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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Aug 08. 2016

요트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관점을 바꾸어 떠나는 일상 속 가장 먼 여행.   

요트는 오랜 버킷리스트였습니다. 


부산에서 자란 저에게 바다 위 푸른 태양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요트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어른이 되고 점점 더 요트는 나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틈도 없었습니다. 눈 앞에 일들을 하기에도 바빴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우연한 일로 요트는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탁PD의 여행수다'입니다.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을 출간하고, 책을 소개할 요량으로 지난봄 팟캐스트에 출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팟캐스트의 인기 덕분에 책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그곳에서 전명진 사진작가님을 알게 됩니다. 탁PD님과 함께 MC를 보고 있는 분이셨죠. 한눈에 정말 멋진 형이란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탁PD의 여행수다' <최재원>편. 왼쪽부터 탁재형 PD, 최재원 작가, 전명직 작가




그런데 여기 문제의 인물이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노리플라이의 멤버이자 산악인 정욱재였습니다. 저와는 전 회사 소속 뮤지션과 음반 마케터의 관계였죠. 한마디로 일하다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는 제가 '탁PD의 여행수다'에 출연한다고 하자, 팟 캐스트의 골수팬임을 밝히며 미팅까지 따라오는 특유의 친화력을 과시합니다. 실제로 모든 에피소드를 구독했던 탁PD 여행수다의 마니아이자, 웬만한 산에는 탠트를 안 쳐본 적이 없는 아웃도어 여행 전문가였죠. 여행이라는 공통점으로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합정동에서 종종 모여 냉면이며 녹두전을 먹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합니다. 그날도 어느 날처럼 합정동 동무 밥상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조촐한 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득 든 생각이 있어 전명진 작가님께 한 가지를 물어봅니다. 


"명진이 형, 탁PD의 여행수다 저 출연 직전에 나왔다던 익스퍼루트에 홍동우 씨 있잖아요."

"어, 동우 왜?"

"저 그분 예전부터 되게 보고 싶었던 분인데 한 번 소개하여주면 안돼요?"

"저 예전에 실제로 메일 주고받은 적도 있어요. 한 번은 만나고 싶은데.."

"그래. 동우? 아마 부르면 올 텐데. 어디 연락 한 번 해볼까?"

"정말요? 네. 그래주시면 고맙죠!"

 

그러자 마침 상수에 볼일이 있던 홍동우 씨가 일을 마치고 거짓말처럼 자리에 합류합니다. 우리는 단골인 쓰리고 카페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 탁PD의 여행수다 출연을 했었던 또 다른 한 분. 아트로드의 저자 김물길 작가님도 운연히 자리에 합류하게 됩니다. 게다가 막 미국 여행을 마치고 온 밴드 흔적에 최상언 씨도 함께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책의 중심 배경인 쓰리고 카페에서 여행 씬과 홍대 밴드 씬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습니다. 저마다 여행 고수에다가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들이라 우리는 금방 친해집니다. 


그중에서도 국내 여행 쪽에서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홍동우 씨와 제가 참 말이 잘 통했습니다. 우리 둘은 다들 세계여행을 이야기할 때, 한국에도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다며 목청을 높입니다. 홍대에서 하는 세계여행에 대해서 책을 쓴 저와, 국내 전국일주 여행사를 운영하는 그가 안 맞을 리가 없겠죠. 오랜만에 동지를 만나 기분이 잔뜩 들뜹니다. 


"직장인들이야말로 여행이 필요한 분들인데 어디 멀리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돌아보면 한국도 정말 좋은 곳이 많다니까요. 주변도 봐야 해요."

"형 말이 맞아요. 해외여행을 간다고 해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한국에 있는 것과 똑같이 답답할 수 있어요. 대신 한국에 있으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여행하듯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어요."

"캬. 정말 제 마음과 이리도 비슷할 수가 있죠?"

"한국에서도 정말 세계여행 못지않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정말 좋은 곳도 많아요. 여행의 즐거움은 장소와 관계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


이렇게나 들뜨자 전 그만 실언을 하고 맙니다. 


"여러분 혹시 서울에서 요트 타보셨나요?"


"아뇨. 아직 안 타봤어요."

"그럼 꼭 타보셔야 해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특히 저녁에. 저녁에 타봐야 해요!"

"멋진 한강에 두둥실 올라서 멋진 한강 교각들을 지나갈 때, 멀리 휘양 찬란한 서울의 불빛들을 스쳐갈 때. 정말 세계 웬만한 여행지보다 더 멋진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홍콩, 터키, 싱가포르 갈 필요가 없다니까요. 한강 정말 멋져요!"

"제가 한강에서 요트 한 번 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한 달 뒤 오늘. 우리 한강에서 만납시다!"






출처 서울마리나





사실 저는 그때까지 한강에서 저녁에 요트를 타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 잠실에 있는 요트 업체와 미팅 때문에 대낮에 타본 적은 있었지만 저녁에는 없었습니다. 순전히 들뜬 기분에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낮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한강이 저녁이라고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기분 좋은 자리가 끝나고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제가 요트를 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심지어 날짜 약속까지 잡았답니다. 요트를 실제로 어디서 타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한 두 푼은 아닐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겨우 다달이 살아가고 있는 요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리도 없습니다. 초조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확 들뜨고 마는 이 기분파 성격이 문제입니다. 단체 카톡 방에 슬며시 고백을 하며 없던 일로 하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게 요트 위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있겠죠.


고심끝에 저는 결심을 합니다. 요트를 빌리기로 말이죠. 그분들도 다시 만나고 싶고, 지금이 아니면 오랜 로망이었던 요트를 언제 타보겠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게'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하지만 맘과 달리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서울에서 탈 수 있는 요트 가격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서울 마리나의 서울요트협동조합의 상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요트였지만 10만 원 중반대로 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큰 가격을 아니었죠. 게다가 홍대 권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을 부르기에도 여의도는 최상의 위치였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단체 카톡방에서 약속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모두들 기억하시죠? 한 달 뒤 오늘입니다.'

'네! 저희들도 기대하고 있어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갔습니다. 돈을 겨우 마련해 요트 예약이 잡혀있던 날 3일 전에 결제를 마쳤습니다. 뒤늦게 날씨를 확인해보았는데 다행히 화창한 날씨가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트를 타러 오기로 한 멤버들 중 어느 누구도 한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줄까 걱정되었습니다. 게다가 모두가 세계여행을 마치고 온 인기 여행의 달인들이었습니다. 정말 한강에서의 소박한 여행이 그들에게 즐거움이 될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걱정반 기대반 약속의 날이 밝았습니다. 잘만 된다면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로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죠. 


요트를 빌린 날이 밝았습니다. 마음만 급해서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네요.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8시에 요트를 예약했는데 7시 45분에 딱 도착합니다. 성실한 뮤지션 정욱재씨는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 마리나에 마련되어있는 넓은 데크에 파라솔 하나를 잡고 자연스럽게 스파클링 와인을 꺼냅니다. 그러자 약속 한 듯 1분 간격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들이 도착합니다. 누구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음악을 틉니다. 누구는 여행용 위스키 잔을 돌립니다. 여행의 고수들 답게 이 모든 행동들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점자 한 달 전 우연히 만났던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추가로 고 아웃 매거진에 류정민 기자님까지 오시고 자리는 무르익습니다. 여름이지만 한강에서 살랑살랑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아름다운 여의도 마리나의 선셋 풍경에 그대로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긴장했던 마음이 강바람에 그대로 스르륵 풀려버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날 빌린 32피트 요트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한강 위 낭만을 생각하며 각자 음료를 챙겨 오자고 제가 먼저 제안했것만 눈 앞에서 기대가 꺽였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멀뚱멀뚱 서있으니 멤버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저를 다독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10분 동안 충분히 다 먹을 수 있다며 병을 흔들어 보입니다. 이토록 쿨한 친구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정말로 와인 두병을 10분 만에 해치웁니다. 반입이 안된다고 이렇게 들이키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겨 키득키득 웃음이 너도 나도 번져갑니다. 마치 교문 앞에서 단속에 걸릴까 금지된 음료를 모두 나눠마시는 고교생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강가에서 와인을 먹어본 적도 없지만, 거의 처음 본 사람들과 기분 좋게 웃어본 적도 없습니다. 배에는 아직 오르지도 않았지만, 이미 기분은 남태평양을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트에 오르자 서울 요트 협동조합의 조합원분이 함께 오르십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탑승자 리스트를 작성했고, 조합원님께 구명조끼의 사용법과 선내 규칙, 요트 매너 등을 간략하게 설명받습니다.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요트 여행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갔습니다. 요트에서는 기본적으로 신발과 양말을 벗는 것이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신발을 벗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이 행위가 알수 없는 해방감을 줍니다. 여러 사람들과 한강 위에 떠 있는 것 자체도 동심을 자극하는데, 양말까지 벗고 있자니 남아있던 조금의 가식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재미있어하는 맴버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도 비슷한 기분을 즐기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얼마뒤 요트는 가벼운 시동음을 울립니다. 그리고는 한강 위 지평선에 걸린 해를 붙잡고, 조금씩 한강 가운데로 미끄러져 갑니다. 


한강 가운데 들어서자 서울은 천천히 저녁이 되었습니다. 항상 무덤덤하게 보던 한강 교각들이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밑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마치 숨겨진 아름다운 동굴을 지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의 화려한 불빛은 흑경처럼 고혹한 강물에 비쳐 우리의 발 밑에 어른거립니다. 세계를 몇 년 동안 누비고 다녔던 여행 작가들도 이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거짓말처럼 내뱉었던 한강의 아름다움은 반쯤은 진실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소풍을 떠난 아이들처럼 기뻐하고 손을 맞잡으며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러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자기소개 시간도 가집니다. 딱딱한 자기소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강 위에 있으니 모두가 시인이 된 것 같습니다. 분명 한 달 전까지도 어색한 사이였는데 요트에 오른 지 30분 만에 우리는 둘도 없는 고교 동창처럼 친해졌습니다. 거기에는 뮤지션도 기자도 직장인도 없었습니다. 그저 모두가 여행자가 되어 함께 한강 위에 있다는 동질감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을 서울 사람들을 가득 실은 지하철이 머리 위로 장난감처럼 지나가고, 여의도 홍대 한강 둔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저 멀리 아득한 항구 도시의 소박한 시민들 같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플레이 한 스페인 음악이 기내에 퍼집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여행과 음악은 역시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한강 위 공기의 질감이 순간 달라집니다. 모두가 각자의 여행을 떠올리며 슬며시 음악에 빠집니다. 






"재원아, 왜 이렇게 감상에 젖니."

"그러게요. 스페인 음악 트니까 정말 스페인 온 것 같아요. 여기가 누가 서울이라고 하겠어요. 정말 멋지네요."

"덕분에 호강한다. 정말. 이게 웬 호강이니."

"호강은 무슨요. 이렇게 다들 모여서 진짜 좋습니다. 시간이 빨리가는게 너무 아쉽네요."

"그러게. 하. 벌써 아쉽다." 

"그리고 서울 정말 예쁘다. 정말."



시간은 정말 빠르게 갔습니다. 여의도를 시작으로 강남 쪽을 찍고 다시 서강대교를 거쳐 돌아오는 1시간 남짓 코스. 마지막 10분은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한강에 빠뜨린 저마다의 감상을 최대한 즐겼습니다. 기어코 다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눈 앞에 들어오고, 우리를 태운 32피트 작은 요트는 서울 마리나로 서서히 다가섭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상상으로만 꿈꿨던 한강 요트를 제대로 즐겨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왠지 이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짧은 요트 체험은 그 위에서 만난 멤버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서울요트협동조합이 커다랗게 적혀있는 요트를 보고, 모임의 이름도 한강여행협동조합으로 정하자며 즉석에서 입을 맞춥니다. 순간적인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말이지 외국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동료들처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을 계속 즐기려 우리는 진짜 게스트 하우스로 자리를 옮겨 밤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트에 시동이 걸리고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모두가 동등해졌습니다. 여행자로 말이죠. 그리고 요트에서 내리자 모두는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국회의사당 역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마리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은 없겠죠. 물론 앞으로는 자격증에 도전해서 직접 여행 준비를 해보려고 합니다. 더 적극적인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요. 그리고 그 위에서 또 멋진 여행자들을 만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어질 도시 여행.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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