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레이터로서의 마음 가짐
'띵동-'
"안녕하세요."
"어떻게 잘 찾아오셨어요?"
"아네, 오는데 좀 정신없더라고요."
문을 열고 참가자 입장한다. 그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해서 참가자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를 최대한 안전하게 안내하느라 집중하면서도, 무의식 한편으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바로 시각, 청각, 후각 등으로 들어오는 상대방의 첫인상 정보들에서 수많은 판단을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제한적인 온라인 환경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첫 모습에서 일어나는 '사전 판단'은 모더레이터라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화학작용이다. 판단은 순간적으로 편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우리를 보호하려고 외적 정보나 감응해 이전에 안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편견과 방어적인 자세를 만든다. 이는 긴장감으로 때로는 영혼 없는 환대로 이어지게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전에 좋았던 기억 때문에 마음이 빠르게 개방되고, 쉽게 호감을 가지게도 된다.
그런데 오랜 시간 모더레이팅을 하며 이 첫인상을 믿지 않게 된다. 참가자의 첫 모습과 마지막 모습이 다른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의 이유로 아주 손쉽게 주머니 속 어려가지 가면 중 하나를 챙겨 쓴다.
처음에는 너무 부끄럼을 타고, 주눅이 들어서 입장하던 참가자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강한 위트와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쉽게 바뀐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밝고 당당하며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는 적극성을 보이던 참가자라도 초중반부터 바로 감정적으로 무너지며 연약한 에너지로 바뀌기도 한다. 역시 처음 등장부터 강성의 모습으로 좌중을 긴장시키던 참가자도 프로그램이 끝날 때면 모더레이터와 주최 측의 열혈 한 지지로 변하기도 한다.
첫 모습과 나중에 모습이 왜 다른지는 서로 입장을 바꿔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나의 본모습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참가자의 모습은 자연히 달라진다.
* 만약 이렇게 다이내믹한 변화도 없고, 딱히 적극적인 참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원수에 따라 참가자가 수동성을 쉽게 깨기 어려운 상황도 있고, 그날의 컨디션 혹은 프로그램 성향에 따라 표면적인 변화보다 발견하기 어려운 내적 변화가 더 깊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1. 안전함을 준다.
판단-평가는 상대에게 전해진다. 서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어렵다. 내가 그들을 '무'의 존재로 순수하게 바라보고, 아무 편견 없이 대할 때 천천히 참가자들은 이곳을 나의 색깔로 존재할 수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것이 gap time과 합쳐지며 '안전'의 단계로 형성되고, 이후 '관심'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게 된다.
2. 존재적 교감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해도 된다는 안전함이 서로에게 퍼졌을 때 우리는 피상적인 대화가 아닌 존재적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모더레이터의 편견 없는 눈빛과 환대는 이토록 큰 차이를 만들어내게 한다.
모더레이터도 사람인지라 각자 호불호가 생긴다. 이전에 상처들과도 빠르게 화학작용을 하며 투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내어 이곳에 온 고마운 참가자에게 안전하고 깊은 경험을 주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No name. 상대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수련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편견이 일어나거나, 판단의 마음이 일어나기 전에 끊임없이 내려놓자. 머리와 마음에 추측하고 판단하려는 의도 없이 두 눈을 맑게 유지해야 한다. 티 없는 존재적 반가움으로 참가자들을 대할 때 그들도 이곳이 바깥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모더레이터의 마음에도 참가자와 나 사이에 에너지적 완충지대가 생겨 훨씬 더 유연한 초식이 흐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