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seung Mun Nov 20. 2015

관찰자 관점에서 본 압구정 로데오거리

관찰의 힘이 주는 즐거운 볼거리 

관찰기법은 사용자 조사 분야에 있어서 인터뷰나 설문지와 같은 형태와 달리 현상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관찰된 현상을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어떠한 현상을 직접 파악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강력한 조사방법론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나의 꽤 많은 선배들이 일상에서의 관찰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영향으로 휴대폰 제조사에서 일할 때는 출퇴근 시간 중에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휴대폰을 사용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보고 그 가운데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예를들어 왼손 파지가 많은지 오른손 파지가 많은지 서 있는 겅우 물건을 들고 있으면 화면 조작에 어떤 불편이 일반적으로 발생하는지 등을 관찰하곤 한다.) 


관찰은 객관적인 사실을 입증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행동에 숨겨진 인사이트를 도출하는데는 유리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냉장고를 쓸때 냉장고 문을 열고 다시 야채칸 등을 여는 행동을 보며 서랍형 수납 공간을 만들었던 것과 같은 경우 관찰 기법이 거둔 확실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만약 이런 현상을 설문 조사로 풀어내려고 했다면 이미 기존의 불편함에 익숙해져버린 사용자들이 진실로 불편한 부분 조차 입밖으로 내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면에서 인터뷰나 설문지 그리고 다이어리 기법 등은 응답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므로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으며, 이에 반해 관찰 기법은 관찰 대상자의 주관이 없는 3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점이 있다.




어쨋든 나는 관찰을 즐긴다. 그리고 요즘 이런 저런 자료들을 보면 관찰을 잘하는 기술이 UX관련 업무를 잘 하기 위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최근 6개월 간은 나의 새로운 근무지인 압구정이 나의 주요한 관찰 대상이었다. 이곳에서 하나의 구체적 대상을 관찰한 것은 아니라 광범위한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현상들을 보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압구정은 나름 어릴적부터 자주 왔던 곳이기도 하지만 역시 회사를 다니며, 매일 걸으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예전에는 미쳐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보이곤하였다. (물론 이것은 분명 직업병의 연장선에 있는 행동이다.)








(굉장히) 많은 전봇대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전봇대가 많다. 그것도 무척많다.


전봇대는 어릴적 동네 골목에서 본 이후로는 쉽게 볼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어릴적에는 전봇대에 고개를 붙이고 무궁화 꽃을 찾기도 했는데 그런 전봇대를 본다는 것은 요즘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봇대는 전력 공급을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나 특히 아파트와 같은 건축물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는 전봇대를 보기 어렵다. 고층의 건물에 전봇대의 형태로 전기를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건물의 시공시에 전원 공급이 건물 내로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저층의 건물이 대부분이고 건물이 시공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압구정 로데오 거리라서 유난히 전봇대들이 많이 서 있다.




로데오 거리의 전봇대




덩달아 보통 거리에서는 찾기 힘든 전봇대 전단도 쉽게 볼 수 있고 사다리차를 타고 전봇대를 수리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압구정의 하늘 풍경은 많은 전봇대줄에 가려져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저층 건물들을 만들어낸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을 수놓고 있는 전선




저층의 건물들이 준 다른 풍경들


요즘 100층이 넘는 고층 건물들이 국내에도 지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L모사의 빌딩이 123층으로 지어지고 있다. 그런데 압구정 로데오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층 기준으로 5층 정도 이내의 건물들이다.

예전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재건축에 관련하여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서 높은 건물을 원래 지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규제가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런 연유로 왠지 압구정 로데로 거리에도 고도제한이 걸려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낮은 건물들은 몇 가지 특색을 만들어 내었다.




반지하 식당의 대표격인 묵전




그 첫번째는 반지하 형태의 상점들이다. 건축상의 층간 규제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유난히 반지하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 많다. 여기에서 말하는 반지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매우 허름한 형태의 반지하를 말하는 건 아니다.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는 식당이나 값비싼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많은 매장들이 반지하의 구조안에 들어가 있다. 결국 압구정에서 반지하는 1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모습도 압구정만의 풍경인듯하다.




반지하 상점




저층 건물이 준 두번째 영향은 협소한 주차 공간이다.


건물이 대부분 5층 내외인 관계로 대부분 대지면적이 넓지 않은 건물이 많고 자연스럽게 건물 지하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영향은 1. 외부 사설 주차장, 2. 발렛파킹 서비스의 시작과 확대, 3. 지정주차 구역의 적용으로 확대 된 것 같다.

특히 2번 발렛파킹 서비스의 경우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발렛파킹 문화가 발달하게 된 중요한 위치가 압구정일텐데 부유층 고객이 고급차를 가지고 오는 경우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협소한 건물구조로 인한 주차 공간 부재와 골목 문화로 인한 셀프파킹 불가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압구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정주차 구역




또한 이런 발렛 등의 문화는 요식업에 있어서 분식집이나 일반 밥집의 수요를 창출했을 것이다. 실제로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골목골목마다 라면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식집 형태가 꽤 많다. 분명한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폐업중, 임대중, 공사중




압구정은 나름 화려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부분이 공존한다. 그것은 바로 폐업과 임대 그리고 공사이다. 압구정은 다른 번화가에 비해 이 세가지 현상에 대한 빈도가 높은 것 같다.


로데오 메인 거리도 이 현상은 심하게 나타나지만 로데오에서 뻗쳐 나오는 골목길들에서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산공원으로 오는 많은 골목길들은 하나의 골목에 최소한 한 두 곳의 폐업 매장이 있고 한두 골목 마다 한 곳은 공사를 항상 진행 중이다.




건물을 통채로 뜯어내고 있다.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결국 이런 모습은 압구정의 상권이 기대수익 대비 실제수익이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폐점의 형태는 의류, 요식, 기타 서비스등 다양하여 한 곳에 치우쳐 있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머리 속에 쉽게 떠올리는 것보다 압구정의 상권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아마도 앞에서 이야기 한 골목 형태의 동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골목에 유입되기 어렵고 자연스레 메인 거리를 제외하곤 대형매장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목표 지점을 지정하고 이동하는 맛집류, 쉐프들의 레스토랑 등은 강점을 가질 수 있지만 지나가는 손님을 끌어와야 하는 의류, 잡화 등의 판매점들은 이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을 닫는데는 건물의 화려함이 중요하지 않다.




중국 여행객의 남방 한계점


중국 여행객의 발길이 닿는 범위 안에는 압구정동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중국 여행객들은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 차로에 대형 버스를 주차하고 쇼핑을 시작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중국 여행객들이 로데오 메인거리를 넘어서 골목 상권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다들 갤러리아 백화점과 메인 거리에 있는 SPA 브랜드 의류점을 들리고 메인거리를 한 번 슝 돌아 걸어간 후 다시 버스에 탑승하는 패턴으로 움직인다. 


골목 상권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발걸음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이 우리도 역시 잘 모르는 타국에 가면 아주 번화한 상권 높은 쇼핑몰 건물에서는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목 골목의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지는 못한다. 첫번째 치안을 믿을 수 없고, 두번째 길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더욱이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정사각 형태의 거리 구조가 아니니 만큼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더라도 처음 온 사람이 길을 찾기 어려울 가능성도 높다.




사각의 형태가 아닌 로데오 거리




사실 로데오 메인거리를 지나 도산공원 쪽으로 내려오면 살바토레쿠오모, 멜팅샵, 보나세라 등 유명한 맛집 레스토랑도 많고 골목골목 마다 파격적인 할인을 하고 있거나 아기자기한 소품등을 파는 집들 등 볼거리는 더 많은데 그걸 즐기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골목 문화가 중국 사람들의 남방 한계선을 그어 놓은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로데오 거리의 남쪽 땅에서 유일하게 중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있는 것이다. 그곳은 바로 도산공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중국 분들은 웨딩사진을 촬영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같이 도산공원 안에서는 중국 커플의 웨딩 촬영이 진행된다. 워낙 도산공원이 출입자의 통제도 없고 도심 속의 공원으로 나무도 많이 우거져 있고 경치도 좋지만 안창호 선생님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원에서 타국의 사람들이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매우 잘 어울리는 광경은 아니다. 그들은 도산공원이 어떤 공원인지를 알고 있는지도 항상 궁금한다. 왠지 중국 결혼 패키지에 도산공원 촬영 옵션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도 대한민국의 일부분으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좋아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관찰을 통해 얻은 기타 이야기들 


압구정에서는 로또를 파는 편의점을 찾기 힘들다. 거의 일주일을 꼬박 돌아다녀서 찾은 결과 편의점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로또를 파는 것을 찾아냈다. 그 사이 편의점은 최소 10곳 이상을 돌아다녔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띄는 지점에 거대한 로또판매점이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용산과 압구정의 주 거주층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인가보다. 그들간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 이곳 압구정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역시 하나의 공간에서 생겨난 현상들이나 모습들은 어떠한 몇 가지 근본 요소나 제약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마치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도심의 발전이나 문화의 형성 등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관찰의 힘을 확신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