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seung Mun Mar 10. 2016

인간의 삶 속에서 변수와 다양성 그리고 완벽의 시소게임

완벽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

알파고는 가볍게 2승을 챙겼다.

가슴은 아프지만 바둑의 땅에는 인공지능의 깃발이 꽂혔다. 그리고 다음은 스타크래프트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10803




위의 기사 안에서도 나와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몇 가지 이유에서 바둑과는 다르게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콘트롤도 그렇고 자원채취와 관리도 그렇고 인공지능은 모든 운영을 완벽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이 '유닛 동시조작 금지', '사람의 평균에 가까운 수준의 APM'과 같은 제한을 걸게 되더라도 사람은 인공지능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바둑과는 달리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초반러쉬 등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초반러쉬 정도로만 겨우 이길 수 있는 스타 대결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스타 크래프트 분야로 학습이 된 알파고는 그야말로 기계적인 콘트롤과 백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주기적 멀티 정찰 그리고 가시 영역 안에 들어온 적군을 제압할 수 있는 최소/최적의 회군 등을 통해 인간 챔피언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실제로 알파고와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면 지금 이미 펼쳐진 바둑 대국으로 인해 사람들은 알파고가 스타를 사람으로부터 이기게 된다고 하여도 그러려니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이 부분에서 조금 다른 생각이 있다. 알파고가 바둑을 이긴다는 것은 그냥 인간의 놀이 혹은 유희의 분야에서 인간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이긴다는 것은 고도화된 컴퓨팅 커맨드가 구축된 국가가 있다면 전쟁의 관점에서 용맹한 인간이 이끄는 인간 중심 군대는 인공지능 중심의 군대를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간이 총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인공지능은 센서 네트워크로 정확히 인간을 타겟팅하여 공격할 것이다. 혹시 인공지능이 아량을 베풀어 준다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확실하게 이기는 범위 안에서 작은 실수들은 주듯이 승패에 상관없는 실수들 정도는 해 줄 것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바둑판 위에 죽어가는 돌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수치상으로 저격이 가능한 범위는 모두 그렇다.









인간은 변수라는 존재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완벽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사람들이 좋아하는 완벽은 인간적인 완벽이다.

예를 들어 95-96시즌 72승 10패를 기록한 시카고 불스 그리고 현재 57승 6패로 그 기록을 위협하고 있는 2016년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모두 리그의 절대 강자 이지만 패배할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각각 10패와 6패 를 기록하였고 의외로 약팀이라고 불리는 팀도 당일의 컨디션이나 징크스로 강팀을 잡아낼 수도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의 강자는 항상 이런 느낌이었다.


그것은 무적이 절대 아니며 변수 안에서 패배가 가능한 존재이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와 게임들이 지나치게 압도적인 대상이 생겨나면 흥미가 떨어지고 관심이 줄어드는 법이다. 어차피 누가 이길지 뻔한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웹 상에서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두 개의 알파고가 서로 대국을 하면 어떻게되까?'와 같은 질문 말이다. 내 답은 이렇다.


CPU가 1,000개 달린 알파고와 CPU가 10,000개 달린 알파고 간의 바둑경기가 벌어진다면

1. CPU가 1,000개만 있어도 바둑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연산할 수 있다면 그 둘이 비길 수도 있을 것이고

2.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당연히 CPU가 10,000개 달린 알파고가 이길수 밖에 없다.


즉 이 경기는 완벽히 변수가 없는 경기이다.








넷 상에서는 스카이넷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스카이넷은 터미네이터 2편에 나오는 슈퍼컴퓨터의 이름으로 인류를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하려는 악한 존재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스카이넷에 대한 이야기를 우스갯 소리 반 그리고 진지한 마음 반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만약 실제로 스카이넷과 같은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면 그 느낌과 실제적은 힘은 어떨까? 일단 내 생각으로는 현재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IoT와 센서 네트워크 그리고 인공위성 등의 범위 그리고 향후 이와 같은 센서 네트워크의 확대에 따라 트래킹이 불가능한 곳이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트래킹을 안하는 곳은 있을 수 있다. 그건 말치  알파고가 아예 계산을 하지 않는 수와 같을 것이다. 즉 무엇이 존재하더라도 무슨일이 벌어지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결국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과 같이 말이다.)


즉 이말은 현실 속에서 사라코너 님은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어디에선가 숨어서 은밀하게 인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인류 문명은 다양성에서 나왔다고 배웠다. 그리고 다양성은 변수가 있음을 의마한다. 변수와 다양성은 그런 부분에서 맥을 같이 한다. 한편 완벽은 변수를 완전히 차단하였음을 의미한다.


인류는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로 압도적으로 많은 변수들 속에서 생존을 위해 '완벽'을 추구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현생의 인류는 이제 '변수'와 '완벽'의 축 사이에서 완벽쪽으로 점차 삶이 기울어가고 있다.




지나친 밸런스와 안정성 덕분에 변수가 차단되어가는 것이다.


좋은 예는 아닐 수도 있지만 금수저/흙수저에 대한 사회의 계층화에 대한 이야기들 조차도 처음 가지지 못하고 태어난 이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변수'가 차단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인류의 생활 속에서도 변수가 차단되고 있는데 이제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의 많은 변수가 더 많이 차단된다면 그런 세상이 사람이 살기에 매력적인 세상이 될지 큰 의문이 든다.

물론 부분적으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부분 예를 들어 환경보호 등과 같은 부분에서 '완벽한' 것은 너무 좋겠지만 어떤 누군가는 군사적 완벽함을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세기형 히틀러처럼 말이다.


인류의 다양성은 약자가 변수를 찾아오는 과정안에서 보호되었다고 생각한다. 변수는 이처럼 중요하다.








다시 스카이넷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결국 현실 속에서 스카이넷과 같은 시스템은 외형적으로는 알고리즘 덩어리이지만 그 뒷면에는 사람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이제 현실적으로 살짝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모두 똑똑한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인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도자 하는 주체가 결국 사람인 셈이다.


우매한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한 사회 안에서 '변수'와 '완벽' 공존하는 인간 사회 속에서 인간이 가운데 서서 중심을 잡고 몰인간적이거나 탈인간적이지 않은 중간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완벽에 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스카이넷이 등장한다면 그 스카이넷 뒤에 조종자인 사람이 있던지 혹은 모든 사람의 뒤에 스카이넷이라는 조종자가 있던지 두 가지 시나리오 모두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쿠르트 아줌마의 커피팔기 사업모델 살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