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선의』(이소영)를 읽고
현대인의 가슴 속에는 가시가 있다. 가시의 이름은 ‘고민’이다. 고민의 끝은 유달리 뾰족해서 아무리 작아도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괜찮은 듯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떠오른 고민의 존재에 괜스레 울적해지곤 한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누군가는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또 누군가는 연인과의 마찰로 인해 마음속에 고민을 쌓아간다.
세상은 유난히 개인의 아픔 앞에서 냉정하다. 개인적인 고민을 남들에게 쉬이 드러내다가는 ‘징징댄다’, ‘프로답지 못하다’, ‘공과 사를 나누지 못한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선 대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미생에 완벽을 요하는 사회에서 완생인 ‘척’을 하는 그들. 무미건조한 사회를 바라보며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점점 두려움을 느낀다. 속으로는 뾰족한 가시에 찔려 아파하면서도, 웃고 넘긴다. 넘기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별것 아니야’라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짓말쟁이, 속으론 힘들어서 미치겠으면서.
이소영 작가의 <별것 아닌 선의>는 별것 아닌 당신의 고민에 던지는 작은 선의들을 다루는 이야기집이다. 작가는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공부를 이어가다가, 제주의 한 대학에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교수이다. 작가는 여타 유명한 자선활동가들처럼 꾸준한 선행을 해야 한다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획기적인 정책을 제안해야만 선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인사에 웃으며 응하고, 금방 샀던 빵 몇 개를 나누는 것,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그리고 행하는 작은 선의들이다. 놀라울 만큼 평범한 삶의 모습들, ‘좋은 의도’라는 따스한 표현이 무색할 만큼 그것은 담백하다.
선의의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가볍게 넘어가는 책장과 달리 마음 한쪽에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선하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했던 거창한 표현이 아닌 듯해서 답을 삼킨다. 돌아보면 우리는 ‘선하다’는 표현에 박하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이어야 하고, 세상을 바꿀 만큼 대단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선하다’라는 수식어를 허락했다. 생각해보면 어제 내게 좋은 의도와 함께 행복하게 해주었던 사람은 당장 내 주변에서 사는 평범한 이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힘들었겠구나’하며 무심하게 던진 투박한 한마디가 얼었던 마음을 녹이는 것처럼, 선의는 거창해야만 하지 않다.
사회는 선의의 자격에 대해 논해왔다. 조심스레 내민 작은 눈길에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괜찮은 척 상처를 외면하며 쌓아온 현대인의 방어기제는 타인에게 가시를 심고, 사회에 가시를 심으며, 나에게 가시를 심는다. 그래서 우린 선뜻 선해지지 않는다. 사실 그 누구보다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선하다는 수식어를 외면하기 위해 선하다는 수식어를 애써 포기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의 작은 눈길과 손길에 희망을 품었듯, 당신 역시 무심코 건넨 관심 하나로 사람을 구했다. 생각해보면 손에 박힌 작은 가시를 빼는 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의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아니었던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형태로 별것 아닌 선의를 내보였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도 말 못 할 아픔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다양한 고민의 형태 앞에서 때로는 무기력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나는 소중하지 않고 하찮은 존재라며 자책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사실 당신도 누군가에게 별것 아닌 선의를 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별것 아닌 선의를 나눌 소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의를 베풀면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해야 한다. 누군가는 별것 아닌 선의를 잔뜩 준비해두고 당신을 따듯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온정의 눈길을 주고받기 위해, 우리는 다가서고, 또 기다린다. 아니, 다가서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별것 아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며 위로를 나누었는가. 선의가 별것 아닐 수 있다면, 별것 아닌 나도 선의를 베풀고 또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토닥여본다. 작가가 일상에서 그러하였듯, 나로 인해 은은한 웃음 짓는 사람이 많은 삶을 살기를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우리는 모두 선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