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양원에서 보람을 잘 느끼지 못한다.

by 재원

방 청소를 하고 나면 깨끗해진 방의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 내 노력으로 더 나아진 결과물을 보면 노력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을 받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내 행위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된다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그동안 경험한 보람은 그랬다. 하지만 요양원은 달랐다. 나는 요양원에서 보람을 잘 느끼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어르신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는다. 오늘 잘해 드린 것도 내일 기억하지 못하신다. 평일 내내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해도 매일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르신은 결국 명을 다 하신다. 그저 어르신에게 남겨진 것들로 최대한 편하게, 오래 보살펴 드릴뿐이다.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보람은 일의 원동력이다. 특히 봉사와 같이 보수를 받지 않거나 부족하게 받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해당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다.


요양원에서 심리적 보상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직원분들과 친목하며 위로를 받는다. 자식뻘인 나를 자주 챙겨주신다. 감사하다. 인지가 있으신 어르신들도 나를 잘 봐주신다.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르신께서 해주시는 감사 표현은 나를 힘내게 한다. 나는 하기 싫은 마음 억지로 붙잡고 일을 하거나 요령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스스로 잘한 게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나를 향한 어르신의 따뜻한 말씀은 나를 채찍질한다. 보람도, 보상도 없지만 마음과 힘을 끌어모아 어르신을 섬기게 한다. 결국 피폐해진다. 직원분들이 잘 챙겨 주시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동료조차 없는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깎여 나갈 뿐이다. 내게 주어지는 일이 적다 한 들, 내 활력의 소모는 누적된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잘 버티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어르신의 부드러운 채찍이 효과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소모된 몸과 마음이 집에서 충분히 회복되고 있어서일까.

두 가지 이유 모두 맞지만, 내 주관에서는 하나가 더 있다. '배움'이다. 배움은 또 하나의 보람이다. "어르신들 모시면서 배우는 게 많을 거야."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많이 들은 말이다. 맞다. 일 년 하고 두 달 동안 배운 게 많다. 가족, 죽음, 관계, 병과 아픔, 복지, 노약자, 인권, 인성, 양심, 도덕성 등 많은 주제에 관해 생각하고 배웠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도 있고, 관심이 생겨 직접 찾아 배운 것도 있다. 이렇게 배운 것들이 내 앞으로의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다. 당장 내 삶에 와닿지도 않는 배움이 어떤 의미가 생길지 아직 알 수 없다.


정신 승리일 수도 있다. 어쩌다 석탄 속에서 가치 없는 반짝이는 돌 하나 찾았다고 다이아몬드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가에서는 볼 품 없는 돌멩이다 하더라도, 어두운 석탄 속에서는 고귀한 빛이 되고,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석탄을 파내려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저 그 빛을 보고 내가 만족하면 된 것 아닌가. 작은 돌의 옅은 빛을 볼 수 있게 됐으니 충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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