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ㄱ'자 하나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by 재원

필리핀에서 현지 언어(타갈로그어)를 배울 때 있었던 일이다. 타갈로그어 글은 로마 알파벳을 차용한다. 내가 타갈로그어 발음을 배울 때도 칠판에 적혀있는 알파벳을 보며 현지인 선생님의 말을 따라 했다. 문제는 'ga' 발음을 배울 때 나타났다. 'ga'의 발음은 우리말 '가'의 소리와 비슷하나, 두 발음은 미묘하게 다르다. 내가 'ga'를 '가'로 발음할 때, 선생님은 내 발음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ga'를 외쳤고,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 채 매번 '가'를 발음했다. 사실은 이랬다. 우리말에서 'ㄱ'으로 시작하는 말들은, 그 'ㄱ'의 발음이 'g'보다는 'k'에 가깝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의 '가' 외자 발음을 'ka'로 인식해서 내 발음을 계속 틀렸다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예사소리('ㄱ', 'ㄷ', 'ㅂ', 'ㅅ', 'ㅈ')로 시작되는 우리말 단어가 왜 'k', 't', 'p', 'sh', 'ch'로 표기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말은 첫소리에 숨이 많이 들어가는(다소 거센소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은 첫소리로 숨이 들어간 'ㄱ'을 들어도, 'ㅋ'으로 인식하지 않고 곧잘 'ㄱ'으로 잘 알아듣는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첫소리가 거센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은 채 말을 한다. 이는 우리말의 특징이며, 이 작은 특징은 우리말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서 'ㄱ'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관점에 따라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다.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하는 대상도, 새로운 관점에서 내가 모르는 사실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대상을 '모른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를 안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내 몸 상태와 내 몸에 필요한 것은 나보다 내 몸을 진찰한 내 · 외과 의사가 더 잘 알고, 내 마음 상태나 내 마음에 필요한 것은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더 잘 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성격의 장단점을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내가 나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많다 하더라도, 난 나를 '안다'. 자조적으로 '난 나를 잘 몰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내가 아는 대상의 새로운 모습이 발견되는 것은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도 학부생의 참신한 질문 하나로 그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그 교수는 그 분야의 박사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 점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뻔한 말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상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대상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나의 이해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 사람 조예가 나보다 얕다 하더라도 말이다. 반대로,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지 않으면, 대상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없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대상을 비추는 하나의 빛만 강조가 되면, 그 반대편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여러 방향에서 비추는 빛들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대상의 더 많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 대상을 결정지을수록, 내가 모르는 것은 더욱 가리어지게 된다.


잘 모르거나, 알고자 하는 대상의 정보를 얻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신뢰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대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두루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논리 오류인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함과도 같다. 나아가, 나만의 관점도 중요하다. 내게 생긴 의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설명을 듣고 내게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면, 그 사람이 밝혀준 빛 반대편의 그림자를 내가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내 관점, 내 위치에서 대상을 향해 빛을 한 번 밝혀보자. 나만의 결론이 나오고, 앞서 배운 다른 관점 속 대상의 모습과 어우러져 더 입체적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알지만 모를 수 있음을, 몰라도 볼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앎'의 열린 생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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