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경제학 명예교수가 전하는 비관적 비트코인 전망
개인적으로 비트코인을 잘 알지 못한다. 화폐의 성격이 있다는 것, 개인간 거래가 쉬워진다는 것, 최근 화폐 하나의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는 것 정도랄까.
여기 일본서도 비트코인붐이 대단한 듯한데, 한국처럼 떠들썩하진 않다. 유튜브에서 끊임없이 광고가 나오고, 최근엔 TV 광고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문제화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일본정부는 그저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놔두는 건가 싶기도 하다(그래선지 일본을 좋은 사례로, 비트코인 활성화 주장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듯).
이런 붐에 편승해 일본선 '가상통화소녀'라는 '지하 아이돌'마저 등장했다. 가상통화를 쉽게 알리기 위한 노래를 부르거나, 각 멤버가 특정한 통화를 따 이름을 지었다고.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 등등. 급여는 비트코인으로 지불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갈 수 있는 아이돌인지는 모르겠다.
구독하고 있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 1월 18일자 인터뷰로 이와이 카츠히토(岩井克人) 도쿄대 명예교수 기사가 실렸다. '화폐론' 전문가로 유명한 인물이라 한다. 이른바 최근 비트코인 논란과 관련해 대두되는 문과냐, 이과냐 흐름에서 문과쪽의 입장을 보여주는 학자라 하겠다.
(이와이 교수 이력은 홈페이지를 링크한다. 참고하실 분은 참고하시길)
내용이 신선해서 주요 내용을 한국어로 옮겨볼까 한다. 당연히 이분 말이 절대적인 건 아니니 참고만 해주시길.
필자도 비트코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TV토론이나 넷상에 떠도는 글은 봐왔지만) 나름 도움이 됐다. 전문은 아래에 있다. 아쉽게도 유료회원 한정이다(한국어 번역은 지면 기사를 참고로 했다, 밑줄은 필자).
질: 비트코인 가격이 춤을 추고 있는 상황에 '화폐'라 말할 수 있을까?
답: 2009년 등장 이래 어쩌면 화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봤다. 하지만 최근 1년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덧 화폐가 될 가능성은 극히 작아졌다. 처음은 마약 거래 등으로 이용이 확산됐기 때문에 그대로 일반 거래에서도 쓰이는 화폐가 될 거란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화폐가 될지도 몰라"라는 기대와 흥분을 가지면서 가격 상승을 목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한 게, 반대로 화폐가 될 가능성을 죽이고 있다. 이렇게 가격이 변동하면 도피처로도 되기 힘들어진다.
질: 화폐가 되기 위해 뭐가 부족한지?
답: 아니, 부족하다는 것과 반대로 지나친 가치가 생겨버렸다. 어떤 물건이 화폐로 쓰이는 건, 그 자체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도 화폐로 받아들인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예상의 자기순환론법에 따른 것이다. 혹여 물건으로서의 가치가 화폐로서의 가치를 넘어서면 그걸 물건으로 쓰기 위해 내버리지 않을테니 화폐로는 유통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수량이 한정돼 미래 가치가 올라갈 거란 기대감에서 그 자체가 "가격이 상승할 듯한 자산"이라는 일종의 가치 있는 물건이 돼버렸다. 최근 1년 엄청난 투기 대상이 됐다. 가격 상승 이익을 기대해 손에 넣는 한은, 누구도 그것을 교환수단으로 쓰지 않는다. 돈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질: 쓸 수 있는 가게, 서비스가 늘고 있고, 일본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통화에 준하는 취급을 했다. 이같은 움직임과의 갭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 가격이 올라가니 사업자가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한편, 사람들은 가격 상승 차익을 기대해 화폐로서는 그다지 쓰지 않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 가치가 내려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급하게 화폐로 쓰려고 하겠으나 그때 사업자는 계속 그걸 받아들이면 손해 보기 때문에 거절할 것이다. 다만 투기 세력이 이같은 움직임의 시간차를 내다보고 누군가가 상투를 잡을 걸로 생각하고 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법정비는 필요하겠지만 그 자체가 화폐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질: 무언가가 화폐가 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닌 듯하다.
답: 화폐가 화폐로 되기까지 과정은 복잡하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많은 사람이 교환수단으로서 받아줄 거란 안심감이 서서히 퍼져가지 않으면 화폐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 굉장히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중략) 세계 기축 통화는, 미국이 19세기말 영국을 넘어선 뒤에도 한동안 파운드화였다. 반세기 걸쳐 전세계 사람들이 다른 사람도 달러로 결제하고 있다고 안심하게 되고나서야 제2차세계대전후에 달러로 된 것이다.
(중략)
질: 비트코인은 인터넷상에서 거래기록을 공동관리하는 체계로, 통화 관리자였던 중앙은행이 불필요해질 거라는 얘기가 있다.
답: 디지털 통화의 과제였던 위조, 이중 지불 방지를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혁신적 기술로 처리했고, 기능적으로는 화폐에 요구되는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게다가 지폐, 동전보다 송금 비용이 낮고 예금 관리비용도 낮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화폐가치의 안정에는 중앙은행과 같은 공적 존재가 필요하고, 중앙은행을 불필요하도록 하는 비트코인은 만일 통화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쇠퇴할 것으로 본다.
화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도 화폐로서 받아준다"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화폐로서 받아들여진다는 자기순환론법으로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그 예상이 위태롭게 되면 누구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게 돼, 화폐는 화폐이지 않게 된다. 이게 곧 하이퍼 인플레인데, 이같은 불안정성은 화폐의 원죄(=태생적 한계, 필자)이기도 하고 화폐경제에서 살아가는 한, 그 가능성에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발생할 때 경제를 제어하는 중앙은행과 같은 공공기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 비트코인의 기본 사상은 자유방임주의로, 개인의 익명성을 보호할 수 있는 블록 체인을 도입한 것이다. "중앙"을 배제하기 위해 태어난 비트코인은, 바로 "중앙"을 갖지 않기 때문에 가령 화폐로서 유통된다고 해도 반드시 쇠퇴해간다. 물론 화폐가 되기 전에 소멸해갈 가능성이 훨씬 더 높지만. 난 비트코인 설계자 나카모토 사토시는 존경하지만 아쉽게도 화폐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다.
질: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 통화가 태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답: 지금은 달러가 세계경제주역이지만, 한 나라의 통화가 세계 기축통화이기도 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본다. 미국중심주의 트럼트 정권하에서 미국 중앙은행이 국내중심적 금융정책을 계속 가져가면, 달러가 신뢰를 잃고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 긴급사태에서 새로운 기축통화가 태어난다고 하면, 세계은행과 같은 "중앙"에 의해 관리되는 디지털 통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새 지폐를 찍어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트코인 기술을 살리면서 자유방임주의 사상을 보완해 보다 효율적으로 "중앙"이 관리하는 디지털 통화 연구는 다음 시대의 예행연습이 될 거라 생각한다.
질: "중앙"이 디지털 통화를 가지면 사고 파는 게 파악돼 감시사회가 될 우려가 있다.
답: 비트코인적인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지금은 개인의 익명성을 지키는 구조지만, 설계를 조금 바꾸면 조지 오웰의"1984년"에서 그려진 것처럼 "중앙"이 모든 거래를 파악할 수 있는 초관리사회 도구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개인의 자유가 확보돼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복수의 기관이 역할 분담해 분권적인 형태를 취하면서도, 전체 공급량을 조절하는, 그런 익명성과 안정성을 양립시키는 체계가 바람직하다. 그게 제대로 안된다면 현재 통화대로 있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자유방임주의의 비트코인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다음이 "중앙"에 의한 디지털 통화라고 극단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질: 비트코인 기술을 계기로 우리들을 자유롭게 했어야 할 화폐에, 반대로 속박되는 상황이 역설적이다.
답: 마르크스가 "급진적 평등주의자"라고 한 대로 화폐는 인간에게 "자유"를 안겼다. 인간은 화폐만 갖고 있으면 공동체적 속박에서 해방돼 신분이나 성별, 인종을 넘어 누구와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평등도 생겨났으나 그건 양적인 차이로 질적 차별은 아니다. 화폐를 쓰는 경제는 본직적으로 불안정하고 안정성을 위해 공공기관이 절대 필요하다. 자유와 안정성, 개인과 공공성의 밸런스를 어디에 둘 것인지. 개인이 완전히 익명이 되는 자유방임주의적 화폐경제를 선보이려 했던 비트코인 극장은 그 같은 근원적 문제를, 우리들에게 생각케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약하면, 화폐는 어떻든 관리하는 '공공기관' 내지는 '중앙은행'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얘기라 하겠다. 지금과 같이 그 자체의 가치가 폭등하는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라 '특정한 물건'에 가깝고, 반대로 가치가 떨어지면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물론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구조적으로 힘들다는 지적이리라). 이처럼 가치 변화가 심각한 것 자체가 범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인터뷰이의 주장인 셈이다.
향후 어찌 될 지 모르겠으나 순순히 화폐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맞는 말인 듯싶기도 하다. 물론, 여기엔 블록체인 기술 개발 문제와 관련된 논쟁은 언급돼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나름대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어 소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