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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Oct 13. 2020

초긍정주의자의 일기장 엿보기

뽀시래기 사회초년생을 단단하게 해준 문장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소주 한 잔의 힘을 빌리거나, 기름진 음식을 폭풍 섭취하거나 또는 여행&쇼핑 등 소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나는 굉장히 가성비 좋은 극복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글쓰기다. 생각이 복잡하고, 힘들수록 밖으로 감정을 발산하기보다는, 내 감정 속으로 침잠하려는 본능이 꿈틀댄다. 그럴 땐 나는 일기장을 꺼내 들어 차분히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다. 단지 몇 문장 적어 내려갔을 뿐인데, 이상하게 감정이 재빠르게 전환되고,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솟아오른다. 간도 건강하고, 몸무게도 지갑도 멀쩡하니 정말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만 1년을 맞이하게 된 기념,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회고를 했다. 주로 일기에 쓴 기록을 바탕으로 회고를 진행했는데, 내용의 거의 80%가 일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에서 있었던 그 날의 일, 사람, 상황 등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일기에 썼던 문장 중에 비관과 포기의 늪에 빠지지 않게 나를 단단하게 해 줬던 문장 몇 개 발췌하여 정리해봤다. 그 당시 나를 사로잡은 고민과 불안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어 긍정적으로 마음에 새기는 작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느 회사에나 존재할 법한 불안하게 흔들리는 뽀시래기 사회초년생이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로 정신 승리한 자서전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주면, 어느새 당신도 모르게 얼굴에는 느지막한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른다.




2019.10.14

내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

마케팅 지식이 전무한 내가 처음에 온라인 상담창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를 하면서 간절히 느낀 내용이다. 어디 검색하면 나오는 그런 내용을 대신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절박한 사장, 마케터의 입장이 되어 광고 관리자에 있는 여러 기능을 요리조리 써보고,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노하우와 태도를 가지는 것이 내 직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2019.10.15

전 회사 연봉보다 크게 오르지 않아서 아쉽지만, 일 년에 수시로 있는 연봉 상승의 기회를 노리자. 당장 파이의 크기보다 앞으로 더 커질 기회를 생각하자.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다녀온 후가 다른 사람의 간사한 마음처럼, 처음에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제자리걸음인 연봉에 대한 아쉬움과 욕심이 커졌다. 그러나 마케팅 지식도 없는 내게 이렇게 실전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어딨냐며 위안을 하며 노력하고 기다렸다. 실제로 입사 5개월 만에 생각보다 빠르게 연봉이 한 단계 상승하는 기회가 왔다.   


2019.11.08

두통 때문에 머리 아픈 와중에도 퇴근하는 내내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조직 내에서 내가 하는 역할을 명확히 할까, 기존에 없던 것을 기획해서 성과를 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까.

우리 회사의 업무 체계는 약간 독특한데, 개인마다 업무 분장이 뚜렷하게 되어 있기보다는 50% 정도는 모두가 공통적인 업무를 하는 그야말로 멀티 태스킹이다. 나보다 경력이 많고, 당연히 일도 잘하고 능력도 좋은 사람이랑 공통의 일을 하면서 스스로 비교가 많이 되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을 떠나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강점 및 노력으로 조직에서 인정받고,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나의 고민이었다.


2019.12.17

일 잘하고, 인정받는 동료들을 보며 '왜 나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나', '왜 나는 그렇게 잘하지 못하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2년 차도 안 된 뽀시래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Long run으로 가기 위해서는 너무 혼자 조급해서 빨리 지치지 않아야 한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시기라고 생각하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챙기면서 나만의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면, 나중에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모든 면에서 똑부러게 일을 너무 잘하는 동료 G, 여러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 M. 그들에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내가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배울 점 많은 훌륭한 팀원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당장 내가 그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레 나의 것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꾸준히 그들이 잘하는 점이 무엇인지 캐치하고, 조금씩 따라 할 수 있도록 하자.

위의 일기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인데, 연차가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의 업무를 하다 보니 내 스스로가 너무 작게 보이고 무능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괴로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선임들이 쌓은 경력과 연차가 있는데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했고, 회사에서도 아직 신입인 나를 같은 잣대로 기대하고 평가할 리 없었다. 너무 욕심 내지 말고, 현재 맡고 있는 일을 잘하고, 동료로부터 본받을 점을 적극 흡수하면 언젠가는 나도 그런 멋진 선임이 되는 미래가 오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2020.02.10

카카오 광고에 대해서는 우리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바로 전문가가 되는 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온라인 광고 매체를 기술 기반으로 한 번에 연결하여 광고 집행 및 결과 확인의 편의를 도모한다. 올해 2월 카카오 광고 매체가 새로 추가되었을 때,  API가 제공되지 않아 사람이 수기로 광고를 등록해야 했으며, 너무도 엄격한 카카오의 광고 심사 정책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정말 멘붕이었다. 다른 선임들은 다른 일로 너무 바빴고, 상대적으로 덜 바쁜 내가 카카오 광고를 전담하게 되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듯 일단 하나하나 모든 것을 담당하면서, 까다롭기 까다로운 카카오 광고 정책을 정리하여 내부적으로 공유하였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버그도 리포트하여 개선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 순간에는 선임도 대표님도 카카오 광고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생기면 자동으로 나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남들이 아직 손대지 않은 미지의 분야를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나름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2020.08.03

요즘은 내가 일하는 속도보다 변하는 주변 환경,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속도가 나보다 빨라서 뭔가 벅참을 느낀다. 하루 8시간 정해진 시간 근무만을 통해서는 (아무리 집중해서 일한다고 해도) 따라잡기는 힘들 것 같다. 주말 또는 야근을 통해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서 격차를 벌려야겠다. 이렇게 벌려놓은 격차는 한 동안은 괜찮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나를 바짝 뒤쫓고 나는 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세상만사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라는 것은 다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야근 및 주말 근무가 너무 싫지만 야속하게도 나를 둘러싼 세상의 흐름은 나보다 더 빨라서, 쫓기지 않으려면 남들이 쉬는 시간에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격차를 벌릴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다. 좋은 싫든 이왕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앞으로 달려서 나아가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도, 나의 미래에도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08.04

나 스스로도 너무 부족한데, 내 밑에 누가 들어온다니 부담도 되면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뭐 결론은 내가 배로 더 열심히 해서 밑의 팀원들이 조직에 잘 적응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성취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잘 조절하고 가이드를 해야지. 정말 우리 회사를 널리 알리고, 브랜드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퀄리티 있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내가 방향을 잘 잡도록 해야겠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는 것이 그만큼 나를 믿어준다는 조직의 사인이기도 하니 감사하기도 하다.
단기 인턴으로 근무한 P가 내일이 마지막 근무라서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다. 처음에는 센스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대략 난감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맡은 업무를 너무 잘해서 기특하다. 처음 P가 만든 영상 보고 심각하다 판단하여 차라리 내가 만들지 생각했던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니어들에게는 그들이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배움의 기회들이 주어져야 한다.

입사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시점, 조직 개편으로 콘텐츠 팀을 이끄는 자리를 맡게 되었다. 혼자 일하거나, 부여받은 일을 하는데 익숙했는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치고, 맡겨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난 아직도 뽀시래기인데...' 누군가의 밑에서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한 편으로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왕 기회가 주어졌으니, 사람도 잘 챙기고, 좋은 성과도 내면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해진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2020.09.26

겸손할 줄 알자. 포용할 줄 알자. 오늘 대화를 통해 깨달은 내용이다. 원래도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라는 사람이 뚜렷해지면서 늘어난 나의 확신에 반비례해 타인에 대한 관용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교만해지고, 나에게만 너무 관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했다. 자기 확신이 지나쳐 오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나를 낮추고, 너무 치켜세우지 말고, 나와 다른 사람도 포용할 줄 아는 그런 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일 년, 이룬 것 보다 이뤄나가야 할 것이 더 많은 시점.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나답게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보자고 다짐한다.


Photo by KAL VISUA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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