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쉐어 5년차 모더레이터의 현장 고백
좋은 모더레이팅 참가자들을 분위기를 4단계에 걸쳐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안심', '관심', '재미', '몰입'의 4단계이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단계 '안심'이다. 참가자들에게 안전감을 느끼게 만드는 구간이다.
앞으로 캠프 파이어에 비유해서 모더레이팅 기법을 많이 설명할 것이다. 캠퍼가 비오는 날 처음 만난 장작과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안심'의 단계이다. 시각과 촉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들이 제빠르게 입력하면서도, 참가자들과 첫 라포를 형성해야하는 인트로의 순간이다.
1단계 '안심'으로 이끄는 순간은 참으로 어렵다. 첫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은 숙련된 모더레이터에게도 늘 긴장되는 일이다. 어떤 사람, 어떤 분위기, 어떤 역동이 일어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익숙한 참가자 전혀 없는 외부 강연이나 기업 워크샵은 그 딱딱함의 정도가 더 크다.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직접 자신이 신청해서 온 자발적 참가자들로 가득찬 워크샵도 긴장감이 감돌기는 마찮가지다. 기대하고 온 만큼 무언가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쪽이던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본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타인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말은 충분히 수동적이도 괜찮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가끔 외부 강연, 워크샵에서는 알 수 없는 기싸움도 벌어지곤 한다. 애당초 실무도 바쁜데 이 자리에 불려나온 사람들에게는 살짝의 조급함과 짜증이 깔려있다. 연차가 조금 있는 분들은 이미 유사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 모더레이터가 얼마나 내게 좋은 영감을 줄 사람인지를 간파하기 위해 예사롭지 않는 눈빛을 위아래로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팔짱까지 끼고 있으면 더 무섭다. 모더레이터는 그 눈빛에 움찔하면서도 지기 싫은 반발심에 척추에 힘을 말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애당초 인정을 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대들과의 기싸움에서 이길수가 없고, 이길 마음도 없고, 그대들이 바쁜데 귀한 시간을 쪼개어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마음 깊숙히 인정하는 것이다.
모더레이터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어'로 이뤄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비언어'로 가득찬다. '지고 시작하는 마음'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우선 참가자들의 에너지 흐름과 역동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미 졌기 때문에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오거나 부정적 역동이 올라오더라도 그것에 편히 인정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노련한 참가자들에게 대번에 파악된다. 만약 그들의 말에 똑같은 에너지 레밸로 받아쳤다면, 모더레이터에게 주어진 몇시간은 어려운 얼음을 깨고 나아가야하는 쇄빙선 같은 마찰을 겪에 된다.
하지만 낮은 마음으로 입장한다면, 참가자들은 우선 자신들이 인정받고 있다고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세웠던 날을 누그러트린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구사할 수 있고, 지식이 높은 모더레이터도 참가자들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것을 전할 수 없다.
"이런 진행은 예전에도 해봤어요. 비슷하네요."
"언제 마치나요?"
"ㅇㅇㅇ 이런 거는 해주시는 거죠?"
"뭐 이런 것 밖에 없어요?"
"네, 맞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저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 부분은 미쳐 생각못한 부분입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장 전부터 낮은 마음으로 참가자들을 대한다면 이러한 진심어린 인정과 사과는 쉽다. 유연하게 받아드리고, 천천히 자기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은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결코 참가자들과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고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날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처음에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참가자들은 자신이 인정받았다는 마음을 받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마음을 누그러트린다. '안심' 단계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재미-몰입의 단계를 거치며 누구보다 만족도 높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열렬한 펜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고 시작하는 것이, 절대 실제로 지는 것이 아니다. 모더레이터는 유연하고 여유로운 시작을 할 수 있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말을 마음으로 경청해준 모더레이터에게 안심을 느낀다. 누군가의 안심은 동심원처럼 전체에 퍼진다.
게다가 지고 시작하는 마음은 베이스가 '존경'이지 비굴함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각자의 삶에서 체득한 높은 경험이 있다. 그들을 인정하고, 우리는 여유를 챙기고, 안심의 단계로 천천히 흘러가도록 이끌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