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불안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뤄냈구나
“2019년 10월 14일”
현 직장이자, 내 커리어에서 2번째 자리를 꿰찬 회사에 첫 출근한 날이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가입했던 신용카드(지금은 탈회한 카드) PIN 번호를 1014로 지정했을 정도로 의미 있고 기억하고 싶은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마일스톤이었다.
학부 전공은 정치외교학, 27살 늦은 나이에 첫 취업한 회사에서 맡은 직무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매니저. "네 전문성이 뭐야?"라는 질문에 "음... 글쎄요" 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너럴리스트 중의 제너럴리스트였다. 첫 번째 회사 근무 일수를 딱 1년을 채운 시점, 그러니까 아직 입증된 성과도 없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뚜렷하지도 않은 상태였을 때 정말 타이밍 좋게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현재의 회사로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벌써 달력의 열한 장이 지나 2020년 10월이 되었다. 일이 재밌고, 주말에 1박 2일 함께 놀러 갈 정도로 주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훅 지나간 것 같다. 매일 일기를 쓰고, 평소에도 분기별, 한 해 회고를 하는 습관이 있는지라 2020년 10월 14일이 다가오는 시점,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회고를 놓칠 수 없었다.
현재 내가 다니는 A 회사는 인공지능 기술 기반 온라인 광고 자동화 서비스를 운영하는 애드테크(adtech) 스타트업이다. 온라인 광고를 하고 싶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광고 대행사를 이용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한 1인 기업, 소기업을 초기 타겟으로 하여 서비스를 론칭하였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고객 커뮤니티 매니저(Customer Community Manager)였다. 우리는 모든 고객을 비대면으로 응대하기 때문에, 광고주를 대상으로 한 세미나 개최 등 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서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고, 신뢰 관계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새로 생긴 직무였다. 사실 첫 번째 회사에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면서 스타트업을 위한 각종 커뮤니티 이벤트 기획 및 집행을 하는 것을 눈 여겨보신 대표님이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직무였다.
하지만 이 직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오프라인 행사는 분기별, 반기별 1회 등 뜨문뜨문 진행하기 때문에 데일리 업무로 행사 기획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 업계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A라는 행성에 도착한 초기 목적을 상실한 뒤부터는, 조직에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그때그때 필요한 옷을 맞춰 입었다. 다행이게도 내가 잘하는 것과 그 당시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의 합이 좋아 점점 나의 취향과 체형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직무가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공식 직무는 3번이나 바뀌었다. 행사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에서 시작하여, 브랜드 기반 광고 제작 및 성과 컨설팅을 주로 하는 브랜드 컨설턴트를 거쳐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페북, 구글 등으로 노출되는 클라이언트의 광고 콘텐츠 및 우리 회사 홍보를 위한 각종 콘텐츠를 만드는 팀을 총괄하는 콘텐츠 팀장.
타겟 고객의 니즈와 원츠를 파악하여 이를 매력적인 문장으로 만들어 공감을 이끌고, 나아가 고객의 특정 행동까지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재밌다. 이제 만 2년차 직장인,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주니어에게 팀장이라는 자리가 주어진 것이 약간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초긍정 행동주의자. 나만의 엣지를 찾는 과정에 있습니다."
작년 11월 즈음 등록한 내 페이스북 프로필 소개 문구다. 지금은 "초긍정 행동주의자"로 수정되어있다. A 회사에서의 1년, 나만의 엣지는 이제는 좀 찾은 것 같다.
1. 사적인 영역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발전은 자연스럽게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 글쓰기
내가 사내에서 본격적으로 블로그 글, 뉴스레터 제작 등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한 시점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과 겹쳤다. 브런치로 시작한 습관화된 글쓰기가 내게 좋은 영향을 미쳐서 광고 카피를 쓸 때나, 블로그 글을 쓸 때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써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어떤 글감을 가지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아이디어도 쑥쑥 잘 떠올랐다.
글을 쓰는 것은 스포츠, 언어나 요리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다고 느낀다. 충분한 시간 및 좋은 재료가 주어진다고 해도 평소에 요리를 안 하는 사람이 레시피만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기 힘든 것처럼, 글을 평소에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 갑자기 특정 콘텐츠가 필요하고,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짜임새 있고 와 닿는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2. 아침 시간의 활용이 내 발전의 8할
A 회사의 출근 시간은 여느 회사보다 1시간 느린 10시다. 나는 해가 사라진 어두운 밤에는 왠지 모르게 의욕이 솟아나지 않고, 시계가 자정을 지나자마자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당연히 출근 전 오전 시간을 어떻게든 자기 계발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대폰 사진첩으로 지난 1년간 찍은 사진을 보는데, 가끔 나태해진 순간이 더러 있었어도 참 꾸준히 출근 전 시간을 내어 자기 계발 활동을 해왔다는 것에 놀랐다. 입사 초기 3개월 동안은 매일 출근 전 디지털 마케팅 강의를 들으며 부족한 지식을 채웠고, 조깅&필라테스&요가 등 운동을 하고, 따뜻한 빵과 핸드드립 커피로 속을 든든히 채우면서 독서를 했다. 시간이 나면 요리도 해서 도시락도 쌌다.
이렇게 알차게 보냈던 출근 전 아침 시간이 내 발전의 8할을 차지하는 시크릿 소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람 소리를 듣고 계획한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요가 및 명상을 하고, 상쾌하게 샤워 후 재즈 음악을 들으며 오븐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빵을 먹으면서 독서를 하고, 남는 시간에 마케팅 관련 뉴스까지 찾아보고 집을 나서면 전쟁을 앞두고 전지훈련을 받은 것처럼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미 그 하루의 중심은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3. 회고의 밑바탕이 되는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회고는 내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션에 기록한 회의록 및 메모, 일기 등 그 당시의 상세한 기록을 통해 돌아보니 확실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나거나, 고민 많던 개별적인 하루들이 모이고 합이 되어 그 당시 나를 지배하던 불안감, 정체 등의 큰 흐름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이 어찌나 일관적인지, 입사 초기에 답답해했던 스스로의 단점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임을 깨닫는다.
첫 번째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고, 아직 구체적으로 나의 직무가 뚜렷하지 않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내내 불안했던 지난 1년, 그래도 이렇게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뤄냈고, 나의 업무는 더욱 확장되었으며 동시에 뚜렷해질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려본다.
또 다른 챌린지와 성장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A 회사에서의 2번째 해. 내가 더 성장해서,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