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땀을 낼만한 운동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먼저 헬스장 러닝머신은 맞지 않았다. 3km나 5km를 목표로 달리고 내려오면 기분 좋은 그런게 있다고 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고, 종아리가 너무 아팠다. 정확히는 불타는 느낌이 났다. 신발 문제인가 싶어서 신발을 새로 사봤고, 발목 문제인가 싶어서 발목 스트레칭 기구를 샀는데,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느낌은 없었다. 그냥 새 물건 사서 기분 좋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정형외과 선생님과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오래 뛰는 것이 문제인가 싶어서 운동을 바꿔보기로 했다.
원데이 풋살, 크로스핏, 직장 동료를 따라 원데이 펜싱을 나가보기도 했다. 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이렇다할 느낌이 없었다. 풋살은 30대가 넘어서 다시 시작하자니 체력적으로 따라가기가 벅찼다. 풀코드 축구를 할 때처럼 스프린트는 하지 않아도 됐지만, 느낌상 그때와는 다른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크로스핏은 더 안 맞았다. 일단 나를 응원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 벅찼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힘내라고 응원해준다. 너무너무 감사하지만, 너무너무 부담된다. 무슨 느낌인지 알라나. 내가 운동을 마치지 못하면 내 페어가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다. 오늘 처음 왔다는 흰색 팔찌를 차고 있었지만, 가는 날마다 페어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버페이스를 하고 나왔다. 이 때문에 집가는 따릉이는 제쳐놓고 택시조차 못타겠다 싶은 날도 있었다. 운동을 무리해서 하면 먹은 것을 쏟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가 크로스핏을 하면서 경험했다. 이게 내가 크로스핏도 2달도 못가서 포기하게 된 이유이다. 펜싱은 펜싱 애호가인 전직장 동료인 제임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운동하는 느낌이 너무 없었다.
그래도 나름 운동신경은 있다고 믿고 살아왔다.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한 학년에 남자가 5명 될까말까한 학과에서 전공 공부를 했다. 남자가 적은 학과에서는 힘쓰는 일이 생기면 보통 여지없이 끌려나오고는 하는데, 비단 힘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 종종 남자라는 이유로 주말을 태워야 하는 일이 꽤 많았다. 운동도 그 중 하나였는데, 봄 축제 학과 대항전을 하면 어쨌든 끌려나가는 멤버 중에 하나이긴 했다.
"오 너가 재욱이구나 OT때 보고 싶었는데 못봐서 아쉽네."
"안녕하세요."
"잠깐 일어나볼까?"
학과방 소파에서 꾸벅 인사를 했고, 일어나래서 순순히 일어났다.
"오 그래도 이 정도면 옆에 세워도 되겠는데? 일단 다음주에 나와. 학과 축구동아리이고 우리과 남자는 다 가입해야 돼."
"아, 저 축구 잘 못하는데요."
"알겠어. 일단 나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초반을 4년 내내 축구 동아리에 이름을 올려서 뛰어다녔다. 군대 축구랑 학교 축구가 또 아주 틀린 축구는 아니어서 중요한 자리는 선배들이 이미 하고 있었고, 내 또래 친구들은 많은 활동량을 가져야하는 포지션을 물려받았다. 그러니까 축구동아리에서는 위 아래에서 계속 스프린트를 뛰어야 하는 왼쪽 오른쪽 수비를 보는 사람이나 미드필더 가운데에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계속 뛰어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축구동아리에서 연습할 때는 항상 왼쪽 윙백으로 뛰었다. 그런데 막상 첫 학과 대항전을 할 때는 골키퍼를 보던 선배가 일이 있어서 못나오는 바람에 골키퍼 장갑을 대신 껴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걸 내가 하게 되었다. 서서 가만히 있는데 '뭐 일이야 있겠어' 싶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 학과는 남자가 한 학년에 5명이 될까 말까 했다. 모아 놓아봐야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밖에 없었으니 하루 종일 공이 넘어왔고 반사적으로 공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한 점 차이로 지긴 했는데 재밌는 것은 근 5년 사이 학과 최소 실점으로 졌던 경기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학과 주전 골키퍼 자리를 물려받았다. 어쨌든 반사신경은 있다고 인정받은 날이었다.
운동 신경 중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반사 신경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운동이 없을까 하던 찰나에 어떤 유튜브 영상 하나가 내 알고리즘에 걸렸다. 어떤 배구선수에게 할아버지뻘 되는 감독이 공격할 때 했던 실수를 짚어주고 있는데, 그 선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미안ㅠ" 하고 딱 두글자만 뱉고, 뿌엥하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감독님을 쳐다 본 게 중계 카메라에 그대로 실렸던 것이다. 말을 하던 감독 아저씨가 무척 당황해서 "미안.. 미안해 하는게 아니고, 다음에 올리면 잘때려잉." 하며 사투리로 격려하는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이었다. 그 뒤에 서브가 어쩌고 리시브가 어쩌고 하는 것은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언제 교통사고를 당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예측하지 못할 때 당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신호를 기다리가다 뒤에서 들이 받혔던 경험으로는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사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영상으로 그만 배구선수에게 덕통사고를 당해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