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그 여인
Nach PARASITE der neue, großartige Thriller aus Korea.
<기생충> 다음으로 신선하고 놀라운 한국의 스릴러.
독일에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을 이렇게 홍보한다. 그동안 <미나리>나 <브로커> 등 다양한 한국 영화가 독일에서 상영됐지만, 저렇게 <기생충>을 언급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문구는 처음이다. 지하철에 앉아서 멍하니 광고를 보다 보면 어느새 <헤어질 결심>이 등장하곤 한다.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작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리지널이 아닌 독일어 더빙 버전을 예매한 것을 영화 시작 1시간 전에 발견했다. 아쉽긴 했지만, 독일 더빙 버전으로 언제 또 볼 일이 있겠나 싶었다. 영화관에 도착하자 사람으로 북적였다. 당연히 다른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일 거로 생각했다. 티켓을 예매할 당시 중간에 두 자리만 이미 예약이 됐고, 나머지는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상영관 앞에 줄이 길게 늘어져있길래 <헤어질 결심>은 그 옆 상영관인 줄 알고 사람들을 지나쳐서 앞으로 갔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틀렸다. 그들은 모두 <헤어질 결심>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한국 영화를 보러 온 독일인들이라니. ‘국뽕’의 힘으로 살아가는 내게 이 광경은 아주 좋은 영양제였다.
우리는 맨 앞 줄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내내 한 가지 궁금증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리지널 제목은 <헤어질 결심>인데 독일 버전 제목은 <Die Frau im Nebel(안개 속의 그 여인)>이다.
두 제목이 전혀 매칭되지 않았다. 보통 번역 제목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데 독일 제목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 봐도 <헤어질 결심>과 접점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Eine Frau(한 여인 혹은 여인)도 아니고 Die Frau(그 여인)라니. 불특정 한 여인과 특정한 여인이 주는 뉘앙스 차이는 꽤 크다. 왜 특정한 여인으로 강조했는지도 궁금했다. 사전에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접하지 않아서 궁금증은 더 컸다.
영화가 시작됐다. 송서래가 할머니를 간호하는 장면에서 바로 납득이 됐다. ‘안개’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왔다. 그 순간 한국 친구와 “아, 그래서 안개 속이라고 했구나”라고 속삭였다. 안개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크고 작게,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했다. 노래로, 말로, 풍경으로… 그리고 송서래가 항상 그 가운데 있었다. 나의 추측이 맞다면 ‘그’ 여인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늘 송서래가 있었으니까. 또 송서래, 다시 송서래, 이번에도 송서래. 장해준의 삶에 영원히 남게 된 미제 사건. 안개가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있는 그 여인. ‘안개 속 그 여인’은 러닝 타임 내내 관객에게 보이고 들렸다.
영화가 끝난 후 생각했다. <헤어질 결심>은 한번, 두 번 생각하게 되는 제목이라면 <Die Frau im Nebel>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직설적이고 뚜렷한 제목이라고. 참 독일스러운 제목. 이미 ‘직설적‘이 녹아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나라에 어울린다. 독일이 느껴지는 제목이랄까.
결론은 두 제목 다 영화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을 뜻하는 중요한 장면이 독일인들에게 잘 와닿았을지는 모르겠다. 꼭 그게 영화를 즐기는 정답은 아니니까. 화면이 어두워지며 감독 박찬욱을 시작으로 등장인물들과 제작진의 이름이 등장할 때, 그들은 읽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자리를 지키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개 속 그 여인’을 곱씹고, 여운을 털어내고 있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