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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Jan 13. 2017

덕수궁을 다녀오다.

돌담길의 안 쪽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근대사의 흔적

시립 미술관을 방문하여 '르누아르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바로 옆에 있는 덕수궁을 들렀다. 덕수궁을 주변으로 널러 둘러져 있는 돌담길을 걸으니 덕수궁입구가 나왔다. 입장을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야 한다. 어른은 1명 당 1,000원이며 미취학 아동은 공짜다.





원래는 덕수궁은 이름이 경운궁(慶運宮)이었으나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면서 덕수궁, 德壽宮으로 바뀌었다.

덕을 뜻하는 德, 목숨과 수명을 뜻하는 壽의 두 글자를 사용한 덕수궁은 말그대로 고종황제가 덕이 있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덕수궁의 역사를 보면 그 흐름이 사뭇 어둡다.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신했던 선조 한양으로 돌아와 지낼 거처가 마땅치 않아서 세조의 큰 손자였던 월산대군의 집을 빌어 지어진 덕수궁은,

이후 왕이지만 왕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고,

인목대비가 폐위되고 유폐되었다.


1904년에는 화재로 인해 전각이 대부분 소실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다시 주요 건물들을 중건하였으며,

그 가운데 석어당은 유일한 목조 2층 건물이다.





조선시대의 건물로 보이는 건물들의 옆 쪽에는 석조전이라고 불리우고 최근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아래 사진을 보면 조선의 500년 역사와 이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대한제국으로 나라의 이름을 바꾸었던 인위적인 과정이 이 건물의 배치 안에서도 느껴진다. 그 둘은 한 곳, 한 땅에 서 있었지만 그 연결은 너무 나도 인위적이었다.





덕수궁 안에는 꼭 궁궐로서의 시설이 아니더라도 분수와 같은 구조물과 아래 처럼 벤치와 덩쿨쟁이가 있는 쉼터도 있다.





중화전은 덕수궁 안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지만 경복궁 등에 있는 정전에 비하면 그 규모가 훨씬 작아 보인다.

그럼에도 중화전의 천장에는 용의 형상이 있는 등,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구조물들은 충분히 존재한다.

정전의 앞에는 정1품과 종1품을 시작으로 대신들이 자리잡기 위한 비석이 늘어서 있다.





덕수궁의 외진 곳에는 광명문이라는 작은 문이 있는데 이 곳에는 또 특별한 존재들이 있다.

광명문은 과거 임금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의 남쪽 문이었으나 그 위치를 이동하였다고 한다. 한 편 이 곳에는 국사 시간에 줄기차게 배웠던 자격루와 홍천사명 동종과 신기전기화차이 전시되어 있다.





의미 있는 덕수궁의 역사 탐방을 마치고 나서, 다시 차를 가지러 시립미술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덕수궁 뒤쪽에서 마지막으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재미 있는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궁의 외벽 한 구석을 이처럼 현대미술 전시품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재미있었다.


너무 춥지 않은 날씨라면 시청에 바로 가까이 붙어 있는 덕수궁, 한 번 쯤 들러서 우리의 역사를 느껴볼 가치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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