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사, 새로운 균형을 찾아서
지난 6월 3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ESTJ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화성시 동탄동의 주민이 되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결혼과 이사라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삶에 와닿는 파장이 크다. 겉으로는 잔잔해보이지만 실상은 쓰나미급 파도의 한가운데서 적응 중인 7월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우선 집이 너무 좋아졌다. 8평에서 25평으로, 원룸에서 쓰리룸으로, 빌라에서 아파트로. 인테리어도 내 취향 듬뿍 담아 아늑한 우드 앤 화이트 톤의 집으로 완성시켰다. (궁금하다면 랜선 집들이!) 여기에 널찍한 소파와 난생 처음 써보는 식기세척기와 건조기까지. 갑자기 삶의 질이 너무 업그레이드 되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서 편안히 티비를 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원룸에 살았을 때는 그렇게 귀찮던 청소가 새로운 집에서는 너무나 재밌다. 널브러진 물건과 쓰레기가 눈에 보일 때마다 바로 정리하고, 부지런히 청소기를 밀고 닦는다. 상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때 쾌감을 느낀다. 지금은 나와 남편 두 명이지만, 나중에는 아이까지 함께 살아갈 새로운 터전인만큼 잘 관리해서 오래오래 이 상태를 유지해야한다느 책임감을 느낀다.
다만, 몇 걸음이면 모든 것에 다 닿을 수 있는 8평 자취방에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오니 단점도 있다. 동선이 길어져서 출근 준비를 하거나 물건을 찾는데 시간이 더 많이 든다. 평생을 단독주택과 빌라에서만 살아오다가 난생 처음 아파트에 입성했는데 월, 목요일이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로 지정되어 있는게 생소했다. 그 전에는 집 앞에 있는 재활용 스테이션에 바로바로 배출했는데 말이다.
살기 좋은 신도시로 유명한 동탄은 모든 시설이 신식이고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콘크리트 공화국 같은 이곳에는 아직 크게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신도시답게 대형 상가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큰 아파트 단지로 주거 구획이 나눠진 구조는 배타적인 느낌마저 든다. 기분 전환을 위해 예쁜 카페, 맛집을 가려면 동탄 내에서도 차로 이동이 필수적이다. 구도심 특유의 좁은 길,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 서로 다른 건축 양식, 하지만 그 속에서 걷다가 우연히 아기자기한 상점이나 카페, 식당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기는 힘들다.
집안은 참 좋은데 집 밖으로 나가면 고생 시작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서울의 동쪽, 성수에 자리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동네인 영등포에서도 한 시간 거리로 먼 편이었는데 더 아득하게 멀어졌다. 통근 시간은 약 1.5~2배 늘어났다. 버스와 지하철 시간을 잘 맞추면 편도 1시간 30분이지만, 광역 버스 시간을 잘 못 맞추면 2시간이 되어버릴 때도 있다.
처음으로 회사에서 동탄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잠실역 환승센터에서 버스를 타야했는데, 간발의 차로 놓쳐버렸다. 그 다음 버스가 '29분 뒤 도착'이라는 알림을 보는데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 날은 땡볕에서 출근 버스를 기다렸는데, 예약을 해야 만 이용할 수 있는 버스라며 승차를 거부당했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마다 화가 잔뜩 나있는 상태다.
요즘 유독 식욕이 넘치고 잘 먹는다. 먼 거리를 오고가며,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나도 모르게 많이 쏟고 있는 것 같다.
다사다난했던 결혼 준비를 끝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으며 드디어 안정감을 얻었는데 동시에 무료함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라는 사람은 일을 벌리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것일까.
결혼과 이사로 기존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또 다른 새로운 균형을 찾아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추억을 쌓고,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