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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Mar 14. 2016

내읽책_사피엔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인간에 대한 존재 가치가 도마위에 오른 지난 한주였다. 알파고가 한 주 동안 신나게 우리를 홀렸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이 땅위에서 문명을 건설한 유일한 생명체인데 7만여년을 생존해온 우리 종이 가장 큰 질문 앞에 놓인 셈이다. 아마도 인간 즉 사피엔스가 이 땅에 살아오게 된 이후로 전 인류에게 공통의 질문이 크게 하나 떨어진 것은 처음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이런 질문이 우리 앞에 놓인 시점에 읽기 가장 좋은 책을 읽게 되었다. 바로 '사피엔스'이다.


이 책은 책을 읽기 전부터 몇 가지 매력 포인트가 있다. 먼저 총균쇠의 저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추천한 책이라는 사실 (유발 하라리 역시 총균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한 다른 한 사람이 바로 마크 주커버그라는 사실 (인공지능 기술 경쟁에서 다소 뒤쳐진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는 조금 우울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표지가 너무 예쁘다. 영문판은 더 예쁘다.


그런데 갑자기 쌩뚱맞은 질문이 생긴다. 저 지문은 유발 하라리의 지문일까?








이제는 끊길 염려가 없는 역사 (Immortal Data의 시대)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간다. 만약에 역사가 아니라 사건이라면 그것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어져왔다. 태초에 지구가 생기거나 혹은 화산이 폭발하였든 아니면 운석이 충돌하였든 공룡이 멸망한 일 등 일은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사람은 이처럼 일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오며 이룩한 부분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가 되었다.


한편 역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적혀 있기는 한데 해독이 불가능한 과거의 역사와 적혀진 이래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계속 전해 내려오는 역사이다. 그렇다! 




역사를 나누는 기준으로 '단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중간에 '역사의 단절'이라는 부분을 이야기 했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의 매우 중요한 굵은 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사의 커뮤니케이션의 집대성이 역사의 골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그 부분에 있어서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의 가장 큰 변화로 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변화를 꼽았지만 나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단절없는 역사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즉 사피엔스가 이전의 세대의 사피엔스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못하고 과거의 사피엔스의 실패 등을 답습하지 않고 지혜의 이식없이 살아왔던 시대가 서로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치 이세돌의 기보를 보고 학습한 알파고와 같이 과거의 명백한 기록이 전해지는 세대 이후의 사피엔스가 난 무척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이제 사피엔스는 과거에는 종종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역사적 단절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사피엔스들은 종이와 펜으로 스스로 글을 쓰는 1차 기술, 책으로 출판되는 2차기술 그리고 디지털로 저장되는 3차 기술과 3차기술 안에서 백업을 통해 기록을 이중화하는 3.5차까지 역사는 반복되어 기술된다.


종말이 오면 올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앞으로 역사의 단절이란 있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부분은 과거의 단절된 조각을 맞추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인류의 소재가 될 것이다. (사실 맞춰져야 하는 과거의 소재들은 이미 거의 다 많은 사피엔스의 노력에 따라 맞춰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팔만대장경은 아름답다. 현대의 지식 저장과는 다르게




이제 우리는 팔만대장경을 가벼운 하나의 파일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저장 가능한 용량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지혜가 연결되고 있으며 그 덕분에 과거 사피엔스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지구 상의 사피엔스들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언어를 서로서로 사용 가능하게 된 Multi Language Generation에 이르면서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다. 그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정보 호환과 이나라와 저나라의 정보 호환 과정에서의 Loss는 혁신적으로 감소되었고 앞으로는 아마 단절이 없는 정보 영원(Immortal Data)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견인한 힘은?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지구를 정복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지능과 사고의 범위였을 것이다. (인류는 여전히 지능지수라는 수치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리고 같은 사피엔스 안에서도 어떤 부분이 각각 나뉘어져 살고 있던 사피엔스들의 운명을 결정하였을까?

욕심? 호기심? 정복심! 이런 부분들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욕심이나 호기심 그리고 정복심이 부족한 것만으로 누군가 더 멀리 여행을 떠났고 더 많은 실험을 하였고 더 깊이 연구를 했다고 보기에는 내 생각에는 인종 간의 욕심이나 호기심 혹은 정복심 간의 차이는 많지 않다고 본다.


내가 결국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그 결정적 차이는 '결합력'이다.


사피엔스 안에도 나와 있듯이 (정확히 유발 하라리는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상상과 실행의 결합이나 과학과 정복의 결합 모두 유일한 공통점은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두 1차 방정식을 풀고 있을때 2차 방정식을 풀어 내려고 어떤 사피엔스는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플러그도 결합해야 힘이 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부분을 결합하여 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알파고 님은 아직 가지지 못한 인간에게 몇 가지 남지 않은 고유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능력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TV를 보면 어려운 야생의 상황에서 자연 환경과 도구 그리고 사람의 힘을 엮어서 생존 환경을 구축하는 '병만족장님', 그리고 주어진 수식 안에서 숫자나 도형을 그대로 보지 않고 패턴화 추론을 하는 등을 통해 창조적으로 답을 구해내는 '뇌섹시대-문제적남자'의 출연진은 서로 완벽히 다른 역량을 보여주지만 




'결합력'이라는 인간의 공통적인 장점을 활용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1차적으로는 한정된 판이나 조건 안에서 답을 찾아내는 논리추론으로부터 실제 사람의 환경 안에서 해답을 찾는 상황추론에 대한 부분까지 모두 여전히 사피엔스가 가지고 있는 강점인 것이다. 언젠가는 알파고가 상황 인지 능력을 갖추게 되어 아가사 크리스티 수준의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 추론 능력 및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 부분은 인간의 땅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결합력을 가장 열심히 발휘한 유럽인들이 최초의 지구 패권을 장악한 것이다. 다만 이것이 우연인지 민족성인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민족성을 떠나서 多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간 경쟁 및 전쟁이 활발하고 오늘의 나라가 언제 없어질지 몰랐던 유럽의 특징 상 유럽을 벗어난 지역에 대한 욕망은 다른 지역보다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의 경우는 국지전을 제외한 국가간 전면전의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을테지만 유럽은 항상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여건은 다른 지역에 비해 용감한 유럽인이 짐을 싸들고 배를 타고 나설 수 있도록 부채질 하였을 것이다. 이후에 국가의 왕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인 왕이 있었던 사실들은 '해외로 떠난다.'라는 니즈가 있는한은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어느나라에서든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들이다.








무엇이 동양과 서양을 갈라 놓았나?




결국 모험의 관건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관점은 아니다. 얼마나 그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슈에 가깝다.


그리고 내부의 세계가 치열할수록 미지의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것과 같이 사람이 느끼는 느낌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한계치가 정해져 있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상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중국의 한족이 세운 국가가 아닌 징기스칸이 더 먼 유럽까지 정벌에 나섰던 것은 항상 어려웠던 민족 국가의 특징 상 가능할때 더 많이 진군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이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본인 스스로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으며 일개 포병장교였던 과거가 있었기에 먼 곳의 적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없애기 위해서 끝없이 진군하였을 것이다.




바스코 다가마의 사진, 그는 인도에 총 3번 갔었다는데 사진이 젋은 걸로 보아서는 한 두 번째 정도 쯤 그린 초상화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바스코 다가마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그리고 퍼디난드 마젤란 등 역시 삶이 편안했다면 모험을 떠났을리는 없다. 그들 역시 그 당시의 다른 모든 사피엔스가 그랬듯이 스스로의 지적 물적 욕구보다는 국왕에 대한 충성의 범위 안에서 모험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 생각에는 그 모험이 전 유럽에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는 달리 유럽은 다수의 왕이 지배하는 정치적 관계 상에서 서로 간의 탐험 경쟁이 촉발되기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과 같이 지역적으로 궁금증이 발생하지 않는 지역은 모험을 떠날리가 없다. 정확하게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아랍의 경우는 인도와 유럽을 양쪽으로 맡닿아 있었기 때문에 양쪽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덜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발 하라리와 다른 유럽발 탐험 개척의 이유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하기 시작하고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사람을 신뢰하고 그 신뢰를 기반으로 은행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유럽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 역시 유발 하라리의 관점에 동의 한다.


어쨋든 그렇게 생겨난 경제론적인 관점 즉 돈이면 OK라는 관점은 정복전쟁 이후의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심적인 불안감으로 동네를 박차고 나온 징기스칸이나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유럽 내에서 안정된 인생을 확신할 수 없어서 동네를 박차고 나온 동인도회사나 서인도회사나 모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비슷하지만 토벌과 정복으로 마무리하였던 징기스칸과 경제적 수탈에 집중하였듯 정복자의 목표가 정복 이후 서로 달랐던 것은 하나의 지역을 땅으로 보는가 혹은 돈으로 보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다.




동인도 회사, 사자 표정이 못되 보인다.




그리고 현대의 사피엔스는 또 다르게 변화했다. 이제 콜롬버스 그리고 동인도회사와는 다르게 현대의 사피엔스들은 기업과 같은 형태로 계산된 형태의 모험을 떠난다. 미리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확인하고 달에 착륙하거나 위성사진을 보고 나서 전쟁을 시작한다. 하다못해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차리더라도 시장조사를 하고 예상 수익을 뽑아본다. 사피엔스가 가지는 모험에 대한 특징 자체가 바뀌게 된 것이다. 








과학은 어떤 부분에서는 신들을 무장해제시켰다고 유발하라리는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무장해제 당한 것일까?


설마 그럴리가 없다. 신들은 논리적인 부분에서 무장해제 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의 삶 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진리를 찾으면서 여전히 주말에는 신을 만나기 위해 종교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을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신과 인간의 접점이 발생하였다.'




물론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이 신이 되려면 신을 끌어 내려야 한다. 인간이 그냥 신 옆에 갈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은 신을 닮은 행동을 하면서 악마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네안데르탈인의 부활은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네안데르탈인을 우리 사피엔스가 멸종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합쳐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총균쇠를 먼저 읽었던 사람으로 '사피엔스'를 총균쇠와 같은 방식으로 책 이름을 지었다면 '돈과 신 그리고 상상'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이 책은 돈(자본주의 체제), 신(군중을 이끄는 신념)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축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인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것은 물론 책 자체의 내용에도 있었지만 유발 하라리라는 작가 자체가 우리의 고정관념속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펼쳐내기 어려워 보이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에도 있었다.


어쨋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추천과는 상관없이 이 책은 총균쇠와는 아주 다르게 인간사를 다루고 있으며 총균쇠보다 훨씬 쉽게 읽혀지는 최고의 책이다. (하지만 감동의 수준은 총균쇠도 못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유가 있는 모든 이가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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