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쓰는 자기소개서를 위해
나는 Y대학 사과대를 졸업, 토익 960, 오픽 IH, 싱가폴 교환학생, 스피치대회 대통령상 및 장편소설 부문 등단 이력이 있다
대뜸 첫줄부터 이렇게 들어가니, 무슨 기분이 드는가? 크게 세 가지 반응이 있을 것이다.
어쩌라는거지?
스펙이 저것밖에 안 되나?
와 스펙 좋으시구나!
100명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1번이 60프로, 2번이 39.5프로, 3번이 0.5프로 정도 될 것이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직 준비‘의 상태에 있지 않는다. 설령 그 순간에 도달해도 찰나에 그쳐버린다. 마치 대학 입시가 끝난 뒤 입시제도는 과거의 추억처럼 생각이 드는 것처럼.
사실 내가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스펙이 좋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인 적도 없다. 상경계열을 복수전공하거나, 남들 다 하는 학회에 들어간 적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회사에 적합한 인재, 유망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취업준비를 해보니까, 거의 ‘운’으로 결정된다. 서류, 인적성, 실무진 면접, 임원 면접. 회사별로 면접관이 누가 들어오느냐 자기소개서를 얼마나 읽느냐, 내가 받은 수상 이력이나 활동을 가치 있게 보느냐 등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동하고, 그 결과는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물론, 소위 말해 입결이 높은 대학을 들어간 사람들이 연봉과 복지가 타 회사보다 높다고 판단되는 곳에 들어가기 수월한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통계로 담을 수 없다. 저 사람이 붙었다고 내가 붙는 것도, 저 사람이 떨어졌다고 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내 인생은 유일한 1회차이며 반복 활동이 되지 않는 것이, 소위 말하는 ‘과학적 사고‘를 거부한다.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공학적 세계관이 전부인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라면 예외란 존재할 수 없다. 심지어 실제로 공장을 돌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트러블과 오버히팅이 반복되곤 한다.
수백개의 자소서를 첨삭해 보았다. 건당 대가를 받은 적은 없다. 주변 지인이 알음알음 소개해 주거나, 익명 게시판에 무료로 첨삭해주는 수준이었다. 그들이 감사의 표시로 기프티콘을 주면 감사히 받아서 썼지만, 그렇다고 대가를 선불로 바라고 한 적은 없다. 내가 이타적이어서? 그럴 리는 없다. 그냥 자기소개서를 첨삭해보면서 가지는 ’몰입‘효과가 좋았던 것 같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아서 얻는 경험치의 상승도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누군가 나의 말에 이리저리 영향을 받는 ’권력심‘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동기는 가급적이면 좀 빼려고 하지만..
애초에 ’첨삭‘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첨부하고 삭제한다, 라는 것인데. 나는 타인의 글을 그 누구도 함부로 바꿀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 보고서는 윗사람들이 보기 좋게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자아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를 쓸 권리는 오로지 ’쓰는 사람‘의 권리에 있다. 요즘 AI첨삭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들의 비중이 적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기소개서는 단순히 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
인생을 살면서 자기를 소개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맨 위에서 내가 저 글을 한 줄 적었을 때, 다들 무슨 기분이었는가? ‘어쩌라는거지?’라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입으로 소개하면서 살지를 않는다. 전통 사회에서 일을 배울 때, 지인의 소개로 일을 잡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영국에서는 직인법(The Law of Apprenticeship)이 있었다. 특정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인으로 취급되는 사람의 밑에서 수년, 길게는 십년 넘게도 굴러야 한다. 그래야 ‘장인’으로 취급받으며 공동체 내에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일을 잡는 것의 시작은 주로 지인의 알선이거나 지역 공동체에서 ‘배당’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과거의 시스템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단점도 있었을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매우 적었을 것이고, 한번 정한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바꾸기도 힘들 것이니까.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통 사회의 폐쇄성과 구속성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적어도 옛날에는 ‘굶겨 죽이지는 않는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굶주림의 통치‘가 시장 경제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공동체도 자기 공동체의 사람을 굶겨 죽이지는 않는다. 오로지 시장 경제만이, 굶주림을 채찍으로 삼아 ’죽지 않기 위해‘ 일을 하게 만든다. 당장 시골만 가봐도 답이 나온다. 시골 또한 여러 텃세, 불합리한 관행, 지역민끼리의 짬짜미 등등이 있는 곳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할 일은 태산처럼 많다. 적어도 굶겨 죽이지는 않는다. 실업자가 수십만이 양산되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겠는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굶주리지 않기 위해 세상에 튀어나와야 한다. 그래서 나온 제도가 바로 ’자기소개서‘이다. 자기소개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상징이다. 노동을 상품화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정제 과정(Refining Process)'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묻어들어 있는(Embeded) 비시장적 찌꺼기를 걸러내고 진정한 상품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 절차이다.
흔히들 취업 비리라고 하는 것들은, 비상품화된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인 소개, 알음알음으로 감히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다니! 사람들은 분노하고 언론은 이를 앞다투어 다루며 정치인들은 국정 감사에 기관장들을 불릐 세운다. 결국 공정한 경쟁이라는 관념은,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니까.
수백개의 자소서를 첨삭하면서, 무엇인가 ’원리‘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첨삭이라는 표현보다 ’검토‘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첨삭은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것이 있다면, 검토는 의뢰인과 검토하는 사람 간의 수평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토는 검토일 뿐이며 의뢰인이 굳이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후 있을 글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Step 1. 대부분의 기업이 물어보는 자소서 유형(500~1000자)
Step 2. 이런 걸 왜 기업이 ‘유형화’까지 시켜서 자기소개서를 써 내라 하는가?
Step 3. 내가 생각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자기소개서 유형
Step 4. 검토 방향 및 검토 내용 적용
검토받는 사람은 검토방향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는 검토를 누가 보면 뻘짓으로 여기리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그저 의견‘에 불과하니까. 비록 경험이 쌓였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과거의 결과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치워버려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말은 꼭 들어주었으면 한다.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점부터, 당신은 이미 합격자의 자격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일하고자 하는 그 어느 곳에서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컨설팅해주는 수많은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이 긴 글을, 수많은 정보 시스템이 창궐하는 곳 속에서 굳이 굳이 스크롤을 내려서 읽어 주었다. 이미 이 시점부터 우리는 우리들을 충분히 갸륵하게 여겨도 괜찮다.
자, 그럼 상품화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