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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Oct 03. 2016

관점여행의 탄생

관점을 바꾸어보았다. 그리고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1년 3월. 

우연히 한 매거진 독자 코너에 참여하러 왔다가 '합정동'이란 곳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에디터님 이 동네 이름이 뭐예요?"

"합정동이란 곳이에요. 예쁘죠?"

"네, 정말 예뻐요. 이런 곳이 서울에 있다니.. 정말 몰랐어요."


당시 합정동은 고요한 분위기에 작은 카페와 디자인 상점들이 조심스레 스며들어와 정말 로맨틱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단 번에 그 동네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길로 얹혀살고 있는 누나와 매형 집을 나와서 합정동 한 구석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생활은 더 빡빡해졌지만 졸업을 앞두고 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언제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늘 불안한 나날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했습니다. 익숙하지 손 발을 이리저리 동동 굴리다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시간은 어느덧 11시. 그리고 진짜 제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카페 벚꽃사이





우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과 더 축축 쳐지는 몸을 이끌고 합정과 당인리에 숨겨진 카페며 바를 탐험했습니다. 당시에 합정동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뮤지션이나 글작가, 사진작가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12시에 가까운 시간에는 관광객들은 모두 돌아가고 진짜 동네 사람들만 남아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티스트만 남는 동네가 되었죠. 그곳에서 따뜻한 뱅쇼며 드립 커피를 마시는 한두 시간의 시간은 일상의 보물이었습니다. 피로 때문에 늘 반쯤 취해있었지만 시간 여행을 하듯 독특한 직업의 사람들과 사귀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즐기며 합정동의 밤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한 나날들은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업무 계약기간은 끝났고, 저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습니다. 덜컥 졸업도 다가왔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압박감에 저는 스스로 짐을 싸서 합정동을 떠났습니다. 집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로 옮겼던 거죠. 그러면서 강남에서 직장생활도 새로 시작했습니다. 돈을 한 번 모아보고 커리어도 쌓아보자는 굳은 의지가 있었죠. 그리도 좋아하던 동네를 스스로 떠나야 하니 얼마나 우울했을까요. 당시의 인생 목표는 돈을 모아 2년 안에 합정동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입버릇은 현실이 된다고 했나요? 저는 정말 2년 뒤 합정동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어느 날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회사를 탁 차고 나와 직장을 홍대에 한 음반 기획사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더욱 무리를 해서 평생소원이었던 투룸을 계약했습니다. 덕분에 은행 대출은 두둑해졌죠. 하지만 꿈에 그리던 동네로 이사를 왔고,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음악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행복할 일만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회사 일에 소진해버렸기 때문이죠. 일은 가끔 짜릿한 감동을 가져다주었지만 일상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금전 상태는 더 안 좋아졌습니다. 월급은 줄었는데, 집세는 늘었고, 갑자기 집안일이 생겨 모아둔 돈도 모두 쓰게 됐죠. 


울며 겨자먹기로 작은 방으로 룸 셰어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에 가진 것이라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출로 얻은 투룸밖에 없었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작업실로 쓰려고 했던 방은 지친 일상으로 창고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밑천이 그것 밖에 없으니 머리를 싸매다가 룸 셰어를 떠올리게 된거죠. 처음에는 에어비앤비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방을 되는대로 치우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어개 플렛폼에 올렸습니다. 너무나 작은 크기의 방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두 모퉁이만 겨우 나왔습니다. 집이 너무 낡고 볼품없었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외국인들이 홍대에서 음악 일을 하는 젊은이를 보기 위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그 국적도 다양했습니다. 언제 이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여행은 좋아하지만 회사에 묶여있던 저는 그들과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어 환장할 노릇이었죠. 그래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퇴근 후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노력했습니다. 그래 봐야 겨우 12시 근처에 동네 단골 카페를 가고, 가끔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홀짝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묘한 흥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만을 위한 밤 산책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어렵기만 하던 음악 일도 그때부터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인생 게스트가 저를 찾아옵니다. 바로 베를린에서 온 '루카스'였습니다. 의대생이었던 그는 인텔리 한 분위기에 크게 훨친한 훈남이었는데 늘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게스트들과 다른 분위기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는데, 예상을 깨고 그 친구가 먼저 제 방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는 대뜸 '라이프 셰어(Life Share)'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봅니다. 라이프 셰어는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 20개를 서로 주고받으며 개인의 가치관과 색깔 등을 공유하는 일종의 인간 탐구 대화법이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처음 만난 독일 남자와 남자끼리 술자리 4차 정도 가야지 할 법한 대화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원, 너의 중심이 되는 가치는 무엇이니?"


'.... 얘 지금 뭐라는 거지..'


"난 그게 가족이야. 어디에 있던 난 가족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는 것을 느껴. 그것은 나에게 아주 큰 에너지를 줘. 내가 가족력을 분석하고, 환자가 고독하게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고 가족의 품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돕는 Family Medicine(가정의학)을 공부하는 이유기도 해. 이번에 한국과 중국 등을 여행하는 것도 내가 믿고 있는 가치가 먼저 형성된 동양을 경험해보고자 함이야."


"네 요즘 가장 걱정거리는 뭐니? 난 독일에서 말이야..."



당연히 맨 정신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루카스의 진지함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속 이야기를 점점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곧 뜨거운 뜨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방문을 나서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루카스에게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에게 느낄 법한 편안하고도 끈끈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펼쳐졌습니다. 독일어 억양이 강한 루카스의 영어를 들으며 망원동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이 베를린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렇게 작은 펍은 베를린에도 많아. 꼭 저렇게 어두운 조명 아래 대충 꾸민 벽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그동안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헛것이 보인 걸까요? 고개를 몇 차례 저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눈 앞에 정말이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베를린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여기저기서 깊은 독일 맥주 향과 큰 소리로 떠드는 독일인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Mid night in Paris에 오웬 윌슨이 저와 같은 기분이었을까요. 저는 이 신비한 경험을 한 후 그 뒤로 오는 모든 게스트와 Life share를 하고, 동네로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은 피렌체 광장이 어느 날은 샹젤리제가 펼쳐졌죠. 멈출 수가 없었던 멋진 밤들이었습니다. 





영화 Mid night in Paris




그것은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험이었죠.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작은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홍보도 하지 않고 일기처럼 그냥 쭉 써 내려갔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저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었나 봅니다. 블로그는 조금씩 인기가 높아졌고, 운이 좋게 제 여행 이야기는 책이 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중국과 대만에도 수출되었죠. 또 이 이야기를 들고 에어비앤비 한국 호스트 대표로 에어비앤비 파리 오픈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바로 인생에서 야생성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평소에 하고 싶었던 크고 작은 여행들에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요트, 라디오 DJ, 칵테일, 요가 등 평소에는 그저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관점을 살짝 바꾸니 참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방황도 여행이 될 수 있고, 5년 넘게 살았던 동네도 해외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가 점점 인생을 바꾸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제가 변화되었던 지난 5년 간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절대 놀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든 놀기 위해 발버둥 쳤던 제 모든 노력을 집대성해서요. 혼자 알기에는 아까운 이야깃거리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것을 부르기 편하게 '관점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인 10년 차이신 과장님 차장님에게 갑자기 NB 클럽에 가서 인생을 즐기라고 하면 안 될 말이겠죠. 그래서 누구나 편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입문자 과정에서 여행가 과정까지 총 3단계로 나누어 단계별 2~3가지 방법 설명과 예시를 담으려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종의 덕후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일상이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꽤나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생활의 기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행복하려고 사는 거잖아요. 이 이야기를 전할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네요. 이 또한 즐거운 여행이되겠죠. 






 '관점여행' 브런치 연재는 매주 KBS 2Radio 'MUSIC PLUS'에서 오유경 아나운서님과 함께 소개될 예정입니다. 주말 아침 07:10 ~ 09:00 MUSIC PLUS으로도 한 번 놀러세요. 감합니다. 

http://smart.kbs.co.kr/radio/2r/mplus/progra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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