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400만 원의 고정비
두달 뒤면 다시 싱가포르로 들어가 집을 둘러봐야 한다. 슬슬 짐을 싸야 할 타이밍이다. 다시금 가계부를 뒤적여보며 집 월세를 예산 안에 얼마를 할당할지 계산해봤다.
2024년도 기준으로 가족 3인 생활비 내역을 공유하고자 한다. 내 라이프 스타일을 점수로 굳이 표현하자면 10점이 가장 사치스러운 삶이라고 할 때 나는 7점 정도이다. 싱가포르 첫해라서 요령도 없을 뿐더러 저축보단 회사에서 적응 및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사람마다 생활 방식에 따라 생활비는 천차만별이지만, 아래는 하나의 샘프로서 싱가포르에서 살아볼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가 됐으면 한다.
월세: 6300SGD (630만원)
가장 큰 고정비, 역시 집이었다. 물가가 3배 정도라고 하여 한국 기준 130만원에 살던 집을 생각하며, 최대 400만원 정도로 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내가 설정한 조건으로 필터링 하니 터무니 없는 가격이었다. 내 3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1. 회사에서 도보 20분 거리
2. 방2개, 20평대
3. 지은 지 20년 이내의 콘도
첫 번째 조건이 모든 걸 비싸게 만들었다. 회사에 올인할 생각이었기에, 출퇴근 거리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운타운 근처, 비싼 동네 중 하나로 좁혀졌다. 게다가 직접 보지도 않고 한국에서 계약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무식하니 용감했다.
두 번째 조건은 30평대에서 20평대로 내렸다. 30평대는 천만원 이상이 기본이었다. 10평대까지도 내려가봤지만 테라스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우리나라 평수보다 전용이 훨씬 적어 가족 3명이 살기는 무리였다. 다행히 이때는 둘째가 없었다.
싱가포르의 주거는 크게 HDB와 콘도로 나뉜다. HDB가 보다 저렴하지만 콘도가 시설이 좋고, 수영장 등 편의시설이 많아 아이 키우기에는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다운타운에는 HDB 매물도 잘 없었기에 자연스레 너무 오래되지 않은 콘도로 한정 했다.
그렇게 해서 원쉔턴(One Shenton)이라는 콘도와 인연이 됐다. 예산은 당연히 넘었고 그 당시 똑같은 매물의 월세가 7000SGD에 형성되어 있어 10% 저렴한 매물이 나와 홧김에 계약했다.
아직까지도 적응 안되는 월세 가격이지만, 같은 조건에 월세가 두 배, 세 배인 곳도 널려 있다.
헬퍼: 1300SGD (130만원)
싱가포르와 홍콩은 헬퍼(가정부 및 보모)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있다. 3살이 될 때까지 양가 도움 없이 둘이서 잘 키워왔기에 처음엔 헬퍼가 굳이 필요할까 고민했지만, 효율과 가성비에 초점을 두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렇게 비싼 나라에 유일하게 저렴한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더군다나 아직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 없었기에, 우리 외에 또 다른 어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헬퍼 월급은 600-1000SGD, 경력과 인종에 따라 다르다. 우린 900SGD 중반으로 경력직을 고용하였고 헬퍼 세금은 고용주인 내가 정부한테 내야 하므로 월 300SGD이다. 결과론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지만, 헬퍼가 집을 머물기에 집이 더 넓어야 한다는 점은 숨은 비용이다.
아이 교육 및 문화비: 1500SGD (150만원)
국제유치원을 알아보니 평균 3000SGD 이상으로 비용 부담이 컸다. 아직 교육을 받을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내년부터 보내기로 했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집에 있기는 어려워, 점핑학원과 수영학원 등 놀이 위주로 보냈다. 각 주 4회 기준 450SGD 정도였다. 주말마다 동물원이나 키즈카페 등을 찾아다녔다.
생활비: 5000SGD (500만원)
그 외는 전부 생활비이다. 헬퍼까지해서 입이 네 개다. 외식비 또한 꽤 비싸서 괜찮은 곳에 가면 인당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특히 술까지 곁들이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린 대체로 집에서 요리를 해먹었다. 쇼핑은 간혹가다 했지만 사치품을 구매한 적은 없었다. 주변에 5000SGD를 쓴다고 하면 "생각보다 적네?"라고 할 정도로 나름 전략적으로 아껴가며 썼다.
그 외에 비정기 지출도 있겠지만 위 내역들은 고정비로 오차가 크지 않다.
정리하자면,
월세: 6,300SGD
헬퍼: 1,300SGD
아이 교육 및 문화비: 1,500SGD
생활비: 5,000SGD
= 총 14,100SGD 정도로 한화 기준 1400만원 조금 넘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한국 온 이후로 물가가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젠 둘째도 태어났고 첫째는 학교도 가야한다. 아마도 고정비가 훌쩍 증가할 것 같다. 가끔 보면 집을 제공해주는 주재원 형들을 만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오늘부터 둘째 분유양을 줄이거나 해야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