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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Jul 24. 2020

절필에 대하여

한때 투잡으로서의 글쓰기를 꿈꿨던 이의 소회

절필은 무엇인가?

'절필(絕筆)' 붓을 놓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아니함

정말 이렇게 멋드러지는 단어가 또 있을까? 깊이가 가득한 자가 스스로의 큰 행보를 멈추는 듯한 느낌 그리고 좀 더 오버해서 그려보자면 세상의 아쉬운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맥적 느낌까지 상상하여 붙여 생각할 수 있는 두 글자이다.

나는 이제 올드해진 '서태지 세대'이고 내가 절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메타포를 개념적으로 잘 이해했던 케이스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였다.

이렇게 연결하여 이야기하면 나의 지난 글쓰기는 모두 허세 가득한 느낌이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절필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누가 절필을 하는가?

단연코 누구나 시작을 했어야 끝을 낼 수 있는 법이다. 또한 시작과 과정이 원대하거나 그 규모가 사뭇 남달랐어야 중단하고 끝을 내는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한명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법이다.

나는 한때 폭발하는 글쓰기 욕구가 있었다.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밤잠을 자고 있다가도 쓰고 싶은 글이 떠올라 새벽에 노트북을 열었고 샤워를 하다가도 잊혀지기 싫은 주제가 떠올라 황급히 물기만 닦아내고 닥치는대로 글을 썼다.

하지만 당연히 나의 그런 글쓰기의 삶은 업으로서의 관점은 아니었고 나름은 방대한 글쓰기라는 저작활동은 애초 가지고 싶었던 문인으로서의 영광의 끝은 보지못한채 어느새 막이 내려져 있었다. 짐짓 나 스스로 그 끝을 의도한 바도 있겠으나 스스로 받아들이고 주변이 이야기 해 나아가는 소소한 과정을 일이년 거치고 나니 어느덧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또 한명의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글을 쓰는 내내 느꼈던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재능은 하늘에서 내려 준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나에게 그것을 전혀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단연코 더 많은 재능을 부여 받은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공학을 전공한 이에게 부여해 준 것 치고는 꽤 큰 재능을 주셨지만 그저 글쟁이라고 한정하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글을 써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활자중독의 충족관계

나에게는 글을 쓰는 욕구도 컸고 글을 읽는 욕구도 컸다. 그 두 가지 모두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20대 후반 어느 순간 의도적으로 그것을 키웠다. 일명 '똑똑한 사람'의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매년 1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비어 있는 자존감과 남들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활자중독과 글쓰기 욕구는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두 개의 수단이었다.

욕심은 더 커져 IT관련 글을 쓰던 영역을 넘어서 수필을 써보고 소설을 써보도 하였다. 그 단계에서 나는 Boundary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수묵화를 잘 그린다고 데생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피아노를 잘 친다고 바이올린 연주도 잘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어느덧 책을 7권쓰고, 수 많은 매체에 수년간 컬럼을 쓰고, 3년 이라는 시간 동안 3일마다 1개씩 새로운 창착 글을  총 300개가 게 브런치에 썼지만 그것이 나를 궁극적으로 충족시켜 준것은 아니었지 않나 싶다. 지금은 오히려 매년 120권 정도의 페이스로 읽고 있는 책읽기 역시 내려 놓아야 하는 생각조차 들고 있다.




절필의 계기

많은 책의 저자들은 책을 책으로서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그 책을 통해 강연을 하고 유명세를 가져 오는데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봐온 이들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은 정말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어쨌든 글쓰기와 강연 또는 유명세라는 상관관계 내가 얻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내가 글을 썼기에 강연은 했지만 훌륭한 강연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유명세를 얻었을리는 만무하다.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쩌면 내가 훌륭한 강연자이고 유명세를 얻었다면 절필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훌륭한 글쟁이로서의 덕목도 혹은 Side Effect로 얻을 수 있는 다른 효과도 얻기 어려운 누군가가 글쓰기를 그만 두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아무튼 '잘써진 책이 팔리는가 유명한 저자의 책이  팔리는가' 사이에서 느끼는 많은 딜레마 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비록 일명 사회가 인정하는 글쓰기로서의 성공을 내가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그냥 호기심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던 사람으로서는 꾸준히 10년 이상 콘텐츠를 만들어 냈고 그걸로서 나는 족하다.




'후회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공감

지금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 절필과 휴필 사이 그 어디엔가 나는 있을텐데 정확히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끄적이는 것도 절필을 하지는 않은 범주로 정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 주는 것은  작가로서 아이덴테티를 적극 나와 매칭시키고 공감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친분의 표현이거나 그 외의 호칭이 더 적절해 보이지는 않아서 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했던 일들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비록 나도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자기복제를 해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10년이 넘게 글을 열심히 써 봤던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어요'라고 단연 이야기 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후딱 20분만에 써내려가는 와중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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