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장악한 AI에 대한 단상 (1)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개발자와 비개발자, 디자이너와 비디자이너를 나누던 경계가 사라지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능력자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 모든 것을 AI에게 맡기는 것이 너무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생각조차 못하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미국 빅테크 기업 메타는 직원들의 마우스, 키보드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AI 에이전트 학습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일하는 것이 결국 AI 학습의 양질의 데이터가 되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아는 직원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 기술 발전의 끝이 디스토피아가 될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AI 시대, 거대한 흐름에 끌려가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드는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지게 되어 3편의 글로 나누게 되었다.
목차
1. AI 능력을 장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밥그릇 싸움이다.
2. 공들여 배운 지식의 학습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3. 생산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주의력이 병목이다.
생성형 AI 도래 초반만 해도 'AI가 나를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Chat GPT가 쓴 글과 나의 글쓰기를 비교하며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조금 더 낫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AI와 실력을 겨루는 건 무의미해졌다. 내 작문 실력을 일찍이 넘어섰기 때문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리서치, 사고, 기획, 인사이트 도출 등 화이트칼라의 주요 업무에서 압도적으로 인간을 능가한다.
이제는 대결 구도가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사람 VS AI를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의 모습은 <먼저 온 미래> 책에서 장강명 작가가 조명한 2016년 알파고 이후의 바둑계의 달라진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정아 5단은 그런 바둑계의 분위기를 설명하며 '그냥'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 그런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 '더 공부해야지, 더 나아져야지' 다 지금 그렇게 가고 있어요. Al에 대해서는 그냥 그 존재를 인정했고, 얼마만큼 내가 AI를 따라 둬서 수준이 높아질 것인가 하는 생각이죠. 어차피 경쟁은 사람이랑 하니까요. - ⌜먼저 온 미래⌟ 중에서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했을 때, '이제 바둑은 끝인가?'라는 회의와 불안에 휩싸였지만 그런 충격도 잠시일 뿐 모두가 빠른 속도로 AI를 받아들였다.
바둑 AI 프로그램 도입 이후 저마다 AI가 제안하는 포석을 두면서, 기존 바둑의 묘미였던 기사마다 가진 뚜렷한 스타일(기풍)이 사라졌다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도 많았다.
입문의 장벽이 낮아지며 아마추어 선수들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상대적으로 바둑에서 뒤처졌던 미국, 유럽 등 서구권에서도 실력자들이 등장했다.
또한 AI는 인간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창의적인 수를 두었고, 덕분에 기존에는 정답으로 인지했던 기존의 격언과 수법이 인간 스스로 한계에 가두었던 꼴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 또한 AI를 적극 업무에 활용한 뒤부터 일이 재밌어졌다고 느낀다.
우리가 '일을 하기 싫고 어렵다'라고 느끼는 건 주로 아래 3가지에 해당될 때다.
-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
- 0에서 1을 창조하는 것(초안 생성)
- 단순 반복적인 지루한 일을 계속하는 것
그런데 AI는 이 분야에서 정말 최적의 파트너다.
아이디어와 고민이 머릿속에 떠오른 시점과 실행하고 결과물 도출 사이의 간격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감을 느끼는데 AI 덕분에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자마자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비개발자가 바이브 코딩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웹사이트 디자인도 뚝딱 만든다. 일반인이 AI를 활용해서 소장을 쓰고,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 영역을 나누던 경계는 무너지고, 우리 모두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간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AI 시대, 제너럴리스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