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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May 02. 2024

투헬은 김민재를 낭떠러지로 몰았다

그래도 감독이 그러면 안 되지

김민재가 오랜만에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장에 나서면 언제든 잘할 자신이 있다"던 김민재지만, 경기장에 드문드문 나서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건 자신감과 별개의 문제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 레알 마드리드. 이목을 끄는 타이틀이 마구 달린 경기. 모든 게 처음인 김민재는 제아무리 괴물일지라도 긴장이 됐을 거다.


실제로 경기장 위 김민재는 이전보다 여유가 없어 보였다. 평소 동료들에게 실컷 소리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그가 이 날따라 유독 조용했다. 눈앞에 보이는 비니시우스에 집중하느라 바빠 보였다. 아마 첫 번째 실점은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예견한 상황일지라도, 약속된 플레이를 지키고 싶었던 그는 다른 동료들의 움직임을 미처 보지 못했을 테다. 이 실점 이후 김민재는 더 각성한 듯 뛰었다. 비니시우스와 일대일 상황에서는 스피드를 활용해 기회를 차단하고, 크로스의 패스 방향을 읽고 재빨리 올라와 공을 끊어냈다. 김민재의 장점이 전부 다 활용됐다. 오랜만에 선발로 뛴 경기에서, 무엇보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승리를 꼭 지키고 싶었을 거다. 얼마나 독이 올랐는지, 수비 도중 호셀루와 머리를 크게 부딪히고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정규 시간 종료 8분 전, 호드리구를 강하게 수비하다 PK를 내어주고 말았다. 김민재는 옐로카드를 받았다. PK는 비니시우스가 골로 연결했다. 2-2로 경기가 끝났다.


올시즌 내가 본 경기 중 김민재가 이렇게 불안정해 보였던 적이 없다. 실력적으로 불안했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없고, 급해 보였다. 안타까울 정도였다. 옆자리에 앉은 스페인 해설자는 실점 상황을 설명하며 수없이 '킴'을 외쳤다. 누가 봐도 김민재의 실책이 가장 큰 경기. 무엇보다 중계 화면에서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테다.


이미 얼마나 폭격을 맞고 있을지 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잘했는데, 그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정말 잘했는데... 따위의 아쉬운 소리는 먹히지 않는다. 특히 수비수에게는.


믹스트존에 내렸다. 독일 동료들이 하나 둘 말을 걸어왔다. "민재 오늘 아주 힘든 날이겠는걸", "그래도 그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아주 잘했어", "오랜만에 뛰어서 폼이 제대로 안 올라온 것 같더라".. 등등. 내가 김민재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걸 아는 그들은 위로에 가까운 코멘트를 던졌다. 내일은 또 국내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기사들이 우수수 쏟아지겠구나.


이미 각종 전문가들의 혹평이 쏟아지고 악플도 세차게 달리고 있었다. 사실 그런 것들에 별 타격감을 입지 않는 김민재라 (물론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욕먹는 게 축구 스타의 운명이니. 김민재도 이미 진흙탕을 여러 차례 경험했던 터라 내성은 생겼을 거다. 무엇보다 그의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다시 경기장에서 제대로 보여주면 된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게다가 뒤에는 든든한 팀이 있지 않은가. 바이에른은 늘 잘해야만 하는 팀이기에 조금만 삐걱거려도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이적이니 불화니, 경질이니 각종 구설수에 휘말린다. 선수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지 잘 안다. 동료들이 라커룸에서 어떤 위로를 건넸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믹스트존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토마스 투헬의 아마존프라임과의 플래시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이었다. 그는 거기서 김민재를 비판했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고, 거듭 반복해 말했다. "그는 두 상황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다. 움직임이 불필요하게 많았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 당하고 말았다. 민재는 그렇게 반응해서는 안 됐다. 크로스가 패스를 할 때 이미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쉽게 당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실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수비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유 없이 호드리구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이미 포지션을 잘못 잡은 상황에서 에릭 다이어가 도와주려고 왔는데, 절대 생겨선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건... 너무 욕심이 지나쳤다."


투헬은 감정적이었다.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좀 기분이 이상했다. 저렇게 한 선수를 공개적으로 콕 집어서 비판하는 게... 맞나?


그러던 찰나 주장 마누엘 노이어가 나왔다. 저 멘트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노이어에게도 향했다.


"투헬 감독이 방금 김민재 상황에 대해 욕심이 지나쳤다고 했다. 본인은 어떻게 보나?"


노이어는 말했다. "우리는 이미 그것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라커룸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투헬이) 그걸 굳이 숨기려 하진 않을 거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런 실수는 역시 축구의 일부다. 민재가 한번 실수했다고 다음 경기에서 안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가 오늘 아주 잘한 것을 알고 있다. 축구를 하다 보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가끔 100%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를 이해했다."


감독은 날 선 비판을 하고, 동료는 감싸는 모습이라니.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노이어가 지나간 후 바로 김민재가 등장했다. 보통 같으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려고 제스처를 취했겠지만 이날은 그저 그를 지켜봤다. 김민재는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진짜 죄송해요..."하고 옅게 웃으며 지나갔다. 평소 인터뷰를 거절할 때와는 달랐다. 늘 오늘은 안 할게요라고 의사를 전달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혹시나 내가 김민재와 인터뷰를 할까 옆에서 눈치를 보던 독일 동료가 "민재가 뭐라고 한 거야?"라고 물었다. "미안하다고 하네. 평소에 저렇게 말하지는 않는데.."라고 했다. 평소 김민재에 대한 기사를 자주 쓰는 그는 이 멘트를 기사로 활용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다행히 김민재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뒤이어 요슈아 킴미히가 나왔다. 킴미히 역시 김민재를 보호했다. "우리는 한 팀이다. 골을 넣으면 모두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 실수를 해도 우리는 그를 혼자두지 않는다. 뭐, 아직 결정된 거 없지 않나. 무승부다. 기회는 열려있다."


스타들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노이어나 킴미히 같은 선수들의 공개적인 보호를 받는 건 김민재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김민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투헬의 저격에 이은 영향력 있는 동료들의 지지. 괜히 내가 위로되는 기분이었다.




기자실로 돌아왔다. 기자실은 기자회견장과 연결되어 있다. 들어오니 한창 투헬 감독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노이어와 킴미히의 멘트를 정리하며 투헬 감독의 기자회견을 들었다. 김민재에 대한 질문이 또 나왔다. 투헬 감독은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김민재의 욕심을 거론했다. 저렇게 한 선수를 대놓고 수차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감독은 처음 봤다. 그의 말은 곧 각종 언론을 통해 전달됐다. 그 소식을 접한 팬들은 더 신이 나서 김민재를 공격했다. 한 바이에른 팬이 내게 보낸 메시지엔 끔찍한 목격담이 적혀있었다. 지하철에서 김민재를 향해 인종차별하는 팬들을 봤다고. 진짜 이게 무슨 꼴이람. 투헬 감독은 한없이 너덜너덜해진 김민재를 제 품으로 끌어주기는커녕, 낭떠러지로 몰았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욕심'을 강조하며 비판하니, 이제는 비난처럼 들렸다. 그 장면을 눈앞에서 보며 한국어로 옮기는 심정이란. 정말 끔찍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화가 났다. 기자고 자시고를 떠나 속이 상했다. 독일에서 한국 선수들이 어떤 심정으로 뛰고 있는지 7년째 보고 있으면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다. 아무리 김민재가 못했어도, 세상 모든 '전문가'가 그를 욕해도, 감독만큼은 저러면 안 되지 않나.


반대편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골키퍼 안드리 루닌이 세르지 그나브리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 팀 전체의 잘못이다. 한 선수를 비판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그의 코멘트에 대한 부연 설명은 굳이 하지 않겠다.




첫 시즌이 참 다사다난하다. 쿨하게 코웃음 한번치고 잘 일어섰으면.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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