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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Apr 12. 2016

내읽책_유토피아

21세기에 읽는 16세기의 유토피아

이 책은 <서울대선정 인문고전50선>에 선정된 책이며, 


꼭 서울대가 선정하지 않더라도 익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커뮤니케이션 북스를 통해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그럼 내가 읽은 '유토피아'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꼽아보자.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라고 네이버 지식백과를 통해 (좀더 자세히는 두산백과의 출처이다.)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용어는 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무어가 만들어 낸 단어이다.


토마스 무어는 이 책을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요소를 토마스 무어 자신의 관점으로 분류하고 이 각각에서 유토피아라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안에는 어떤 면은 20세기 혹은 21세기를 기준으로 자유주의 적인 성향이 적혀있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내용들은 공산주의적인 성향이 적혀 있기도 하다. 또한 어떤면은 매우 개방되어 있고 열린 사고로 나올 것 같은 부분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매우 규율적이고 속박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결국 21세기까지 다 이르르지 못하고 그 전에 이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아주 이상적인 세상이란 현대의 여러가지 이념과 사상이 조합된 결정체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면이 20세기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사회와 그 교집합 등을 생각하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보게되는 이유일 것이다. 마치 <해설> 부분에 적혀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살지만 우리는 '유토피아'를 보고 각자의 마음 속에 서로 다른 유토피아를 하나씩 그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도둑질


도둑질에 대한 부분에서는 도둑질이라는 행위에 대한 죄질과 그에 대한 처벌의 범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시만하더라도 도둑질이 다른 흉악범죄와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16세기만하더라도 현대와 같은 대규모 관계농업등이 발달되지 않아 식량이 풍족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 결과 이에 대한 도둑질은 곧 그 식량을 먹음으로 인해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도둑질이라는 죄질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토마스 모어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훔치는 자의 입장을 기술하였다. 자신이 훔치지 않으면 '영락없이 굶어죽게 되는 상태'를 언급하며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위한 범죄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그런 잘못에 대해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같은 다른 노역을 통해 죄를 감면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21세기 시민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도둑질에 대한 토마스 모어의 입장이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될 것이다. 허나 과연 우리가 16세기를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 인권에 대한 개념이 있었을까?







그는 살인과 도둑질의 죄의 깊이의 차이를 언급한다.


즉 잘못이 없다가 아니라 잘못이 다르다 라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정치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자신이 살았던 영국을 기본적인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아래 이미지들에 나와 있는 주석이 모두 그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나는 어쩌면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소설적으로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혹은 예전에 살았던 곳들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도 하듯이... (그렇지 않으면 극이 사실성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물론 천재 작가들은 완벽히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 내지만)














한편 사람의 삶은 오백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토마스모어는 '사이비쾌락'이라는 챕터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외모 혹은 외형과 자신의 캐릭터 혹은 성품을 동일시 하는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허영과 같은 특성을 그는 일종의 쾌락으로 정의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듯하다. 허영심도 자신의 쾌락의 산물이니.











노예에 대한 부분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이 책의 판타지를 모두 깨주는 역할을 한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인데 노예가 있는 유토피아라니...


그렇다면 그 노예들이 바라보는 유토피아는 뭐가 되는건가? 그들에게도 그 세상이 유토피아 일 수 있는건가?


게다가 노예에 대한 상대적 정당성을 시사하기 위해 세습노예가 아닌 범죄에 따른 노예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그조차도 조금 쿨하지 못해 보인다.











한편 사람의 삶은 오백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2


안락사라니!


사람이 죽고사는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고 더 나아지지 않을것 같은 중병환자의 인권과 보호자의 인권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날까지 아마 평행선을 그리지 않을까 싶다. (그 둘 다 소중하니까.)











이 책 안에서 가장 보수적인 챕터는 '결혼'이다.


이 장에서는 결혼에 있어서 남여의 나이 제한 및 이를 어길 경우 받게 될 처벌(?)등을 명시한다.


1. 재미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 가능 연령이 다르다는 것 (왜 달라야 하는거지? 이것도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 그리고 결혼을 허용하는 남여의 나이 연령차이가 4살이라는 것이다. (4살차이는 궁합도 안본다더니)






결혼에 이어서 형벌의 범위에서는 간통이 가장 엄한 노예형에 처해진다는 부분이 있다.


역시 유토피아의 기준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고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유토피아가 막아야 하는 가장 큰 가치로 제시되는듯 하다. 역시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유토피아는 결코 어려운 내용의 책은 아니다.


게다가 책이 얇아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책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은 다 읽고나서 그 책의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고 더 나아가 현재의 사회와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다시 한 번 비교하거나 정리를 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한 책이다. (아마 그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나도 한 번 시간을 내어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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