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과 현실 사이, 내가 직접 경험한 제주살이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 그리고 여유

by 싱대디

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갈 날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제주살이’. 나 역시 그 로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지난 1년 동안 제주에서 직접 부딪히며 느낀 현실적인 장단점을 솔직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서귀포시 산방산 근처, 어쩌면 산방산에서 가장 가까운 집 중 하나에 산다. 집 마당에만 나가도 산방산의 위엄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와 산, 초록으로 둘러싸인 삶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조용한 동네, 넓은 마당, 자연 풍경—환경적인 만족도는 정말 최고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여러 조건을 따져 신중하게 선택한 집이다. 하지만 ‘자연 속 삶’이라는 말이 주는 낭만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숨어 있었다.




좋은 환경엔 대가가 따른다


1. 만만치 않은 비용

제주다움을 온전히 누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제주살이의 첫 단추로 ‘단독주택’을 고집했다. 평생 살아온 아파트에 사는 것은 선택지 자체에 없었다. 구억리부터 사계리까지 2층 단독주택은 월 200~300만 원 선에 형성되어 있다. 연 단위 계약이 기본이라 목돈이 한 번에 나가고, 처음엔 그 심리적 부담이 꽤 컸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내가 감수하고 선택한 부분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가장 먼저 나를 당황하게 한 건 관리비였다. 서귀포 대부분 지역은 중앙난방이 없어 개별난방을 써야 한다. 우풍이 심한 집이 많아 겨울엔 난방비가 살벌하다. 아이들 방만 따뜻하게 해도 한겨울엔 80만 원이 훌쩍 넘었고, 아무리 아껴 써도 35만 원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우편함에 꽂힌 관리비 고지서를 보면 괜히 모른척하고 늦게 확인하곤 했다.


게다가 월마다 잔디를 관리하고, 방역을 위해 업체를 부르면 추가로 15만 원이 더 든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유지비가 매달 쌓인다. 만약 다시 집을 구한다면 난방 구조와 관리비 평균, 그리고 태양광 설치 여부까지 꼼꼼히 따져볼 것이다. 태양광이 설치된 집은 관리비가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물가도 만만치 않다. 관광도시라 그런지 식당, 카페, 마트 모두 서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곳도 많다. 도민들만 아는 저렴한 곳이 따로 있다지만, 아직 나는 그 ‘눈’이 없다.


2.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차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까운 편의점조차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와 도로 여건이 만만치 않고, 병원이나 헬스장, 카페 등 일상적인 장소를 찾으려 해도 기본적으로 차로 15분 이상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있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노선도 촘촘하지 않아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 결국 차량이 한 대뿐일 때는 불편함이 더욱 커진다. 아내가 차를 쓰고 나가면 나는 집에 남아 꼼짝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이처럼 차량 의존도가 높다 보니, 기름값을 비롯한 차량 유지비도 생각보다 많이 든다. 만약 다시 제주살이를 하게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전기차를 선택할 것이다. 최근에는 충전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이용이 편리하고, 연비나 유지비 측면에서도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3. 인프라의 한계

앞선 단점들은 결국 돈으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프라의 부족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 가장 절실하게 느낀 건 병원 문제다.


서귀포시엔 우선 병원이 많이 없다. 소아과 하나 가려면 서귀포 시내까지 40분을 달려야 하고, 동네 내과도 두 군데뿐이라 선택의 폭이 좁다. 그렇다보니 의료의 질도 서울에 비해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 둘째를 출산했는데, 서귀포시에서 분만 가능한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결국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제주시 산부인과에 매달 검진을 다녔고, 진통이 갑자기 왔을 땐 차 안에서 1시간 넘게 버티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낳는 웃픈 경험도 했다.


헬스장, 테니스장, 도서관 등 문화·여가 시설도 대부분 차로 20분 이상 가야 한다. PT나 레슨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


4. 습도와 바람, 그리고 날씨의 압박

제주도는 바람의 섬이다.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연중 바람이 많이 분다. 특히 겨울과 여름의 계절풍이 강하게 불 땐 "이러다 집 날라가는 거 아니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더불어 습도 문제도 심각하다. 가 사는 지역은 여름이면 습도가 극심해 바닥이 끈적거릴 정도다. 이 동네에선 대형 제습기 두세 대는 기본이고, 나 역시 최근에 한 대를 더 주문해 세 대를 돌리고 있다. 날이 좋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그럼에도 제주살이는 여전히 특별하다.


단점만 놓고 보면 왜 여기까지 내려왔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이나 싱가포르에서의 빠른 삶과 비교하면 여기엔 시간의 결이 다르다. 느리고, 고요하고, 가끔은 불편한 그 흐름이 오히려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침이면 자연의 소리와 함께 귀가 편안한 상태로 하루가 시작된다. 마당에 심은 귤나무에서 귤을 따서 그 자리에 앉아 나눠 먹고, 아이들은 틈만 나면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특히나 자연을 책 속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색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상이, 이곳에서는 당연해진다.


나는 아직도 제주살이가 좋다. 불편함도, 비용도, 느림도 이제는 모두 이곳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제주살이를 꿈꾼다면, 로망만큼이나 현실도 충분히 고민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제주가 주는 특별한 일상은 분명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 역시 매일 산방산 아래에서,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평온함을 새롭게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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