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한계급론 8장] 보수주의의 기원

삶은 투쟁이고, 투쟁은 혐오를 자아내며, 안타깝게도 잘 안바뀐다

by 행신

첫줄:
“The life of man in society, just like the life of other species, is a struggle for existence, and therfore it is a process of selective adaptation."

“사회 안에서의 인간의 삶은, 다른 생물종과 같이, 존재를 위한 투쟁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적 적응 과정이다.”

고전을 읽어보면 이런 말들이 나온다

플라톤 '국가'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고, 교사에게 반항하며, 어른을 무시한다."

헤시오도스 '노동과 나날'
"나는 더 이상 젊은 세대에 희망이 없다. 우리의 미래는 방탕한 젊은이들에게 망할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내용도 있다.

장자 '외물편'
"옛것을 숭상하는 자들은 죽은 것을 숭상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노인들은 실수와 실패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기에 항상 비관적이며 성공보다는 실패할 것이라 믿는 경향이 크다."

왜 기성세대랑 청년 세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쌈박질을 할까? 베블런의 용어를 빌면 ‘생활체계(scheme of life)'가 따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생활체계란 인간의 생활에 무엇이 옳고 좋고 편리하고 아름다운지에 관해 집단으로서의 개인들이 공유하는 견해를 의미한다. 사고습관(habit of life)이 관념적, 정신적으로 조직된 인식과 판단 방식이라면, 생활체계는 실제 삶의 조직과 제도 혹은 구조를 의미한다.

삶은 투쟁이며, 투쟁은 확신을 필요로 한다.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는 시차가 존재하고, 각자에게 최적인 방식이 서로에게 최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갈등이 벌어진다는 것은 사실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존에 따랐던 경로를 일탈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시골 어르신들에게 생소한 음식을 대접하면, 입도 안 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비단 어른들 뿐만 아니다. MBTI에 심취한 젊은이들에게 ’그거 유사과학이야!‘라고 비난하면 ’진지충이시네요‘라고 씩씩거리며 받아치듯이.

혐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압력이 필요하다. 나는 생쥐를 무척 싫어했지만 군대에서 휴가를 준다는 말에 창고에서 죽은 생쥐 30마리를 꺼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서 작용한다. 칼 폴라니 식으로 말하면 ‘굶주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라 볼 수 있으리라.

자신의 생활체계를 바꾸지 않는 부류가 총 두개가 있다. 첫째는 부유한 인간들이요 이들은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 있어서 생활의 압력이 적어 경로를 일탈하는 혐오감을 바꿀 생각을 못한다. 예전에 돈이 무지 많은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길가에 죽어 있는 생쥐를 보고 호들갑을 떨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께는 생쥐라는 혐오감을 극복할 만한 사회적 압력이 안타깝게도 없었나 보다.

의외로 생활체계를 바꾸지 않는 사람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다. 끔찍할 정도의 궁핍으로 에너지를 생계 이외에 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흔히 말해서 ’하루 먹고 하루 버는‘ 사람들. 맹자 식으로 표현하면 항산이 없기에 항심이 생긴다는 것으로 보인다. 삶에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사치다.

유한계급의 활동은 품위 유지와 과시적 저장을 낳는다. 이는 문화적 발전을 저해하며 크게 세 가지 속성을 가진다. 먼저, 유한계급이 타성을 유지해서 변화를 촉발할 행위를 하지 않는다. 또, 보수주의가 규범화되어 Chill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불평등한 분배시스템이 고착화된다.

물론, 제도는 변화한다. 특히 경제제도에 관해서. 유한계급이라고 해도 사회의 변화에 무지할 수는 없는 법. 경제제도는 크게 Business를 관장하는 획득(Acquistion)의 제도와, Industry를 관장하는 생산(Production)의 제도가 있다. 앞에서 줄창 봤다시피, Predatory Instinct는 Workmanship을 착취하고, Workmanship도 유한계급이 선택적으로 추구한다.

유한계급은 산업적 제도에 기생하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산업적 제도를 기생하는 갈고리는 ’금전적 관계‘이며 serviceability가 아닌 exploitation이 유한계급의 전략이 된다.

그래서 유한계급론은 변하는 거야 변하지 않는거야? 간단히 말하면, 변화하지 않을 만큼만 변화한다. 자기들의 지위를 변화시키지 않을 만큼만 변화시킨다.

보수주의의 거두로 불리우는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혐오와 공포로 채운다.”
“The very idea of the fabrication of a new government is enough to fill us with disgust and horror.”

혁신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이 대목이 좀 신기했다. 공무원 조직이나, 군대나, 기업이나 입만 열면 혁신 혁신 하는데 혐오의 대상이라니? 그러다가 우연히 피드에 뜬 육군의 혁신적인 ‘웃음벨’ 정책을 보니, 베블런 선생의 혜안에 탄복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군 생활의 최고 혁신은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해체'가 아니었을지?

보수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지나간 제도에 대한 맹목성은 고정관념이기도 하지만 통계적 검증을 거친 '실천적 지혜(phronesis)'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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