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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Jan 13. 2016

내읽책_총균쇠

거대한 하나의 역사

이 책을 다 읽는데까지 1달이 넘는 시간이 걸렷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근 보아왔던 책들과는 다르게 한 페이지 안에 들어 있는 글자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서였다. 총균쇠는 예전의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페이지 안에 글자가 가득 들어 있는 그런 유형의 책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빼곡히 글자가 들어차 있는 페이지들이 자그마치 600페이지가 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91페이지로 본문의 내용을 다룬 이책은 그 이후로 30페이지의 에필로그를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특별 증보면'으로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로 또 다른 30페이지를 그리고 '총균쇠 그 후의 이야기'로 또 다른 20페이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증보편에 부쳐' 및 참고문헌들이 그 뒤를 잇는데 결국 751페이지로 이 책은 마무리 된다.


마지막 이유는 책의 내용이 심오하고 워낙 다양한 문화권의 발전상을 다루다보니 절대적인 독서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나의  두 아이가 내 양 무릎을 차지한채 내 눈을 가리거나 책을 읽으려고 막 소파에 앉은 나의 손을 끌고 일으켜 세우는 와중에 족히 100번에 가까운 시도 끝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책을 완벽한 집중력으로 읽을 수 없었던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훌륭한 책을 읽기 위해 쏟은 내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게는 많은 메시지들이 머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미시적 역사와 거시적 역사의 만남


세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책들은 관점이 미시적이거나 혹은 거시적이다.


즉 굉장히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거나 하나의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알려주는데 집중한다. 예를 들어 실용서들은 굉장히 미시적인 지식이나 사례에 집중하며 이론서들은 그보다 넓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런데 '총균쇠'는 인류의 발전 과정 및 그 속을 바라보는 미시과 거시의 관점을 가장 논리적으로 교차시켜 놓았다. 그 안에는 인류의 전쟁사, 농업사, 음악사 등과 같은 하나의 똑부러지는 주제가 아니라 인간의 발전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추적 관찰한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그렇게 다루어지는 각각의 주제들 즉 소챕터들은 인간 생활의 상세한 부분들까지 매우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한 마디로 방대하면서 자세하고 근원적이면서 치밀하다.



이런 느낌은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동남아에 대한 인류 문화 발전의 차이를 설명할때 극대화된다. 뉴기니는 전인류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는 지역이지만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 뉴기니를 동서남북별로 섬의 크기별로 그리고 거주민의 지역과 바다의 근접성 및 거주지역의 고도 등의 여러가지 특징을 고려하여 그들의 삶이 발전해온 방식을 추적하였다. 전 인류 가운데에서도 의미있는 샘플 군에 대해서는 정말 치밀한 분석을 진행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 있다. 저자가 그런 치밀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계기는 아마도 그가 그만큼 오랜 시간을 그 땅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것은 지리적인 특징이다. 먼저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대륙의 상하 좌우의 거리 차이로 인한 유라시아 지역의 지역적 우세함이다. 끊김이 없는 땅의 연결이 눈에 띄는 문물의 보급도 주도하였지만 균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살며시 스며들어서 내성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하나의 땅으로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이 달랐던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그 관점에서 잘록한 허리와 같이 생긴 파나마 지역의 경우는 완벽한 병목 지역이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지역적으로 막혀있는 곳은 배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쉽게 건널 수 있는 시대와는 다르게 오래전 문익점 선생님께서 목화씨를 목숨걸고 가져오듯이 문물의 이동이 가시적으로 주로 이동하던 시대에 지역적으로 막혀 있는 것은 절대적인 장벽이었던 것이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운반의 역사였던 것이다. 다만 총과 쇠는 눈에  보이게 운반되었으며 균은 눈에 보이지 않게  운반되었던 것이다.







대륙의 크기를 제외하고도 이 책에서 언급되는 변수는 만핟. 먼저 지구상에서 위도를 중심으로 동일한 환경의 특징과 또한 그렇다고 하더라도 발생하는 지역적 차이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동일한 사람과 땅으로 보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조차도 다양한 인종별로 그리고 지역적 차이 별로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작물/가축 두 가지 중요 변수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의 삶은 사람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가 사람의 삶의 구성하는 주된 요소로 지목한 것은 바로 작물과 가축이다. 생존에 적합한 작물과 가축을 가지고 있던 지역의 사람들의 인류학적 발전이 빠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돼지나 강아지가 있는 대륙과 없는 대륙 그리고 벼 혹은 밀이 있었던 대륙과 없었던 대륙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물과 가축은 하나의 자원이다. 그것은 자원이면서 채굴 등을 통해 얻어지는 자원은 아니며 일반 최초의 자원을 얻게되면 무던히 키워나감에 따라 얼마든지 불려낼 수 있는 자원이다. 즉 소모적인 자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인류의 발전은 부루마블처럼 게임을 시작하면서 모두가 같은 돈을 받고 시작하는 평등의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인류가 가질 수 있었던 가축의 수와 작물의 수가 적었다는 사실은 그 선점의 효과가 몇 천년간 이어졌다는 사실에 큰 힘을 실어준다. 좀 슬프지만 인류 역사의 시초에도 역시 금수저(혹은 금수저 민족)가 존재한 셈이다.


가축 이전에는 동물이 었었다. 그리고 인간을 헤칠 수 있는 거대 포유류들은 비교적 짧았던 어느 시기에 사라진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물과 가축의 자원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꼈다. 생존의 관점에서 동물은 식물에 비해 유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물의 경우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씨앗'이라는 생명의 근원에 독이라는 남들이 침해하였을때 피해를 입는 요소를 넣어 놓았는데 동물의 경우는 복어와 같은 일부 동물을 제외하면 그런 자기 자기방어용 기대를 생식에 관련하여 가지는 경우가 드물다. (복어의 독의 경우도 사과의 씨앗과는 다르게 종의 유지를 위해 씨 혹은 생식 기관 쪽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장기 전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말은 황당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작물의 멸종은 발생하기 어렵지만 가축을 제외한 주요 동물의 멸종은 의외로 금방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 셈이다. (물론 최근 벌의 개체수 감소로 인해 식물 종의 유지 역시 이슈가 되고 있기는 하다.)



독이 있기도 유명한 사과씨




씨앗은 식물이 죽어도 홀로 남아서 계속 생존이 가능한 식물과는 달리 눈 앞에 노출되어 있는 개체수가 모두 사라지면 바로 멸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이 동물 종의 경우는 과거와는 달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사람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어찌되었던지 작물과 가축의 불평등성이 과거에 비하여 많이 개선된 현재 (여전히 가축과 작물이 부족한 지역은 많지만 아예 보급이 되지 못한 수천년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현대의 시대는 그런 면에서 평등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물과 가축을 대체하는 인류 발전 혹은 생존의 변수는 무엇일까? 그 생각을 잠시 하다가 사실 지금까지는 가축과 작물 그리고 농업과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의 시대였다면 오히려 이제는 발전보다 생존의 우선순위 요소를 뽑는 것이 현실적이고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천년 인류의 미래를 겨냥하고 있는 새로운 위험요소들에 대해서 말이다. (미세먼지, 슈퍼박테리아, 모럴해저드 뭐 이런식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몰락?


비옥한 초승달은 이 책 내내 언급되는 인류 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그야말로 비옥하고 축복받은 땅이다. 하지만 아래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현재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은 현재에는 인류 역사를 주도하는 변화를 이끌어내었던 중요한 역할을 21세기에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재러드 다이아몬드 역시 책의 후반후에 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왜 계속 그 선두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난 그부분에 대해서 견해가 다르다. 우리는 과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이 시대까지 최종적인 지역적 승자가 되지 못했다고 하여 그것을 몰락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은 물론 그곳의 국가들이 최대의 강대국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 그 위치에  있었던 국가들은 꽤 오랜 기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국가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미 제러드 다이아몬드 역시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이 그 자리에서 강력한 힘을 존재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적어도 3,000년의 기간이다. 길게는 4,000년 가량일 것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지도




그 이후로 B.C. 4세기 이후 알렉산더 대왕 치하의 그리스인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지배한 이후로 그 지역은 세계의 패권을 지배하기는 커녕 힘의 축이 이동하는 것을 전혀 막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래봤자 이후 2,000년이 넘는 세월이다. 결국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인류의 역사를 주도해온 시절이 그렇지 않은 시절보다 긴 셈이다.


이것은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로마가 자연쇠퇴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지역적 쇠퇴인 것이다. 그걸 몰락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당연하게도 지금은 천조 단위의 돈을 다루는 국가라는 뜻으로 천조국이라고 불리우는 미국도 언젠가는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것도 당연히 4,000년을 못가지 않을까? 이미 과거에도 실제로 미국 역시 세계 제1의 자리를 넘겨줄지도 모르는 위기들이 있었다. 대공황 시대도 그러하였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도 충분히 큰 위기가 있었다.


아무튼 넓고 광활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그 영광이 영원할 수는 없다.








하나의 중국과 여럿의 유럽


저자는 이 책 중간 중간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예를 들면 크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유라시아에서 더 문화가 먼저 발전하였던 중국이 유럽을 지배하지 못하고 반대로 유럽의 국가들이 중국의 땅을 점유하고 사실상 지배를 하였는가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그 핵심 이유로 중국은 꽤 오래 전부터 하나의 나라였다는 사실과 이와는 반대로 유럽은 항상 여러 나라가 갈라져 있는 분할의 상태였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여기에서 정확하게 분할이라는 표현이 맞을듯하다. 분열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둘은 어떻게 다른것일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중국은 장성의 나라이다. 만리장성과 같은 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장성은 공격을 위해 만들지 않는다. 장성은 항상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다. 이는 중국이 오랜 세월 방어국가였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방어국가가 있다면 그 반대 쪽에는 공격 국가가 있기 마련이다. 공격의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방어를 위해 지나친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 어차피 어느 국가나 한정된 리소스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방어는 공격에 비하여 항상 시간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서 경계근무를 서 본 사람들은 모두 쉽게 이해할 것이다.) 유럽은 중국에 비해서 훨씬 공격적인 국가들이 많았다. 한때는 로마가 그리고 또 다른 한때는 신성로마제국이 그리고 또 어떨때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세계를 호령하였고 1,2차 대전시기 즈음에는 독일이 유럽의 최대 군사 강국이었다. 서로 나라가 다르니 내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었고 평화조약은 항상 파기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유럽이 중국에 비해 훨씬 더 잡초처럼 성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큰 대륙의 관점에서 유럽의 전쟁은 국가대항전이며 중국의 전쟁은 국내 국지전이다. 오랑캐를 무찌르거나 적국의 군대를 무찌르는 것은 전투의 개념에서는 대동소이할 수 있지만 전쟁과 외교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유럽은 또 다른 재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유럽은 궁극적으로 각각의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십자군 전쟁과 같이 하나로 묶여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경우에는 또 다시 하나로 뭉쳐 전쟁을 하곤하였던 것이다. 이런 유럽의 특성이 결국 유라시아가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침략하게 되는 근본적인 특징의 배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종교적 신념이던지 세계 정복이던지 유럽 전체가 하나의 목표가 생겨나게 되면 그 목표 앞에서 서로간의 싸움은 자중하는 특징이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함선 세척으로 아시아를 오고 갔던 바스코 다가마




그렇기에 나는 저자의 가설처럼 만일 중국의 함선단이 유럽의 본토에 먼저 도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함선단이 유럽 정복의 뜻을 가지고 있고 중국내의 정치세력이 그 뜻을 밀고 나갈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결과가 크게 바뀌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전체가 하나가 되는 힘이 하나가 전체가 되는 힘보다 우월해 보인다.








더욱 지대한 변수는 환경인가 사람인가?


총균쇠의 전체 내용은 지역과 환경과 자원이 인류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한편 이 책에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 가운데은 바로 사람 자체의 능력이다. 


사람은 저로 제각각 능력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요리를 잘 만들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른다. 이런 각각의 능력은 모두 저로 다른 각각의 영역에서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능력 가운데 초기 인류 시대 및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기까지 가장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영웅력(英雄力, 영웅적인 힘, 그냥 내가 만들어본 말이다.)과 발명력이었을 것이다.


영웅적인 힘은 부족 혹은 국가의 땅을 넓히고 타 부족 혹은 국가를 복속시키는데 필요했을 힘이며 발명력은 같은 자원 혹은 부족한 자원 속에서 타 부족 대비 우위를 점하기 위한 힘이다.


음악과 요리 그리고 노래 역시 당시 인류를 윤택하게 만들어주었겠지만 생존경쟁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이와 유사하게 스티브 잡스가 선사시대에 태어나서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가 21세기 빛났던 것처럼 빛을 보았을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 그는 21세기에 걸맞는 Talent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대상이 인물의 가치를 바꾼다. 21세기에 가장 빛났던 잡스




반대로 미국의 원주민 부족 가운데 가장 용맹하고 호전적인것으로 알려졌던 아파치 부족과 같은 경우 장기간 유럽에서 온 백인과의 전쟁을 벌여 결국 패배하였지만 실상 그들의 주거지가 북아메리카가 아닌 유라시아 대륙이었다면 어떻게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른다. (또한 반대로 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수렵을 중심으로 살았기에 호전적인 부족성이 생겼을런지도 모른다.)


어쨋든 아파치부족은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가 식민지를 세우거나 파나마를 지내서 남아메리카로 영토확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경적 요인 그 가운데 지형적 요인이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화살촉을 만들고 누군가는 만들지 못한 부분이나 바퀴의 발명과 같은 요소들은 환경의 지대한 영향보다는 한명의 인간의 어뚱한 발상이 더 큰 요일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 하드캐리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비록 인류사를 표현하는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류의 역사는 몇몇 개척자들이 하드캐리하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드캐리란 누군가가 거대한 조직이나 단체 등을 강력하게 끌고 간다는 뜻이다. 구성원의 부족한 부분을 한 명의 사람이 이끌어나간다는 뜻이다. 주로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이다. 영어도 아니면서 한글도 아닌 하드캐리라는 단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잡스가 애플을 하드캐리하고 김구선생님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던 시기 우리 민족을 하드캐리하듯이 누군가가 인류의 집단을 이끌어오는 것이다. 더욱이 초기 인류일수록 영웅적인 힘이나 발명의 힘을 가진 사람이 강한 견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사람의 비중이 유라시아 지역에 더 많이 분포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치 평야지대인 프랑스에 살았고 평범한 한 명의 포병장교로 시작한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진군하여 전 유럽을 평정한 것은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류 발전의 변화과정이 있음을 역으로 증명하지 않는 것인가 싶다. 또한 기마민족으로 시작하여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나 동유럽까지 국가를 확장하였던 칭기스칸 역시 환경적 변수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몇몇 아웃라이어가 만들어가는 인류의 변천사를 증명한다고 본다.








이제는 지역적 변수가 많이 사라진 현대 사회는 총균쇠를 보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인류의 역사를 좌지우지 하였던 총과 균 그리고 쇠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총과 쇠는 눈에 보이는 위협이었지만 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기 때문에 균이 보여주었던 파괴력이 훨씬 더 어마어마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총은 쇠로부터 만들어졌으니 쇠를 가진자가 총을 미리 손에 넣기도 용이하였다. 하지만 이제 총과 균 그리고 쇠 앞에서 전 인류가 꽤나 평등해졌다. (당연히 완벽한 평등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전 인류 중 일부가 균으로 인해 몰살당할 우려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수렵인들이 수렵의 생산성이 충분히 높았을 경우 경작을 하지 않고 경작을 하지 않을 경우 정주형 주거를 하지 않고 정주형 주거를 하지 않을 경우 가축을 키우지 않았던 것과 같은 지역적 환경적 격차 역시 줄어들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정주형 주거를 하고 있으며 모든 대륙과 대부분의 국가가 유사한 가축 그리고 작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와 같은 지역적 변수가 사라진 대신 다른 지역적 변수들이 등장하였다. 우리는 품종과 유전자를 교환하는 대신 상품과 자원 혹은 화폐 (혹은 그에 준하는 가치)들을 주고 받는다.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균 대신 문화가 스며들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총균쇠의 시대를 지났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서로의 국가간에 혹은 지역 및 대륙 간에 운반하고 있다. 리적 이점의 시대는 지났지만 무엇을 운반하고 무엇을 얻을 것이며 어떻게 발전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는 여전히 각각의 사람마다의 과제로 남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총균쇠 안에서는 중국의 관점에서 동이족의 방향에 위치했던 나라 혹은 독립적인 언어를 만들어냈던 나라 중 하나로 비춰졌던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기도 하다. 그리고 애초부터 훌륭한 자원 보유국이 아니라는 점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가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에게도 큰 관심의 거리였던 한국과 일본 그 오묘한 관계


모든 국가들은 하나의 둘이되기도 하고 둘이 하나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수십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유럽도 로마 시대에는 거의 하나의 국가였고 그렇게 하나였던 국가가 다시 각각의 나라로 뿔뿔히 흩어지기도 한다.


역사는 항상 돌고 돌아 하나였던 우리도 둘이 될 수 있고 둘이 었던 남도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합쳐짐과 흩어짐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유난히도 적대적 관계였던 한일 관계에 대해서 오랜기간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의 뉘앙스가 나에게는 그냥 책을 읽는 한국독자의 기분을 크게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자가 써 놓은 예의상의 문구 정도 이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책의 막판을 장식하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의 부분은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는 내용이지 않은가 싶다. 그 사실관계가 아무리 밀접한 민족임으로 판명되었다하더라도 현재의 우리는 매우 다르고 서로가 다르고 싶어하는 부분이 많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왜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내용의 글을 썼고 조몬인과 야요이인에 대해 대한 연구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는 그 챕터 안의 글들은 그가 오랜 시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던 뉴기니의 인류문화 발전과 같이 직접적으로 관찰된 무엇에 의해 나온 내용이 아니며, 그만큼 책 전체의 감동을 유지시켜주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챕터이다. 


혹시 한국인이 보게 될 문화사상사의 책이기에 일본에 관한 내용을 특별히 넣어주었던 거라면 난 이챕터에 반대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이다.) 








처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서 처음 고민하였던 것은 이 책을 사서 읽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첫 챕터만 읽고났을때 이미 이 책을 돈주고 사서 읽을지 빌려서 읽을지 고민했던 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다.


거기에 이책에 대한 독서평을 이렇게 브런치에 10,000자 가까이 되는 글로 표현을 하고 보니 더욱 더 이 책이 훌륭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경외감조차 든다.


이번 내읽책_총균쇠를 쓰면서 작은 고민이 되었던 것은 인류역사 혹은 세계사적인 지식과 소양이 극히 적은 내가 이처럼 방대하고 깊고 훌륭한 책에 대해 어떤 나의 관점을 적는다는게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나의 인류학 분야에서의 수준 차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단적으로는 제로투원의 저자 피터틸과 독자인 나의 수준보다 훨씬 큰 격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이 결코 피터틸과 나의 차이가 적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피터틸과 나의  차이는 넘사벽인데,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나의 차이는 넘사벽+안드로메다 정도 된다는 의미이다.)


총균쇠에서 받았던 이런 좋은 느낌이 사피엔스에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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