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젊으니까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

by 재원

돈 벌기는 쉽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어렵지만, 먹고살 만큼만 돈을 버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뒤에 든 생각이다. 바리스타 2급은 40만 원, 1급은 2급 합쳐서 100만 원이면 학원비와 시험료가 해결이 된다. 배우고 시험 보기까지도 한 달 밖에 안 걸린다. 이 자격증만 있어도, 여느 카페 매니저 정도는 할 수 있다. 평일마다 일해서 최저만 받아도 학원비는 금방 나오고 먹고살 수 있다. 이런 일은 꼭 수도권에서 안 해도 되지 않은가, 대출받고 월세 살면서 카페 일하면 자격증에 들어간 비용도, 대출금도 차차 갚게 될 거다. 물론, 그 외에 다른 걸 하긴 힘들겠다. 카페 일이 마냥 쉬운 건 아니라서, 일하고 집에 오면 기진맥진할 거다. 신경 쓸 것도 많을 거고, 카페가 잘되지 않으면 또 힘들게 될 거다. 그래도 뭐, 적어도 내가 봤던 카페들은 오래 잘 있다. 그런 거다.

젊으니까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그 기술로 적당한 돈을 버는 건, 사지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의학의 발달로 '젊음'의 수명도 늘어났다. 젊음은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주고, 나의 새로운 능력을 세울 에너지가 된다. 중요한 건, 넓은 시야로 상황을 보는 습관과 명확한 가치관이다.

'가치관'은 부러움에 쫓겨 살지 않도록 하는 정도면 된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만족시켜 주는 가치관이면 된다. 남이 갖고 있는 걸 부러워하지 않거나, 부러워도 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뻔한 얘기다. 동시에 쉽지 않은 얘기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하는 것 중 두 가지가 질투와 경쟁이다.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이 성향을 무시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만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경쟁과 질투에서 벗어남이야말로 이기고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건 절대적이다.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반면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인 것에 크게 휘둘리기에, 이 절대적인 가치를 잊고 만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자신의 선택으로 처한 환경이 아니어도, 어깨가 무거운 영혼이 안타깝다.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넘치는 이에게 안개가 자욱할 때, 발밑만 보다 눈이 멀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내 행동의 결과가 나 자신만으로 끝나지 않을 때, 사람은 필사적이고 절실하게 되지만 동시에 선택의 폭도 좁아지게 된다. 좋은 길을 고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절박했기에, 그의 선택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뒤로하는 그 모습이,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비교는 나와 너 사이보다 내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어제 만끽한 행복을 오늘 누리지 못해 불행함을 느낀다.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애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대성을 극대화하는 게 바로 절대적인 젊음이다. 젊음은 에너지다. 시시각각 그 모습이 변한다. 모든 게 일시적이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 답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더라도 파헤칠 구멍 하나 생기는 건 곧이다. 젊음은 그 모든 변화에 가속을 붙이고 나아간다. 젊음의 빛은 너무나도 강렬하기에, 작은 가능성도 환하게 비춘다. 그의 경험과 선택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그러기에 난 믿는다. 그 사람의 튼튼한 두 다리를 믿는다. 넘어져도 다리 털고 일어날 그의 잠재력을 나는 안다. 그 많은 역경을 지낸 뒤, 힘들었지만 돌아온 길을 보며 후련하게 과거를 보내리라 믿는다. 넘어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던 그 상황에서도, 넘어져 봐야 무릎 짚고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었다는 걸. 그는 곧 알게 되리라. 그 끝에는 더욱 견고해진 자세가 있으니까. 그는 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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