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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Sep 29. 2016

내읽책_한계비용 제로사회

Zero Marginal Cost Society

이 책의 시작은 '한계비용이 제로가 된다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계 비용은 생산물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할 때 필요한 총비용의 증가분을 뜻하는 용어이다. 즉 그 용어의 시작은 제조/생산의 영역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한계비용의 의미는 같은 인프라나 환경 안에서 한 명의 사람의 더 혜택의 입거나 혹은 한 명의 사용자가 더 사용할 수 있기 위한 추가 비용의 뜻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21세기의 한계비용이 가지는 의미이기도 하다.








논쟁의 가능성


이 책의 중간 즈음을 읽을 때 쯤 떠 올랐던 생각은 '한계비용이 제로가 된다는 것'에 대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편 이 책이 이야기하는 한계비용이 제로가 된다는 것을 내 나름 이해한바로 해석을 하자면 1차원적으로 비용유발에 기여한 직접비용 안에서 제로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분명 이 대전제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와 흑연만 있다고 연필이 나올 수 없듯 그리고 잉여의 인력을 임시적으로 무상으로 고용하여 연필을 만들다고 하여 그 비용을 나무값과 흑연값만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 인건비는 영원히 어떤 조건에서도 자발적이고 무상으로 남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한계비용 제로의 논리는 구멍 투성이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레미 리프킨이 책의 중간에 예를 들어 이야기 하였던 프리웨어 형태의 소프트웨어나 오픈소스 프로젝트 류의 소프트웨어 저작의 경우 결국 그 소프트웨어 제작의 비용은 다수의 이름없는 제작자들이 인건비를 청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비용이 없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프로그래밍을 진행한 그 다수의 사람들의 리소스는 분명히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그리고 간결한 정의로는 한계비용 제로의 논리에 포함될지 모르나 만일 그런 프로젝트가 여러 건이 진행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오픈소스 추종 프로그래머의 수가 한정되어 있지만 그 리소스에 대한 비용은 절대 제로로 수렴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사실이 Product의 관점과 Resource의 관점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례에 있어서 한계비용 제로는 능력자가 재능기부를 하고자 하는 시간적 범위라는 명백한 제약을 얻게 된다.








공유경제=유휴자원의제거


한편 공유경제는 내 기준에서는 유휴의 제거에 입각한 범위 안에서만이 창조적 혹은 혁신적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유휴의 상태로 진입하는 나의 집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임대를 놓거나 내가 24시간 타고 다니지 않는 차를 공유의 형태로 남과 함께 타게 됨으로 인해 비용을 줄이는 우버든 쏘카든 카쉐어링의 분야든 모두 동일하다. 일단 유휴가 발생한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공유 경제는 시작된다.


그런데 그 유휴가 발생하는 규모가 곧 그 사업의 규모와 일치할 수 있기 때문에 유휴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공유경제 사업은 그 규모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헌데 아마도 에어비앤비와 우버 혹은 쏘카의 경우 그렇게 보수적으로 사업목표를 잡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공유경제 안에 자본주의가 녹아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개인사업자라기 보다는 좀 더 큰 사업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거주지를 임대 놓는 것이 아니라 에어비앤비를 위한 별도의 건물을 지은 후 임대를 놓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유휴자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유경제가 어느 정도 돈의 맛을 보게 된 순간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적 색채를 띄며, 공유를 통해 부분적 유휴 자원에 대한 소모와 이윤 취득을 위한 개인과 철저히 기업형으로 그 시스템만을 활용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기존 자본주의 계층의 혼합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국가가 개입하고 가능한 상업성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에너지 자원 등의 분야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휴를 제거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떤 자원이 유휴인지를 식별하기 위한 네트워킹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인터넷 즉 상호관계를 연결하는 Inter-net의 본연의 의미를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사물의 Inter-networking의 측면에서 다시 사물인터넷이 등장하게 된다.


한계비용제로-유휴제거-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논리구조는 매우 아름답다.








공유를 똑바로 바라보자


'공유'라는 명제는 대상에 대한 접근권이 모두 평등해 지는데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소유의 뒷산을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마음과 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내 사유재산인 집을 잠시더라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심리적 거리가 서로 매우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당연히 사람마다 이 기준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더 개인적일수록 더 공유할리는 적어진다. 내 집보다는 내 PC가 더 껄끄러울 수 있고 내 PC보다는 내 옷을 공유하기 더 껄끄러울 것이다. 에너지 혹은 네트워크와 같이 비 가시적이고 비 개인적인 속성 부분에 있어서 공유의 속성은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데 애석하게도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좀 부족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즉 공유의 패러다임은 바이블이 아니다. 당연히 만병 통치 약도 아니다. 심지어 이 책을 둘러 싸고 있는 테마인 '한계비용제로', '공유경제', 'P2P'와 같은 키워드들을 모두 동일한 뜻이나 동일한 방향성으로 오판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P2P형태의 경제가 모두 공유경제일리도 없고, 공유경제가 모두 한계비용을 제로로 수렴시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한 이어서 P2P 서비스의 시초가 되었던 파일 공유 서비스들 모두가 회원제를 유도하거나 광고를 끼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또 다른 자본주의의 형태를 보여주었다는 것 역시 기억하자! 즉 공유의 명제 '접근권이 모두 평등해짐'에 대해서 영향력이 약한 대상/제품/사물/서비스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우리는 스템플러와 같은 물건은 서로 공유하지만 즐겨쓰는 펜은 잘 공유하지 않는다. 또한 프린터는 공유하지만 PC는 개인별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전거보다는 자동차가 소유성향이 크며 그 이유는 자동차 안에는 공간감과 그 안에서 자기애착 요소를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자동차는 디자인적 취향선택이나 옵션의 개인화가 가능하다. 집은 자동차를 넘어서 심지어 아예 내가 원하는 대로 대부분을 바꿔 쓸 수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지 혹은 가구를 들여 놓던지 말이다. 이 모든 대상/제품/사물/서비스가 공유의 패러다임에 당연히 같은 정도의 영향력을 받을리는 없다. 그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상대적 공유성을 대상으로 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공유의 생태계를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책 안에서 이야기 한 장난감 렌트 사업의 경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 대한 애착 관계와 세대 별로 빠르게 변화하는 장난감의 트렌드에 대한 부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장난감에 쉽게 실증을 낸다는 부분과 부모가 그 장난감 구매 비용에 대해 아까워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만 부각시켰다. 우리는 분명히 모든 관점에서 공유경제를 솔직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인류의 4차혁명?


이것은 인류의 4차 혁명일까? 나는 솔직히 창조적 변화의 부분에 있어서 공유경제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의 혁명을 규정짓는 방식에 있어서 거래 규모나 경제적 파급력과 같은 수치로 측정 가능한 부분이 아닌 인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우리가 바퀴의 발명이나 컨베이어벨트의 발명을 경제적 파급력에 대한 비용적 수치로 구지 환산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난 오히려 인류가 유휴를 제거하는 한계비용제로의 전환보다는 로봇혁명 쪽이 더 4차 혁명에 어울리는 전환점이라고 본다.


로봇과 노예는 서로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다수의 노예를 소수의 귀족이 부리듯이 다수의 로봇을 소수의 자본가들이 구매하고 운영할 것이기 때문에 부의 편중 현상은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로봇의 증가는 인건비의 이슈를 줄여주기 때문에 선진국에게 무조건 유리한 시스템으로 넘어갈 것이다. 또한 로봇의 경우가 과거 인류가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던것과 같은 유사한 현상 혹은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게으른 인류의 시작 등


이런 관점과 같이 말이다.






 


프로슈머와 공유경제의 본질은 다르다.


3D프린팅을 이야기해보자. 결국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칠 요소는 장기적으로 한계비용제로라는 막연한 시사점보다는 프로슈머의 일반화일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그런 변화를 위한 시간은 필요하다.


3D프린터를 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직 3D프린터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들의 품질 수준, 3D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의 수 그리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3D프린터는 갈길이 멀다. 특히 제품을 만드는 공정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면 재료비가 아니라 전기세만 하여도 꽤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다행히도 내 생각에도 3D프린터는 당연히 생산 시장을 꽤 넓게 부분적으로 개편을 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 경제에 영향을 많이 미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 세계의 공장이 모두 없어지고 전 인류가 각자의 집에서 3D프린터를 가지고 모든 제품을 생각하며 자급자족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계는 분명하다.

1. 대량생산보다 더 싸지는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생산 가격대라면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Custom 생산 시장의 확대

2. 생산성이 높아져서 일부 품목에서 생산비의 하락/개인화된 3D 렌더링의 본격적 보급 확대 (License Free)

3. 대량생산과 비용 경쟁이 가능해지는 3D프린팅 산업의 발전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유 경제가 합산과 연결의 경제라면 3D프린팅을 필두로 하는 프로슈머의 경제는 생산구조의 분해와 분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 분산되고 협력적인 경제의 시대가 오면, 녹지로 둘러싸인 인구 15만 명 내지 2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들이 과밀한 도심과 교외의 산업 및 주택 단지를 서서히 대체해 자연의 모습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문구에도 나와 있듯이 '분산과 연결', '협력과 자력'은 모두 서로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산업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로슈머가 3D 디자인 라이센스에 대한 공유행태가 이루어지겠지만 그렇다고 3D프린팅 산업이 공유경제라고 보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공유경제와 프로슈머 시스템은 각자 서로의 영역 안에서 인류를 이끌어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의견을 남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감히 어떤 의견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논리와 구조 그리고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음을 알린다. 더욱이 제레미 리프킨이 이미 오래전에 쓴 이책에 나와 있는 '숙소쉐어링', '카쉐어링', 'P2P금융'등은 실제로 몇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그의 지식과 지혜 모두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인상 깊게 읽은 페이지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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