에 합류했던 1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이 상황이 어떻게 조금은 나아졌을지.  


퇴사 과정을 통해 배운 것


1. 제품, 고객에 대한 이해를 더 탄탄히 하자


사실 제품과 고객에 대한 이해는 마케터가 가져야 할 소양 중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나 또한 내가 제품과 고객에 대해서 당연히 이해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표면적으로 이해했을 뿐 심도 있는 분석과 고객의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


제품과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마케팅 콘텐츠 기획이 뾰족해지지 않는다. 두루뭉술한 콘텐츠는 읽었을 때 큰 임팩트나 감동이 없고 차별화되지 않는다. 웹사이트 기획, 블로그 아티클, 서비스 소개서 등 결국 마케터의 손끝에서 빚어내는 모든 콘텐츠는 제품과 고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계속 부메랑처럼 맞닥뜨리는 문제다.


레퍼런스 조사를 하다가 기깔나게 잘 만든 탁월한 콘텐츠를 발견하면, '이 팀은 제품에 대해서 정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고객의 문제 해결에 진심이구나'절로 생각하게 된다. 고민의 깊이만큼 뾰족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그 뾰족함으로 넘쳐나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차별화되며 잠재고객을 쿡쿡 찌르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전 회사에서 일할 때 제품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경쟁사에 비해 기능이 한참 떨어졌고, 그 격차를 따라잡기 위한 내부 개발 팀의 역량이나 의지도 떨어졌다. '우리 제품은 짱이야!'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내가 만드는 콘텐츠에도 힘이 실리기 마련인데,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마케팅과 영업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찾자면 정말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보면 경쟁사 대비해서 우리 제품/서비스가 더 경쟁 우위인 영역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어필하는 것이 마케터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2. 빠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위한 디테일을 포기하자 말자


누군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답은 '빠른 실행력'이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전전 회사의 상사는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뛰어나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 기획의 퀄리티가 최우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항상 평균 이상의 퀄리티는 나온다'는 피드백을 주셨기도 했다.


내게 부여된 업무가 있다면 주어진 목표를 기한 내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집중을 하거나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굴러가는 업무의 플로우를 조율한다. 단점이라면 그 과정에서 시야가 좁아져서 주변의 다른 일들을 잘 보지 못하거나, 기한 준수를 위해 퀄리티를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수정/제안 요청에 대해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상사,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건 반영하지만 전체 프로젝트의 일정에 지장을 줄 정도의 일이면 내 선에서 판단을 해버리고 양해를 구한다.


'그 의견은 좋은데, 현재 프로젝트 일정을 준수하려면 이번에는 반영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이번 Scope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 Scope때 반영하는 것이 어떨까요?'


사실 마케팅에 정답은 없고, 의견이 너무 다르기에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쳐내고 속도감 있게 앞으로 갈 줄 알아야 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참 어렵다. 하지만 속도와 퀄리티 사이에서 그 어느 하나 쉽게 타협하지 않고 줄타기를 잘할 줄 아는 것도 시니어 마케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마해야 하는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3. 상사 Manage Up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나의 또 다른 장점은 책임감인데, 애매한 Gray zone에 있는 일도 조금이라도 '이건 마케팅의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면 내 업무로 가져오거나,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는 태도가 기본 장착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책임감이 오히려 독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짊어지고 이끌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모든 걸 내가 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라는 것이 잘 굴러갈 수 있게 조율하는 것이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상사, 다른 동료들이 해줘야 하는 일’로 업무를 분리해서 핸들링하고 상사, 경영진을 개입시켜 행동에 나서게끔 매니지업 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다.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사전에 촘촘히 소통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업무를 착수하기 전이나 진행하면서 우려되거나 잘 안 풀리는 점이 있다면 보고 미팅 전에라도 먼저 커뮤니케이션하고 조언을 구하도록 하자. 그 사이 해결을 하거나, 아니면 결과물의 기대치 자체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더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퇴사는 나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 계기였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진 것 같다. 회사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은 뒤로하고, 내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떼어 가져가려고 한다. 마케터로서 넥스트 레벨로 나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했던 경험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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