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노트북을 바꾸면서 애플 TV+ 1년 무료 이용권을 같이 받았다. 자랑질이냐 그리고 제일 먼저 찾아본 쇼는 제니퍼 애니스턴 (알렉스 레비 역)과 스티브 카렐 (미치 케슬러 역)이 주연으로 나오는 ‘더 모닝 쇼’ (The Morning Show). 사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로 코미디인 줄 알고 봤다가 충공깽 너무 진지한 내용에 놀랐다.
‘더 모닝 쇼’는 #미투 운동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이다.
이틀 만에 이 드라마를 전부 다 보았는데 몇 년 전에 일어난 #미투 운동과 최근 일어난 Ubisoft (유명한 게임 회사, '어쌔씬 크리드', '와치독, '디비전'같은 게임을 제작했다)사 내의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이렇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더 모닝 쇼’의 호스트인 미치 케슬러, 그의 성적 부정행위 사실이 폭로되고 쇼에서 강제 하차당한다. 이어진 이혼과 땅에 떨어진 명성을 마주하며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외친다 “It was consensual!”, 즉 쌍방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B급 병맛 영화 취향이라, 드라마의 완성도를 이야기하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라 생각되지만, 보는 내내 나는 이 미치라는 캐릭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정말 성범죄자가 아닌 미투 운동의 희생자일까. 만약 아니라면 그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스포일러 주의!<<
(1) “나는 성추행범이 아니다”
미치라는 인물은 유머감각도 뛰어났고, 쇼의 호스트답게 카리스마도 있었다. 성적 부정행위가 폭로되기 전까지 대중,방송 스태프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리고 쇼에서 쫓겨난 이후 그는 줄곧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신은 아무에게도 성관계를 강요한 적이 없으며, 그들 또한 즐겼다고. 따라서 자신이 쇼에서 강제 하차된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장난해? 걔네도 좋아했다고. 내가 무슨 머리에 총을 겨누기라도 했어? 그건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진 거였어.
그리고 자신을 다른 성적 부정행위에 연루된 사람들과 구별하는 선을 그으며 스스로의 무고함에 더더욱 확신을 가진다. 에피소드 3화 딕 런드리 (#미투 운동으로 인해 방송업계 자리에서 쫓겨난 또 다른 인물)와의 대화에서 미치는 #미투 운동이 "청교도적이며 근시적"이고, 여성들의 고발이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평생 이뤄왔던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이야기한다. 맞장구를 치던 딕은 "상대방에 동의(consent)를 구하는 것은 섹시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과거 자신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과 공소시효가 지나 '운이 좋게' 처벌받지 않았던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미치는 놀란 얼굴로, “넌 (희생자가 아니라) 성범죄자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나는 너와 달라”, 라는 말을 하며 그와 경계선을 긋는다.
즉, 미치는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피해자 여성들의 이야기만 듣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은 #미투 운동의 희생자지만, '동의를 얻는 것은 섹시하지 않다'는 발언을 하며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딕은 명백한 성범죄자라고 생각한다.
(2) 그렇다면 미치의 정의대로 그는 희생자일까?
출처: Apple TV+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미치와 딕의 대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미치의 입장에서는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이 발언의 모호함은 아래에)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저지른 성적 부정행위가 딕보다 더 심각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된다면 후반부에 알게 되지만, 미치는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이 어떤 감정을, 생각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ism (차별) = Prejudice (편견) + Power (힘)
왜 관심이 없었을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힘의 불균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미투 운동 또한 단편적으로 여성들이 당항 성추행성에 대한 고발함과 더불어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호소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치가 “내가 총을 머리게 겨누기라도 했어?”라고 화를 내지만, 그의 권력, 그가 가진 직장에서의 사회적 위치 (북미 최고의 아침 생방송 쇼의 MC)는 보이지 않는 총, 무기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그와 여성 스태프들 사이 힘의 불균형은 동의를 얻는 것에서 암묵적 강요로 바뀌었다. 그를 거부한다면? 분명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의 스태프 중 하나는 그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졌었고, 쌍방 합의하에 그러한 관계를 멈추었다. 하지만 곧 미치는 그녀를 '같이 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팀으로 옮겨버리라고 지시한다 (그가 그녀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조정이 가능했다). 이렇게 보았을 때 그가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회사 문화 자체가 그래도 되는 문화니까.
그와 성관계를 가졌던 여성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은 이유는 (만약 그랬다면 잘렸겠지?) 동의를 통한 '선택'보다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 사이의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힘의 불균형을 무의식적으로 이해(또는 오해)하고 악용하여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한 미치는 결국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다.
여기서 내가 '오해'라는 부연설명을 붙인 이유는, 그는 자신의 행동들; 여성 스태프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 정당했다고, 그리고 그들의 변심에 의해 고발당했고 '희생'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잠깐 근데 쓰다 보니 기억난 건데 이 남자 유부남. 드라마 후반에 들어서는 스스로 모닝쇼에 게스트로 나와서 자신과 여성 스태프들 사이의 성관계를 상부층에서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신과 성관계를 가져서 "이득을 봤다"는 여성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가 주장하는 논리는 그녀는 그와의 성관계를 빌미로 승진을 했고, 따라서 그녀가 그와 관계를 가진 동기는 승진을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묵인된 채로.
(3) '동의'(consent)의 중요성
내가 심리치료사로 하는 업무 중 하나는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할 때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바로 '동의'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다. 드라마에서 미치가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그가 어떻게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동의란 '거부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범죄로 상담을 받으러오는 많은 청소년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침묵, 거부하지 않았다, 는 절대 동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성관계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는 것을 '차를 권한다'는 표현으로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만든 비디오가 있는데 마침 한글 자막 버전이 있어서 아래 링크로 공유한다. (비속어 많이 나옴, 욕 많이 나옴)
"걘 걍 차 마시기 싫은 거야. 알겠냐?"
(4) '더 모닝 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수많은 "ism", 차별들을 암묵적으로 묵인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다. 그것을 타파하고자 침묵을 깨고 일어난 것 중 하나가 이 #미투 운동이다.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변화를 위해 싸우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단순히 가해자를 벌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거시적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화까지 모든 것을 묵인하려고 했던 알렉스도 생방송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사에서 일어나는 성추행과 그것을 묵인하는 회사 분위기에 대해 고발한다. 그 침묵을 깨는 용기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다만 알렉스의 고발은 위험을 무릅쓴 용기보다는 (미치와 성관계를 가졌던 직장 동료의 자살 소식을 듣고) 홧김에 한 돌발적인 행동처럼 보인다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브래들리 잭슨이라는 캐릭터 또한 현실성이 부족한 캐릭터... 드라마를 평하려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 여기까지.
출처: Apple TV+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나를 대입해보게 되었다. '남성'이라는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내가 사는 토론토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평생 어떠한 차별도 느껴보지 못했던 내가 캐나다에 이민을 온 후,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고 무시당하는 사실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상처였다. 학교 동급생들과 선생에게서,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직장에서조차도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어왔고, 때로는 항의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을 그냥 무시하며 넘기게 되었다. 내가 화를 내 봤자, 그들은 왜 장난친 것에 호들갑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마치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한 여자 사원이 상사에게 화를 내자, 장난친 것 가지고 왜 그러냐며, 사회생활 못 한다고 오히려 꾸지람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적 발언, 그리고 성희롱을 '장난'이라고 치부되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 뒤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을 묵인해주는 사회적, 사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끼는 것은, 가해자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트라우마를 포함한 감정의 상처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느끼는 것은 말한 사람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사람, 즉 내가 판단해야 할 일이다. 성차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성적 수치심과 상처를 느끼는 사람에게 그 감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은 본인 외에 아무도 없다. 다만 많은 사회적 강자 (예를 들어 남자, 백인)가 사회적 약자 (여성, 유색인종)의 입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해 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군나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럴 필요 없다'라고 선동하고 있다면.
더 모닝 쇼는 미치 케슬러라는 남성, 사회적 강자가, 여성이라는 약자들에게 명예와 권력을 빼앗기면서 나오는 분노, 합리화,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 드라마를 통해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면 '변화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굳게 믿는 미치, 그리고 그의 발언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는 것과 그것의 옳고 그름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전제 하에). 미치는 그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비난보다, 그 (사회적 강자)의 행동이 다른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왜 아무 말 안했느냐"며 성범죄 (또는 인종차별) 피해자를 비난하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