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직장 3주년을 맞이하며
얼마 전 현 직장에서 근속 만 3년을 찍게 되었다. 이로써 나도 어느덧 직장인 5년 차.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5,6년 차인 선배들을 보면 고민 따위는 없어 보이고 막연히 멋있어 보였던 것 같은데. 막상 내가 그 시기에 이르니,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며 앞으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헤맬 뿐이다.
얼마 전 구글의 디렉터 정김경숙님이 쓴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라는 책을 읽었다. 직장 생활을 지속하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주는 책이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난 순간 직장인도 연차에 따라 KPI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통 직장에서는 40대 중견 관리자가 되고 나면 내 팀도 챙겨야 하지만 다른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늘 파악하고 어떻게 협업을 해야 윈윈 할 수 있는지 등을 큰 그림으로 그리면서 생각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것이 중견 관리자 혹은 C레벨이 지녀야 할 경쟁력인 것이다.
모든 직무가 마찬가지겠지만,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KPI를 많이 다룬다. 업계에서는 KPI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1년 차: 브랜드 인지도 증대
2-3년 차: 구매 증대 및 충성 고객 확보
3-5년 차: 제품 및 고객군 확대를 통한 브랜드 확장
예를 들면 이렇다. 모든 비즈니스가 마케팅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KPI는 ‘매출’ 일 것이다. 그러나 최상위 목표인 매출을 목표로 모든 마케팅 캠페인을 운영하면 재앙이다.
우선 신생 브랜드라고 한다면, 무조건 처음부터 구매량을 증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먼저다. 어느 정도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브랜드 신뢰도가 쌓이면 이는 구매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상품을 둘러보고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의 웹/앱의 UI/UX를 최적화하여 체류 시간을 늘리고, 할인 쿠폰 발행 등을 통해 첫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첫 구매 이후에는 구매 적립금, 할인 쿠폰 발행 그리고 제품군 확대를 통해 지속적인 재방문을 유도함으로써 브랜드의 충성 고객을 만들어야 한다.
비즈니스도 성장 단계별로 KPI가 따로 있듯이, 개인의 커리어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성장 단계별로 KPI가 달라질 수 있다.
1-3년 차: 자기가 잘하는 것을 탐색하는 시기
3-5년 차: 전문성을 깊이 파는 시기
5년 차: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며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기
물론 이러한 구분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N잡이 보편화되어가는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차별로 목표를 나눠놓으니,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든 것을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업무 경력 5년 차인 내 커리어를 뒤돌아 봤을 때 이런 경로를 밟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기치 않은 기회로 3년 차에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미래에 경험했을 일을 미리 겪긴 했지만, 그래도 발전 형태는 얼추 비슷하다.
첫 직장은 비영리재단에서 시작했다.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의 매니저로서 공유 스페이스 관리 및 전문가 멘토링, 네트워킹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한 번은 브랜딩 전문가를 초청한 컨설팅 세션을 마련했었는데,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 가지는 브랜딩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솔루션을 어깨너머로 들었다. ‘나라면 이렇게 해볼 것 같다'는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그때부터 브랜드 마케팅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1년을 보내고, 현재 다니는 회사로 이직했는데 직무는 고객 커뮤니티 매니저였다. 그러면서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자꾸 넘봤다.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제안하기 시작했고, 일을 벌이고 수습하며 내 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기깔난 광고 카피가 필요한 경우면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적어도 내부에서 만큼은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내가 잘하던 마케팅 기획에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행사 기획까지 일을 넓히며 전문성을 키우려고 하고 있다.
이제 나의 연차는 5년 차,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며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해야 하는 시기다. 이 말을 진짜 실감하는 게, 5년 차쯤 되면 슬슬 회사에서 누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세우고, 제안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경쟁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며, 목표를 위해 필요하다면 일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또한 중요해진다.
요즘은 회사와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실무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영역에서의 지식을 깊게 채우고 싶다는 욕구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10년 뒤에도 나는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3년 동안은 마케터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Photo by Aditya Chinchur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