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햇콩, 더덕, 대파, 대추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 -
추석 연휴 반강제로 끌려 왔던 양양의 외갓댁 구석탱이에서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허리를 벅벅 긁으며 유튜브 쇼츠를 무기력하게 휙휙 넘기고 있었다. 30대에 들어서니 올라오는 영상은 죄다 취업 힘들다, 결혼 힘들다, 돈 벌기 힘들다 등등의 얘기들이다. 결과적으로 돌파구로는 ‘경제적 자유’가 답이라며 너도 나도 종목 추천하는 투자 유튜버들이 가득 하다.
머리가 어질해져서 바람이나 쐬러 나갔는데 할아버지가 불러 세운다.
“이 구루마에 느 할매 장에 팔 상추랑 이것저것 좀 갖다줘라.”
도대체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조촐한 구루마에 바게쓰 가득 상추랑 애호박을 싣고 시장으로 갔다. 4일, 9일마다 들어서는 양양 전통시장. 오랜만에 귀에서 무선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차 다니는 소리, 찌륵찌륵대는 새소리,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곤충 소리 등등이 귀에 울렸다. 삼십분 정도 걸어서 시장에 왔다. 할머니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 자세히 보아 하니 우리 할머니가 계시길래 상추랑 애호박을 건네 드렸다. 그런데 그냥 가기 뭐해서 할머니 옆에 털푸덕 앉았다.
“할머니, 저 여기 좀 앉아서 일 좀 거들어 드릴게요.”
“머라. 그래 그래 한번 니 해바라.”
옆에 있는 할머니들이 깔깔깔 웃으면서 다 큰 손주가 이런 곳도 와보네 라고들 하셨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할머니가 물건을 파는 걸 처음 보았다. 할머니의 손주로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장에 간다는 것이 여기 있는 좌판에서 사람들에게 각종 나물이나 채소를 파는 일인 줄은 몰랐다.
“느 할배한테 전화좀 해바. 상추가 다 팔맀는디, 머한다고 이것만 갖다주나?”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그, 우리 머글 것도 없는디 머하러 자꾸 갖다 파는데? 댔다 댔다.”
판매 부서(할머니)와 생산 부서(할아버지) 사이에서 이리 튕구고 저리 튕구다 보니 사람이 곧잘 왔다. 엉성하게 보였던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이 양양 전통 시장 좌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먼저 정상가격(Fair Price)이 존재했다. 할머니는 그날 상추를 3,000원에 팔았는데 다른 집들도 거의 비슷하게 팔았다. 어쩌다가 값싸게 주는 사례가 있더라도 상추는 꼭 3,000원이었다. 왜 상추가 3,000원이냐 무슨 농협에서 기준 가격을 고시해 주냐고 물었더니
“뭐 옆에서도 3,000원에 팔잖여.”
그럼 옆 집은 왜 3,000원에 팔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거 알아서 대충 다 정리되는 게 있어.”
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만 던져 주셨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진짜 있긴 했구나.
그리고 음식 섭취는 꼭 다같이 해야 하는 풍조가 있었다. 할머니가 출출하실까 주전부리라도 사오려고 하면 이런 건 다같이 먹어야 한다며 근처 할매들 도나쓰나 하나씩 돌리라고 말씀하셨다. 근처에 도나쓰 맛집이 있길래 삼만원 어치 사다가 도처에 돌렸더니 다들 맛있게 드셨다. 플렉스를 한껏 마치신 할머니는 기세등등해지셨다.
“우리 손주가 돈을 벌어서 이런 것도 다 사멕이네.”
시장에 모여 있는 할머니들은 간단한 먹거리나 음료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문화가 있었다. 누가 떡을 해왔으면 다같이 먹고 식혜를 만들었어도 종이컵에 나눠 먹었다. 올 때는 따로 와도 먹을 때랑 해산할 때는 다같이 갔다.
또 신기한 점은 ‘대신 팔아주기’ 시스템이 존재했다. 왼쪽 집에서 할머니의 좌판에 미더덕 세 바구니를 턱 놓더니
“개당 오천원에 팔아줘~”
라고 했다. 할머니는 미더덕을 손님한테 팔고 중간중간 왼쪽 집의 할머니께 정산을 받았다.
“할머니 뭐 저 분한테 수수료 같은 거라도 받아요?”
“기냥 이런 곳에서는 다같이 팔아 주는거여.”
“셈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시시콜콜 따져대.”
이렇게 장에 나와 밭에서 수확한 채소류를 파는 걸 노인네들 소일거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돈이 오고 가는 시장은 작든 크든 인간의 냉혈함이 보인다. 어쩌다 손님한테 내가 과도하게 완두콩을 쥐어주니
“우린 뭐먹고 사누? 인심이 그리 후해?”
라고 할머니께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손님 중에는 왜 더 안 주냐고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 할매, 저 상추 좀 더 줘."
"머라? 안팔아 안팔아. 더 이상 주면 뭐 남는 게 없어!"
"참 더 준다고 티도 안나는데 거 참."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한테 반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이거 저거 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단순한 노인들의 취미 활동으로 볼 수는 없었다. 몸싸움 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성도 높아지고 씩씩거리곤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새 좌판에 앉아 평소처럼 물건을 팔았다.
할머니 옆에서 맨손으로 콩을 까면서 손님들을 응대하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1,000원짜리 60개를 거스름돈 용으로 들고 갔으니 채소들을 팔아 312,000원의 수익을 보았다. 수익률은 500%로, 단타 매매로 가정하면 월가 트레이더도 고개를 저을 수익률이다.
팔다 남은 채소들이랑 근처에서 사온 통닭으로 저녁을 같이 먹었다. 할머니는 히히 웃으면서
“우리 손주가 나 대신 물건 팔아줘서 오늘은 좀 편했네!”
라고 말씀하셨다. 집안 어른들은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할머니도 손주가 와서 물건 팔아준 게 그렇게 인상깊었냐며 다같이 웃었다.
젊은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지금 일을 해야 나중에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식들이 그만 좀 일을 하라고 해도 어찌어찌 밖에 나가서 참새를 쫓고 시장에다가 물건을 가져다 판다.
파이어족, 경제적 자유 등등은 결국 삶에서 ‘일'을 떼어내는 분리 작업이다. 평생을 꺼지지 않는 불로 일생을 살았던 노인들한테는 별로 이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00% 수익을 낸 고성과 트레이더께서는 내일디ㅡ 밭에 가고 다음 주에도 장을 갈 것이다. 은퇴 없는 노동의 연속이 예정된 삶은 고통스러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온 그의 곤히 자는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