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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직장편: 꿈의 직장, 퇴사 그리고 경업금지

마음이 떠나는 순간

by 싱대디


분명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아침에 바로 사직서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주식시장이 요동을 쳤다. 변동성이 큰 날은 모두가 예민하기에 말 걸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오후가 되어서야 조심스레 미팅을 신청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보스가 빠른 걸음으로 미팅룸에 들어왔고 앉지 않은채 "무슨 일이야?"라고 한다.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이직 의사를 밝혔다. 예상치 못한 눈치였는지, 보스는 꽤 당황했고 그제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 바닥에선 이직이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매번 적응되지 않는 건, '작별을 꺼내는 순간'의 공기다. 이번이 세 번째 이직임에도 매번 처음인 것 같이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번 선택은 유난히 무거웠다. 이 결정이 과연 옳은 걸까. 그 물음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올 때, 이곳은 단연코 ‘꿈의 직장’이었다. 4개월 넘는 시간 동안 열 번이 넘는 면접을 치렀고, 오퍼를 받은 뒤에도 외국인 신분이라 온보딩만 반년이 걸렸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마침내 첫 출근 날.

연봉, 복지—모든 현실적인 조건이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옆자리에 앉은 동료들이 MIT, ETH 등 엘리트 출신들이라는 사실에 더 즐거웠다. 내가 과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그 설렘이 하루하루를 밀어냈다. 그래서 그 때까지만 해도 평생 다녀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요동치는 시장 속에서 살아남는 하루하루는 반복되고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며 어느 날은 하루 만에 팀의 절반이 정리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팀이 바라보는 곳과 내가 원하는 길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지만, 나는 결국 또다시 이직을 결심했고, 여러 회사들과 면접을 보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그렇게 보스랑 30분 가량 얘기를 나누고 이직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목요일, 회사는 놀랍게도 더 좋은 조건의 제안을 해왔다. 주말 동안 고민해보라며 월요일까지 시간을 주었지만 오히려 그 제안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고, 어떤 조건이 오더라도 되돌아가기 힘들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주말까지 이 고민을 끌고가기 싫어 다음 날인 금요일에 결정을 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과 뉴욕에 있는 모든 팀들에게 소식이 전해졌고, 나는 공식적으로 인수인계 기간에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회사와의 치열한 협상, 일종의 냉전이 시작됐다. 고민해야 할 포인트가 많았지만, 가장 신경 쓰인 건 경업금지(Non-compete) 조항이었다. 이 업계에선 입사할 때 당연하게도 걸려 있는 경업금지 조항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경업금지를 발동할지는 전적으로 회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 회사가 ‘갑’인 셈이다. 만약 발동된다면, 일정 기간 동안 경쟁사에 입사할 수 없고,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 그 기간 동안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내 경험상 큰 회사들은 높은 확률로 이 조항을 적용하고, 작은 회사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협상의 여지가 있다. 주변 친구 중엔 2년을 쉬어야 했던 사람도 있고, 1개월만에 끝난 경우도 있었다. 내겐 아직 휴가가 절실하지 않았다. 게속해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많았고 무엇보다 가정이 있기에 단 하루라도 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줄여달라고 해선 협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기에 경업금지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했다. 경업금지의 핵심은 회사의 영업비밀, 핵심 정보 등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즉,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직할 회사가 동종 업계인지, 그리고 실제로 경쟁 행위를 하게 되는지 세 가지가 쟁점이었다. 두 번째는 명확했다. 이직할 회사는 동종 업계였다. 첫 번째 쟁점은 회사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었고, 회사가 카운터 오퍼를 준 이상 내 지식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내세울 마지막 카드는 ‘경쟁 행위’ 여부였다. 실제로 새로 오퍼를 받은 팀의 업무는 지금 팀과는 사뭇 달랐다. 현 회사에선 HFT(High Frequency Trading)가 주 업무였다면, 새 회사는 MFT(Mid Frequency Trading)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정말 열심히 일했으니, 부디 너그러이 봐주세요”라는 눈물 어린 호소도 준비했다.


런던에 있는 보스와 첫 협상을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준비한 내용의 70%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비원어민으로서 느끼는 아쉬움은 여전했다. 보스가 경업금지 기간을 얼마나 줄이고 싶은지 묻기에 6개월로 협상하자고 했더니, 고려해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지막 카드가 나름 통했던 것 같다. 이어서 인사팀과 두 번째 협상에 들어갔다. 결정권은 결국 보스에게 있지만, 인사팀도 영향력이 있기에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인수인계 기간 동안 약간 어색하지만,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일했다. 다들 프로답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와 각자 맡은 일을 하였고 나에게 곤란한 질문은 배려 있게 피하는 느낌도 들었다. 몇 주 뒤, 인사팀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경업금지 기간은 계약서에 있는 그대로 1년 Full로 적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공식적으로 통보를 받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가장 먼저 이직할 회사에 알렸다. 그쪽에선 입사를 서두르길 바랐기에 실망했지만, 상황을 다 이해하였다. 우리는 입사 날짜를 1년 뒤인 11월로 조정해 계약서를 다시 수정했다. 두 번째, 어쩌면 더 큰 문제는 비자였다. 나는 회사가 스폰해주는 EP(Employment Pass) 자격으로 싱가포르에 있었기에, 인수인계가 끝남과 동시에 비자도 취소된다. 회사와 다시 협상해 EP를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떠나기로 한 팀에 더는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1년의 공백을 받아들여야 한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이사인데, 또 다시 와이프에게 "짐 싸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은 퇴근 길에 꽃이라도 사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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