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권교체 직전 자민당의 동영상 선거캠페인을 돌아보며
일본에서 의미있는 정권교체는 2009년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집권당이 바뀐 때가 사실상 유일하다(90년대 정권교체는 자민당 내부 분열에 가까웠다).
오랜 기간 일본 정치를 장악해온 당시 자민당으로선 어떻게든 선거패배를 막으려 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대통령 선거가 없다. 중의원(미국으로 치면 하원)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쪽이 정권을 잡는 시스템이다. 국회 다수당이 곧 여당이고, 여당 총재가 수상이 된다. 각료도 기본적으로 의원 출신이다.
2009년 일본 정치판은 지금 한국과도 유사했다. 직전 자민당 수상들이 아베 신조(2006~2007년)부터 시작해, 후쿠다 야스오(2007~2008년), 아소 타로(2008~2009년) 등 그야말로 '막장 3총사'가 연이어 등장하며 국민들의 인기를 크게 잃었다. (이 당시 아베신조는 높은 인기로 출발해, 각종 스캔들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2008년 리먼쇼크는 일본에도 큰 타격을 안겨, 이른바 '취업 빙하기(就職氷河期)'라는 말이 유행했다. 취업 재수생(就職浪人)'이라는 말도 처음 등장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반면, 당시 민주당(현 민진당, 民進党)은 비교적 참신한 인물들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을 책임지던 하토야마 유키오, 시민단체 출신 칸 나오토 등이 그런 대표주자였고, 정치적 수완으로는 늘 '흑막'으로 거론되는 오자와 이치로(직전까지 대표를 하다, 정치자금 스캔들로 2선후퇴)가 뒤를 받치고 있었다(물론, 당의 주축은 대다수 자민당 출신이었지만 일본 정치판상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즉, '바꿔보자'는 사회풍조, 민주당의 '인물', 자민당의 '실책' 등이 맞물려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교체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실제 선거 결과는 예상보다 놀라웠다. 민주당이 480석 중 308석이나 얻었다. 지역구에선 무려 221석으로, 자민당 64석을 압도했다. 전체 득표율로 보면 민주당 42.41%, 자민당 26.73%로 그야말로 압승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야당의 패착이 거듭되고 있지만, 당시는 달랐던 셈이다. 아래는 1면에 걸린 민주당 승리 기사와 위키피디아 내용.
이 가운데 자민당은 당시 민주당의 모순을 지적하는 '아니메'를 적극적으로 뿌려,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일종의 네거티브 공세인 셈인데, 거의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캠페인 내용이 거의 맞아들어갔다. 자민당이 절박한 가운데서도 "제대로 지적하려 노력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씩 살펴보겠다. 1분 이하로 짧다. 대사 번역은 밑에 해뒀다.
첫번째는 '라면'편이다.
당시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가 라면집 사장으로 등장한다. 유권자인 여성 손님과 대화하는 게 주장면이다. 여러 손님들의 요구에 하나하나 응하다, 라면이 엉망이 돼버린다.
당시 민주당 공약이 잡탕이었음을 절묘하게 지적했다.
女:「あ、あなたは!」
손님: 다, 당신은?!
男:「いらっしゃい!久しぶり!口先だけじゃなくて、こうしてせいさくしてるんだよ」
점주: 어서옵쇼! 오랜만! 말뿐만 아니라, 이렇게 제작(일본어에선 제작制作과 정책政策 발음이 같다)하고 있다고!
女:「じゃあ、見せていただくわ」
손님: 그럼, 한 번 봐볼까.
男:「当店自慢のマニフェスト麺。ウチはこれ1つで勝負です」
점주 : 저희 가게 자랑인 매니페스토(정책공약) 면. 우리는 이거 하나로 승부봅니다.
客A:「油が足りな~い」
손님(미국인)A : 기름이 부족~해.
-> 당시 미군기에 기름을 보충해주는 문제에 민주당이 반대의사를 표명하다 결국 돌아섰다.
男:「じゃあ、給油しますよ」
점주 : 그럼, 기름 넣을게요.
客B:「ちょっと!給油はやめるんじゃなかったの?」
손님(사회당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B : 저기요, 급유는 관두는 거 아녔어?
-> 사회당은 전통적으로 미군에 대한 호의적 움직임에 비판적. 당시 연정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사회당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男:「給油やめます」
점주 : 급유 관두겠습니다.
客C:「地方色が足りないな~」
손님C : 지방색이 떨어지네~
男:「いやいや、ほら、こ~んなに」
점주 : 아닙니다, 봐요, 이~만큼이나.
客D:「成長性がないじゃないですか!」
손님D : 성장성이 없지 않은가요!
男:「いやいや、ほら、こ~んなに」
점주 : 아닙니다, 봐요, 이~만큼이나.
客E:「子供にもやさしくしてよ」
손님E : 어린이들한테도 잘 해줘요!
男:「は~い、はいはい。2万6千円分のふりかけをばら撒くよ」
점주 : 예예~. 2만 6000엔의 후리카케(밥에 뿌려먹는 것) 쫙 뿌려드릴게~
-> 뿌리다(바라마쿠ばら撒く)라는 말에는, 선심성 예산 뿌리기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어린이 수당을 뿌려서 환심사려 한 걸 지적한 것.
女:「ちょっと、最初と全く違うんじゃない?」
손님(유권자) : 저기요, 처음 라면하고 완전히 다른 거 아닌가?
男:「いえいえ、最初からこれです」
점주 :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거에요.
女:「えぇぇぇ?」
손님(유권자) : 에~(놀람)
ナレ:相手に合わせるだけでは、誰一人幸せにできない。
揺るぎない政策 自民党
나레이션 :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만으로는, 한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흔들림 없는 정책 자민당
두번째는 당시 민주당 내 대표격들의 제각각인 목소리를 비꼰 아니메 영상이다. '꽃보다 남자(花より男子)'라는 만화+드라마의 주인공 F4에 빗대, '흔들림 4인방(ブレ4)'라고 묘사했다.
왼쪽 실루엣부터 칸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 오자와 이치로, 오카다 카츠야(전 민주당 대표)다. 정책이 하나씩 나오고, 구호를 외친 뒤, 누군가 항의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하면서 캐릭터가 동요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대사 설명은 밑에 해뒀다.
4人バラバラ ブレフォーです!
4명 제각각 브레포(흔들림 4) 입니다 !
♪~
テロ対策での給油
反対!
反対!
反対!
테러 대책 급유
->미군기에 기름 넣어주는 것, 내용은 위에서 간단히 설명했다)
반대!
반대!
반대!
ホントウデスカ?
졍말잉가요?
->미국인의 항의
・・・とも言えな~い
라곤 말할 수 없~어
貿易(米国との貿易自由化)
무역 (미국과의 무역자유화)
自由化!
自由化!
自由化!
자유화!
자유화!
자유화!
なーに言ってんだ!
뭔 소리 하는 거지!
-> 농민의 성난 목소리. 한국 FTA를 상상하면 되겠다.
・・・とも言えな~い
라곤 말할 수 없~어
地方
分権!
分権!
分権!
지방
분권!
분권!
분권!
とも言えな~い
라곤 말할 수 없~어
ブレフォーに日本の明日をまかせられますか?
브레포에게 일본의 내일을 맡길 수 있습니까?
ぶれない政策 自民党
흔들림없는 정책 자민당
한국에서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바꾸는 데서만 멈춰선 안된다. 분명한 방향성을 잡아야지, 이런저런 정책이 잡탕이 돼버리면 그 말로는 일본 민주당에 가까울 공산이 크다.
당시 자민당은 대패했지만, 결국 다시 정권을 잡았고 현재는 장기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메 캠페인도 당시엔 실패했지만, 현 자민당은 위의 캠페인을 교훈삼은 노선을 비교적 잘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정치권도 참고로 삼을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