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다, 싱가포르 영주권

by 싱대디

직업 특성상 몇 년 뒤를 예측한다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요즘은 시장도, 자본도, 정책도 너무 빠르게 변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본이 흐르는 곳으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상태”
그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단단해지기보다, 적당히 유연해지는 쪽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없는 압박, 그리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문득 나도 어딘가에는 정착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도시는 몇 개로 압축된다. 한국을 제외하면 뉴욕, 시카고, 런던,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결국 퀀트 산업이 발달한 도시들이다.


이 중에서 자연스럽게 몇 개는 제외됐다.


홍콩은 출장 때마다 느끼지만, 싱가포르에 비해 도시가 더 복잡하고 덜 정돈된 느낌이다. 특히 최근에는 영어보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점도 체감된다.

런던은 분명 매력적인 도시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유럽이라는 배경과 특유의 흐린 날씨가 주는 분위기가 개인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지는 싱가포르, 미국, 두바이로 좁혀졌다.


하지만 이번 이란 전쟁 이후, 두바이는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렸다.

세금이 없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여러 번 방문하며 쌓인 좋은 기억들 때문에 충분히 고려했던 도시였지만, 중동이라는 지역이 가진 지정학적 리스크는 결국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됐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미국과 싱가포르. 뉴욕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있다. 다만 실제로 거주하는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활 만족도는 꽤 갈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H1B 비자라는 ‘운 요소’도 존재한다.

회사 스폰이 가능하다고 해도 결국 추첨이라는 구조 자체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든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싱가포르에 정이 붙기 시작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굉장히 살기 좋은 나라다. 물가가 높고, 도시가 작아 약간의 지루함은 있지만 그 외의 장점들이 워낙 명확하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붙는다.


PR(영주권) 또는 시민권이 없으면 장기 거주가 생각보다 불편하다.

그렇다보니 내가 싱가포르에 만난 한인들 대부분은 PR을 목표로 한다. 내 계산으로도 사실상 PR을 얻었을 때의 단점이라곤 잘 없다. 굳이 얘기하자면 두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하나는 CPF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급여의 약 20%를 강제 저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금 유동성은 분명 줄어든다. 다만 이 자금은 단순히 묶이는 돈이 아니라 주택 구매, 의료비, 노후 자금 등으로 활용 가능한 일종의 ‘강제 자산 축적 장치’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또 하나는 세무 이슈다. 한국과의 거주자 판정, 이중과세 가능성, 해외 계좌 신고 등..

이건 사실 단점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복잡성의 증가’에 가깝다.


반대로 장점은 훨씬 직관적이다.

공립학교 접근성, 보육 비용, 명확한 세제 구조, 체류 안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주택 구매 가능성.




지금 나는 EP(Employment Pass)로 거주 중이다.

이 비자는 생각보다 취약하다.

이직을 하게 되면 경업금지로 인해 일정 기간 일을 못 할 수도 있고, 그와 동시에 비자도 유지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 번 겪어보니 가족 단위에서는 꽤 큰 스트레스였다. 아이들에게는 환경이 계속 바뀐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그리고 현실적인 요소 하나가 더 있다. 싱가포르 기업들은 동일한 조건이라면 PR이나 시민권자를 선호한다. 회사 정책과 쿼터의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 모든 요소들은 크리티컬하진 않다. 이번에 PR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집이었다. 결국 한 나라에 뿌리를 내린다는 건 그곳에 내 집이 있느냐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도 싱가포르에서 집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살 수 없다”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ABSD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보면 시민 0%, PR 5%, 외국인 60%다. 즉, 내가 20억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12억을 추가로 세금을 내야한다. 사실상 시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이다. 이 정책 자체는 이해한다. 로컬 보호 관점에서는 매우 합리적이다. 다만 외국인 신분으로 장기 거주자 입장에서는 월세라는 부담이 생긴다.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다. 지금 30평도 안되는 집에서 월세를 800만원 넘게 내고 있다. 아깝지 않을수가 없다. 매달 이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게 된다.

이 정도 고정비용이라면 차리리 레버리지를 껴 집을 사는게 낫지 않나?


단순 계산이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이렇다.

LTV 75% 대출, 금리 2%, 집값 상승률 연 2%, 투자 기회비용 10%, 보유 기간 10년.

이 조건이면 약 25억 수준까지는 오히려 구매가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완벽한 계산은 아니다. 가정도 많고 변수도 많겠지만 중요한 건 선택지가 있느냐 없느냐다.


결국 문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PR.


예전에는 비교적 수월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체감상 확률이 매우 낮다. 주변에서 한국인이 PR을 받은 사례도 거의 보지 못했다. 투자이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금 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아니다.


결국은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노력의 영역이라기보다 그냥 간절함에 가깝다.

이번 달에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PR 신청을 해볼 생각이다.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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