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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Apr 15. 2016

내읽책_왜 분노해야 하는가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지적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많은 사람들이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와닿지는 않을것이다. '분노'라는 단어는 워낙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 강렬하기 때문에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고 한다면 정말 왠지 무엇인가를 들어 엎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이 책을 보고 느낀 내용은 우리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불평등의 요소들에 대해서 우리가 모두 '인지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또한 그 불평등의 부분은 경제적 관점에서 소득과 재산에 대한 불평등과 기회에 대한 불평등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특별히 총평을 먼저하겠다.


책의 내용은 매우 일리 있고 구성이나 흐름에도 어색하거나 너무 억지 스럽다는 부분까지는 없다.


게다가 정말 이 책을 쓰고 싶으셨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셨다. 약 470페이지 가량되는 전체 책 중에서 주석부에 해당하는 약 40페이지를 제외한 실제 책의 분량인 430페이지 중 내 생각에는 거의 100페이지 가량은 통계 차트 이미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많은 데이터를 담았지만 사실 데이터의 풍요속에서 책은 잘 읽혀나가지 못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실이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너무 많은 데이터들이 동원되다보니 데이터를 읽는 것인지 글을 읽는 것인지 혼란이 오기도 했다.


실제로 글의 메시지 부분에 있어서도 동일한 논지가 너무 여러번 중복 언급되는 듯한 느낌도 많이 있었다.


즉 올바른 글이지만 쏙 들어오는 글은 아니었다.



 





이책은 평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써진 글이다.


그렇다면 사람(인간), 노동(댓가)는 얼마나 평등해야 하는 것일까?


완전한 평등이란 무엇일까? 당연히 완전한 평등이 (양적으로) 동일한 규모의 분배나 같은 양의 재산이나 급여일 수는 없다. 이 책 중간에 그런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런식의 사고는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 그 무엇에든지 위배되며 이 사회를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끌어온 힘의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소득이나 재산의 차이가 지나치게 현격한 것도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사람(인간)의 기본적 삶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수준으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처럼)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나치게 왜곡돼지 않은 평등의 개념은 저 둘 사이에서의 줄다리기이다.




그리고 과연 우리나라/우리사회는 그 수준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소득이나 재산의 편향이 타 국가에 비해 얼마나 심한 수준인가로 측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지표로 OECD 평균 등이 수치를 제시한다.

한편 이런 수치들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OECD 대부분의 국가들이 소득/재산 불평등으로 이미 편향된 수준을 가지고 있다면? 동량(同量)의 분배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지만 공평하고 불평등하지 않은 분배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정의내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업의 '이윤의 극대화 = 분배의 최소화'프레임워크가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부분으로부터 시작해서 고용불안정과 사회보장제도로부터의 안전망 그리고 노동조합 등의 측면까지에 걸쳐 우리나라의 고용형태가 기형적임을 전방위적으로 지적한다.

이 정도라면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불평등한 정도에는 대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등함이 아래 사진에서 나온 것과 같이 재산에 비례한 벌금의 수준이라면 그것에 반대를 할 사람은 아주 많아 보인다. '잘못'은 '잘못'에 비례하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지 '잘못'의 결과가 1차적으로 '재산'에 비례하는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적용은 할 수 있지만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반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과속이라면 게다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 상습범이 아니라면 차라리 면허 취소가 맞다고 본다.








한편 기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고 부르지만 실제하지 않는 상상 속의 존재라고 이야기하였다. 그 개념을 장하성 교수 역시 마찬가지로 기업은 자본의 흐름이 through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다만 사피엔스에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인간은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 상상과 신념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기업 혹은 회사가 굳건해서 내가 잘 살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큰 상상의 범주에 있는 국가가 올바르게 유지된다는 신념으로 까지 연결이 된다. (이와 같은 상상속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존재가 운영될 수 있으며 경제학이라는 과목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상상과 신념은 물론 꼭 있어야만 하지만 '삼성전자가 사라지면 우리나라는 망해!'와 같은 일반화되지 않은 특정 대상에 대한 신념은 위험하다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작가와 의견을 같이한다.




기업이 사라지는 것과 나라가 사라지는 것은 차이가 있다.





 예금 -> 기업 -> 나?








한편 그 외에도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간략히 적어본다.


불평등을 조정하는 방법은 분배와 재분배가 있을 수 있다. 분배는 애초부터 발생하는 소득이며, 재분배는 복지정책을 통한 삶의 퀄리티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분배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임으로 조정이 불가능하며 재분배는 국가주도의 복지정책이지만 예산을 늘리기 어려워 쉽지 않다. 복지정책을 하려면 과세를 해야 하는데 가장 과세를 하기 적합한 대상은 기업이다. 결국 기업이다.


자영업자는 더 힘들다. 많은 지표들이 그렇게 이야기 한다. 심지어 많은 자영업자들은 법적최소임금 수준 이하의 소득을 가지고 있다. 이건 모두 불경기 때문인다. 그리고 국가는 그 답을 찾아주지 못하고 있다.


은행과 같이 안전한 구조의 조직들은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국민들의 보편화된 (저축에 대한)정서로 인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지 않다.


재산과 소득은 모두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불평등하다. 재산은 상위와 하위간의 격차가 매우 크며 좁혀지지 않고 있다. 소득은 과거에 비해 상위와 하위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는 조직 혹은 국가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




은행이 문제?




끝없이 힘든 자영업자




소득은 최상위층을 제외하고는 대물림이 어렵다.




결론은 둘다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바늘구멍에 들어가려고 아우성인 사람들의 이미지가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아마도 삶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삽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분배' 혹은 '재분배'의 문제는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와 같은 표현과는 설명하고자 하는 영역이 달라보인다.


나는 이 부분을 포함하여 분배와 재분배 그리고 기업의 유보금, 정부의 친재벌형 정책, 청년세대의 어려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 등이 연결되어 '왜 분노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서로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완벽히 연결되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 한 권의 책 내용이 2권 정도의 책으로 나눠어 써졌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합쳐 놓으니 




일단 분노하기로 해 놓고 그 이유를 억지로 연결해 놓은 기분이다.




그런 부분이 기본적인 내용은 훌륭한 이 책에 있어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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