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통사고를 당했던 배구선수가 있는 팀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팀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서울 광진구였는데, 쏘카를 빌려서 가더라도 1시간 40분은 가야하는 꽤 먼 거리에 있었다. 2023년에는 42년만에 12월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뉴스가 나오기도 했던 시기였다. 자차 없는 뚜벅이에게 남의 차로 눈길을 달려야 좋아하는 선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었다. 사당에서 경기장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직장인의 소중한 주말을 통으로 쓴다고 생각해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였던 이안은 따로 만나던 사람이 없던지라 인생의 따분한 시기를 잠시 맞이했던 엔지니어였다. 해외로 떠났던 워케이션에서 같은 숙소를 쓰기도 했고, 추석 긴급 대응으로 연휴기간에 함께 나와 일하기도 했던 동료였다. 취향도 나름대로 잘 맞아서 남자 둘이 페퍼톤스 콘서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처음으로 쟁취했던 콘서트 연석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안은 웬만한 일을 다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안, 저 지난 주말에 덕통사고에 당했어요."
"예? 교통사고요?"
이안이 놀라 소리쳤다. 주변 동료들이 쳐다봤다.
"아, 아뇨. 덕통사고요."
"덕통사고가 뭔데요?"
"그, 오타쿠들이 당하는 교통사고 같은 거요."
"아, 덕통사고. 인스타에서 쓰는 거 봤는데 실제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들었어요."
하도 시덥지 않은 말을 자주해서 별 소리 아닌양 헤드폰을 다시 쓰고 일하려는 이안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책상에 손을 얹고 다시 말했다.
"이안, 할 말이 있어요."
"또 뭔데요. 뭐가 또 안돼요?"
본인이 작성한 코드에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는 이안에게 사정사정하며 물어보았다.
"아뇨, 그건 아니고. 혹시 배구 보러 안가실래요?"
"어디로요?"
"거리가 좀 있긴한데."
"어딘데요."
"경기도 화성이요."
"안가요."
그 때는 팀의 마지막 홈 경기가 곧 열리는 시기였다. 그 이후에는 다른 원정경기를 몇개 남겨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이안이 단칼에 거절하고 나니 같이 갈만한 다른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덕통사고는 당했지만 배구를 실제로 보러갈 용기는 결국 내지 못했다. 내년에 결제할 수 있는 멤버십이라는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때 꼭 결제해야지 하는 다짐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사실 덕질이라는 것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뭔가 더 해야한다. 굿즈를 사서 모은다든지, 이벤트 거리들을 따라다닌다든지 하는 것이 있어야 이 필드에서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그것이 오타쿠로서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V리그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못하는 팀을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팀들 팬보다 시즌이 일찍 끝나 팬으로서 뭔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어진다는 일이기도 했다. 한창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던 나로서는 배구를 운동으로 배워봐야지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할 때 우리는 필터를 조정하고는 한다. 아이폰, 갤럭시 같은 구입해야하는 명확한 대상은 그럴 일이 잘 없지만 예를 들어서 헤어드라이기를 사야한다 싶으면 검색창에 헤어드라이기를 검색하고, 사야하는 드라이기의 컨셉에 맞춰 브랜드를 조정한다. 다이슨이 될지 필립스가 될지 혹은 쿠팡 PB가 될지는 보통 쓸 수 있는 예산 범위에서 결정되고는 한다. 그 와중에 어떤 상품에서 BLDC 항공모터가 달렸다 는 광고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 검색에서 BLDC 모터 헤어 드라이기로 검색 범위가 좁아지게 된다. 이런식으로 조건을 늘리다보면 구입할 수 있는 드라이기는 더이상 없다는 검색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배구는 우리나라에서 배우기에 너무 마이너한 스포츠였다.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배구 배운다고 했던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배울 수 있는 곳이 일단 너무 없었다. 무작정 네이버 지도를 열고 '배구 레슨', '배구장' 이런 키워드를 검색했는데 몇개 얻어 걸린 레슨장에서는 초보 클래스가 한두개 있을까 말까 했다. 일반적으로는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는 학생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성인 초보반' 을 운영하고 있는 배구 클래스는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쓰러진 느낌이었다. 더욱이 '남성', '초보' 이 두 글자가 결합되기 어려운 스포츠인 것 같기도 했다. 성인 여성 초보반은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성인 남성 초보반은 정말 찾기 어려웠다. 더욱이 내 인생의 절반은 사장님에게 바치기로 약속한 직장인이어서 퇴근 하고도 갈 수 있는 시간인지, 그럴만한 거리가 되는 지도 봐야했다.
비유하자면 BLDC 항공모터가 달린 헤어드라이기를 사야하는데 소리는 저소음으로 나야하고 가격은 10만원 미만이 되어야하는 다이슨 제품을 검색하고 있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그래도 꾸준하면 뭐라도 된다고, 운 좋게 성인 남성이 참여할 수 있는 배구 클래스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와, 근데 이거 갈 수 있을까." 소리가 절로 나왔다. 토요일 아침 8시까지 청담동으로 가야했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50분은 가야하는 거리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