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seung Mun Dec 02. 2016

희망은 조절하고, 욕심은 관리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이런 셀프매니지먼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희망' 그것만큼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별로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희망의 존재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은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여기 희망을 쉽게 품는 사람을 한 명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밝아 보일 수 있다. 바로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의 소유가 지나치게 빈번해지고 지속적으로 바뀌면 일종의 희망 중독으로 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나 역량보다 될 수 있다는 바램이 지나치게 커져서 현실보다 자신의 위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지나치게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희망적인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적합한 가치관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희망을 품는 다는 것은 그 결과의 연결선상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기대했던 희망이 현실이 되지 못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좌절을 맛보기 때문이다. 희망이 클수록 실패의 좌절은 배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과 희망을 분리해야 한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다소 막연하지만 욕심을 가지는 것은 좀 더 실체적이다. 욕심을 가지고 뛰며 결과를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와는 조금 반대이지만 깨어져도 괜찮지만 잠시 즐거운 것으로나마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1회용 희망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내가 가끔 복권을 사거나 해외에서 몇 달러 안되는 돈으로 카지노를 해 보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절제할 수 있는 1회용 희망은 십달러를 천달러로 늘리길 바라지 않고 잠시 바람을 쐬고 오듯 십달러가 바람에 날려가도 그대로 초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분명 좋은 의미이다. 하지만 이 말을 안 좋은 뉘앙스로 듣는 사람들은 '욕심=탐욕'이라는 방정식이 머리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영어로 치자면 Desire와 Greed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희망과 욕심 역시 분명 다르다. 욕심은 보통 단순한 희망과 달리 실행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희망과 욕심의 차이에 대하여 랩퍼 산이는 '성공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성공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을 노래 중에 이야기한 바가 있다.


욕심과 성공에 대해서는 한 가지 더 짚어갈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해냈다.'이며, 다른 하나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이다. 성취의 관점이 매우 다른 것이다. 둘은 너무나도 다른 가치이다.


여기에는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있기 어렵다. 다만 지나친 욕심은 해낼 수 있는 일을 그르치거나 더 좋을 수 있는 결과를 좋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성공이나 만족을 위한 시작은 희망조절과 욕심관리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일념이 장착된 경우에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월 늦가을의 제주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