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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가 아닌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

꿈과 현실 사이에서

by 싱대디

이번 이직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여러 곳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 중 두 곳은 뉴욕에서 온 제안이었다.


어릴적부터 월가에 대한 꿈과 환상이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위치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금융 세계에서 월가의 위대함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1위라면 월가는 세계 금융의 심장이다. 2024년 기준 한 기사에 따르면, 월가의 자산운용 규모는 약 130조 원, 싱가포르는 약 4조 원으로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러한 수치만 놓고 본다면, 금융인으로서 월가에 몸담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싱가포르를 다시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자의 불확실성이었다.

두 회사 모두 나를 데려오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비자의 형태가 문제였다. 제안받은 비자의 형태는 L1 혹은 이와 유사한 제한적인 비자였고, 이건 나 혼자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내에서 아이들과 아내의 체류 문제, 교육 환경, 의료 시스템까지 고려하면 여러모로 부담이 컸다. 싱가포르 역시 EP(Employment Pass)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며, 회사의 쿼터에 따라 스폰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온 오퍼들은 쿼터에서 내 자리를 보장해주었고 비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었다.


두번째는 세금에 따른 가처분소득의 차이였다.

애초에 미국 본사 글로벌 헤지펀드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연봉이나 처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오퍼를 받기 전에는 내심 더 높은 제안을 기대했었다. 어쨌든 뉴욕이고,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니까. 그런데 정작 받아본 오퍼는 싱가포르보다 똑같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나에 대한 수요가 더 높았다면 협상 결과도 달랐겠지만, 지금 내 커리어와 스킬셋 기준에선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실 이직에서 돈이 1순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딸의 아빠로서 현실적인 지출은 무시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등장했다. 바로 세금이었다. 미국의 높은 소득세율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뉴욕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았고, 반면 싱가포르는 비교적 세금 부담이 낮다. 연봉은 비슷해도 ‘세후’ 수입 차이는 상당했다.


세번째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확신이다.

뉴욕 오퍼를 준 회사들은 대부분 미국 시장에 집중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아시아 시장에 더 큰 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다. 직전 회사에서도 아시아 7개 국가의 주식 시장에 트레이딩을 하고 있었고 그 흐름에 익숙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경험과 접근성은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 시장은 이미 고도로 정제된 경쟁의 장이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강점이 돋보이기 어렵다. 반면, 아시아는 아직 데이터의 불균형도 많고, 정보의 비대칭성도 존재한다. 그 속에서 내 역량이 더 빛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의 매력도 컸다.

도시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생각보다 날씨도 괜찮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은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까지 비행기로 6시간 반. 시차도 거의 없다. 가끔 한국이 간절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괜히 곱창에 소주가 생각날 때 그럴 땐 주말 하나 붙여서 훌쩍 다녀올 수 있다는 것. 부모님이나 지인들과의 거리감이 심하지 않은 건 개인적으로 큰 장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남는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많은 이유들을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월가의 상징성과 그 거대한 네트워크, 자본의 규모는 여전히 나를 흔든다. 결국 나는 월가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채, 지금 이 선택을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시원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도 거의 없어서, 내가 내린 판단이 정말 맞는지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선택이 내 운명이고, 앞날은 알 수 없다. 또 다시 다음 기회에만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도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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