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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에 수분 말리기

모더레이터가 되기로 했다

by 라이프쉐어

비가 온 뒤 캠핑장에서 불을 피우는 방법.


꼭 비가오지 않아도 아침 이슬에 주변이 축축하게 젖어있을 수도 있고, 눈이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작은 불꽃도 소중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초반 불꽃만 트우는데 집중하고, 2차로 넣을 장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활활 타오르는 캠프 파이어의 순간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첫 불꽃의 생명력을 확장해 줄 장작에 수분이 머금어져 있다면 오히려 불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작은 불에 커다란 물을 부어버리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습기가 많은 날에는 장작을 작은 불에 바로 넣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 근처에 젖은 장작을 두어 충분히 수분기를 말려야 한다.


이때 원하는 커다란 불꽃은 일어나지 않고, 장작 위로는 왠 하얀 수증기만 가득 올라 올 것이다. 원하던 캠프 파이어의 모습이 아니라 실망할 필요가 없다. 장작을 말리는 행위는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불꽃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소중한 준비 단계이다. 잘 마른 장작은 오래동안 캠퍼들의 온기를 책임져 줄 숯불이 된다. 잠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내 최고의 온기를 전해주는 방법. 먼저 젖은 장작을 말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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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레이터의 인사


그곳이 온라인 환경이던, 오프라인 환경이건 가장 먼저 참가자를 반기는 것은 모더레이터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젖은 장작이 되어 입장한다. 이곳까지 오느라 교통 체증을 감당했을 것이며, 겨우 퇴근을 하고 시간에 맞춰 노트북 앞에 앉았을 수도 있다. 어제까지는 괜찮았지만 오늘 갑자기 컨디션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다가도 낯선 환경에 갑자기 긴장감이 올라올 수도 있다.


이때 섣불리 장작을 작은 불꽃에 가져가서는 안된다. 그들이 천천히 마를 수 있도록 모더레이터는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갭을 선물해야 한다. 물론 모더레이터의 마음은 미리 정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부분은 뒤에 조금더 자세히 안내하도록 하겠다.


먼저 마음 가득 호흡과 미소를 담아 인사를 건내보자. 마음은 넓게, 눈은 맑게, 목소리의 파워베이스는 단전에서부터 부드럽게 끌어올려 참가자를 맞이하자. '안심'의 단계는 역시 인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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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오늘은 먼저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뵙고 싶었어요."


최고의 환대는 이미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우리는 참가자를 좋아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신청을 해준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료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돈도보다 더 값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선택지 중에 우리를 선택하고, 시간을 내어준 참가자에게 이미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모더레이터와 참가자의 마음 속 작은 불꽃에 불쑥 젖은 장작을 넣어서는 안된다.


"아직 다른 분들이 오고 계신 것 같은데 천천히 둘러보시고, 편안하신데 앉아계세요."

"지금 곡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혹시 좋아하는 곡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틀어드릴게요."

"향을 조금 피워봤는데 어떠세요?"


이때, 오프라인 환경과 온라인 환경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먼저 온 참가자의 경우 충분히 혼자만의 chill out 시간을 줄 수 있다. 모더레이터도 프로그램 점검을 한다던가, 잠시 호흡을 고르며 오늘의 에너지를 모을 수도 있다. 보조 안내자가 있다면 더욱더 여유로운 준비를 할 수 있다. 참가자들도 책을 보거나,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바깥 세상과 워크샵 공간의 gap을 자연스럽게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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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가자들 중에는 부끄럼을 많이 타거나, 자신이 늦었다고 생각해서 급히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지나치는 참가자들도 있다. 그것은 본인들의 성향이므로 지나치게 안정시키려 한다던가, 저지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도로 편안하게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말을 줄이고, 충분히 부끄러워하고 급한 마음을 스스로 가라앉힐 수 있또록 배려를 한다.


하지만 온라인의 상황에서는 눈을 피할 곳이 없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이때는 작은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좋다. 마치 아무도 없는 카페에 손님 한분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안부와 인사를 가볍게 묻고, 자리에 앉힌다는 생각으로 참가자들을 맞이하면 좋다.


때로는 카메라를 끄고, 단절되어 있는 상황을 선호하는 참가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안부를 물어며 스몰토크를 하던가 아니면 추후 시작될 시간과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며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비대면 상황에서 주는 손쉬운 단절감이 때로는 마음의 경계를 주고, 몰입감을 해치기도 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스킬 들은 또 뒷편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다운로드 (1).jpeg 라이프쉐어 랜선 '연결의 밤'


안부에서 온기로


인원에 따라 모두의 안부를 물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론을 시작하기 전 안전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또 참가자들의 입을 풀고, 천천히 몰입시키기 위해 안부를 묻는 행위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그것이 1회차라고 해도 마찮가지이다. 우리가 처음보지만,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은 어떤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등은 충분히 친근하게 물을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정기 워크샵이든, 진심어린 안부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기에서 부드러운 어감과 관심의 눈빛은 참가자들의 시선을 머리에서 천천히 심장으로 모은다.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참가자들은 모더레이터의 눈빛을 통해 이 행사 전반에 마음을 안심을 느끼고, 개인적인 안부도 담담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몇몇의 이런 인사와 교감은 주변으로 퍼져 잔잔한 온기를 만들어 본 워크샵이나 식순에 부드럽게 녹아들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안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관심과 반가움, 걱정으로 그를 맞이하는 것이다.


중요한 식순을 소개할 수도 있고, 오늘의 주요 활동, 모임의 목적들을 말해주는 것으로 intro를 짤 수도 있다. 스마트해 보일 수 있고,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행위일지라도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마음의 체크인으로 시작해서 중요한 것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첫 시작을 진행해보자.


온기로 잘 마른 장작은 결국 그 어떤 캠핑장의 캠프 파이어보다 더 크게, 더 오래 가는 불꽃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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