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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ug 04. 2021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취준생일 때도 알았더라면

취준생을 위한 목소리 멘토가 되다.


지난 4월 브런치를 통해 한 제안이 들어왔다.

 

오직(Ozic)이라는 취준생을 위한 직무 관련 콘텐츠 플랫폼에서 나를 오디오 콘텐츠의 멘토로 섭외하고자 하는 제안이었다. 에디터님이 작년부터 꾸준히 써오고 있던 직장인 성장일기 매거진에 수록된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 듯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의 봉사활동, 일상 에세이를 다루는 다른 매거진에 비해 소소한 반응만을 유지해오던 직장인 성장일기 매거진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기회라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일반 강의, 글 형태의 콘텐츠가 아니라 오로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오디오 콘텐츠라는 점이 신경이 쓰였다. '유명한 사람도, 잘 알려진 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과연 목소리만으로 내 콘텐츠가 타겟에게 제대로 닿을 수 있는 걸까?'


그래도 큰 고민 없이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포장하고 오디오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나중에 어떤 흑역사로 되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경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미 가슴에서는 결재 사인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일이기에 머리로는 내 리소스 사용을 합리화할 이성적인 이유를 만들어냈다.


크게 3가지 이유를 찾았다. 우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고, 사내에서도 멀티태스킹 하는 업무 문화를 장려하다 보니 고객 광고 관리부터 자사 마케팅, 그리고 웨비나 등의 이벤트 기획까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이번 오디오 콘텐츠 제작을 계기로 스스로의 업무를 되돌아보면서 명확히 내가 하는 일이 무엇들이 있는지, 그 안에서 과연 나의 전문성은 뭘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케터 직무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서류 및 면접 심사 준비에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때 나도 취준생 시절, 지원서 작성 및 면접 준비를 할 때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직무 관련 정보에 한계가 있어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실무자로서 일하다 보니 취준생 시절 막연히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막상 현실에서의 일상 업무, 요구되는 스킬 및 태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느껴서 이 간극을 좁혀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외에도 스타트업이라는 선택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스마트폰 보급화와 모바일 앱 서비스의 급격한 성장으로 토스,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등의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기업보다 매력적인 취업 시장으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업무를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함으로써 주체적인 태도로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 등의 장점을 전달하고 싶었다.

 



총 15강으로 이루어진 질문 리스트를 적어 내려 간 무려 A4용지 20장 분량의 스크립트가 완성되었다. 내가 하는 일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 고객인 취준생의 눈높이에 맞춰 이 일은 어떤 것인지,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진행되는지 그리고 왜 이 일이 중요한 것인지 등 쉬운 단어로 설명하는 등 익숙한 데일리 업무를 낯설게 해체하여 작성하는 과정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마케터라는 직무에 대한 애정도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마케터의 매력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 주행 등 급격한 기술의 변화로 인해 없던 직무도 생겨나고, 있었던 직무는 사라지는 변화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마케팅 직무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가지고 있고, 기업들은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제품/서비스를 생산하여 판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케팅 직무는 어느 산업군, 회사 규모던 꼭 필요한 직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내 손 끝에서 빚어진 모든 문장들이 주옥같이 소중하지만, 특히 내 마음에 든 내용은 직무 파트를 배제하고 마지막 강의에서 취준생들에게 전한 나의 진심 어린 말이다.


문과생들에게는 가뜩이나 어렵고 치열하던 취업이 코로나로 인해 아예 얼어붙으면서 더욱 어렵게 되었다. 약 5개월의 취업 준비생 시기를 거치면서 긍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나도 시도 때도 없이 무너질 만큼 너덜너덜해졌는데, 이보다 더 긴 시간을 감내하며 이미 너무나 충분하고 훌륭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자격증, 인턴, 공모전 등 스펙 한 줄 추가를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후배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건 없지만 너무 괴로운 이 순간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로하면서 나의 경험이 모여 만들어진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여러분께 제 직무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일을 이제 마무리하려 합니다. 저도 한 때 정말 힘든 취업 준비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취업 준비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길었던 휴학 기간으로 또래 여자 동기들에 비해 늦었던 취업, 정치외교학과 단일 전공. 제가 가진 조건들은 이미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지원서 작성, 그리고 번번이 이어지는 서류 광탈, 수포자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인적성 평가 등 싫지만,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제 스스로가 과거에 한 선택, 제가 거쳐온 경험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왜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지 않았을까’, ‘왜 취업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1년이나 다녀왔을까’, ‘왜 대기업 인턴십을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경험이 모여 현재의 저를 구성하는 것인데 과거의 선택과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하니, 자존감이 낮아지고 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같아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은 이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온 저를 처음으로 찬찬히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구나’. 처음에는 자기소개서 문항을 작성하면서 나의 장점과 단점 등 스스로를 들여다본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며 저는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나와 맞는 곳은 찾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너무나 가고 싶었던 기업의 면접에서 떨어져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분명 다른 기회를 통해 나와 더 잘 맞는 직무, 배울 점이 많은 동료와 선배들이 있는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취준생 여러분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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