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하는 걸까
친구가 이사했다고 해서 집들이를 위해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였을 때의 일이다. 이사했다고 해서 원룸이나 투룸 정도의 전셋집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당산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였다. 게다가 전세가 아니라 자가라고 한다. 로또라도 당첨된 걸까?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정을 들어보니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이 아주 오래전에 사두었던 아파트였는데 자식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니 아들인 내 친구에게 물려주셨다고 한다. 내 친구는 불과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가 생겼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안 좋아서 아파트 값이 하락세지만, 1년 전인 당시만 해도 천장을 모르고 계속 오를 때였다.
친구는 아파트를 물려받은 뒤 한동안은 열심히 일 해야 될 이유를 잃어버렸었다고 고백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지인도 부모님의 도움으로 서울에 있는 아파트의 분양권을 취득했는데, 한 때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던 적이 있다고 공감했다. 평소 일 욕심이 많은 친구였기에 더욱 의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의 의미를 곱씹기 시작했다. 의, 식, 주가 해결된다면 삶에서 일은 의미가 없어지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는 걸까?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맞다. 소중한 가족을 위해서도 맞다. 다만, 돈과 가족 이 두 가지 중요한 가치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일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일지 아니면 삶, 그 자체인 걸지 궁금했다.
당시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었지만 그로부터 1년 뒤, 한 책에서 이에 대한 답을 얻었다.
“왜 일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건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이자 가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단지 그 한 가지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왜 일하는가」 By 이나모리 가즈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교과서 같은 이 문장을 읽고, 잃어버렸던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 같은 전율이 올랐다.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돈을 받는 대가로 못하던 것도 잘 해내야 하고, 싫어하는 것도 내색 않고 잘해야 한다. 이뤄내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타인의 노동에도 감사히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먹고살만한 재산이 충분해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게을러지고, 교만해지고 그리고 세상사에 무지해질 것이다. 설사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었어도,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 일에 대한 태도를 반성하고, 의미를 되새긴 계기가 있었다.
오프라인 행사에 부스를 운영하는 준비로 한창 바쁠 때였다. 부스를 어떻게 꾸밀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등 각종 기획 업무가 줄지 않고 계속 밀려들었다. 인쇄물을 디자인하기 위한 마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에서, 계속 컨펌이 나지 않고 피드백 + 수정 작업이 계속 이어져서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갔다.
‘오늘은 진짜 디자인 넘겨야지’ 마음먹고 보고하는 미팅에서 또 한 번 쓴 피드백을 들었다. 의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마감까지 시간도 얼마 안 남은 상황이라서 '그냥 대충 하고 넘어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부정적인 기운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포커페이스는 절대 못하는 얼굴이라, 팀장님은 이런 내 상태를 다 파악하셨던 것 같다. 미팅이 끝날 때쯤 넌지시 한 말씀하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에 대한 태도는 포기하지는 말아요
그때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일이 많다고 힘든 티 팍팍 내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내 태도가 부끄러웠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면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왜 나는 그 선을 넘지 못하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나는 일의 퀄리티가 중심이 아니라 '일하는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일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난 이미 최선을 다 했어', '이 일에 시간을 많이 쏟았으니, 다른 일을 해야 돼'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만족했던 것이 아닐까.
'이 정도만 해도 돼'라는 태도로 일을 대하다 보면 단순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것일 테다. 편하게 일은 하지만 더 이상의 발전은 없는 사람, 적당한 수준에서만 일하는 사람으로 내가 인식되는 상상을 하니 너무 끔찍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적당히 편하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내면의 성장과 더불어 인간이 일하는 이유에 한 가지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한다"
사진 출처: Unsplash Trent Er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