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바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여행 가고 싶어 죽겠는데 어디 갈 수 없는 직장생활을 하며 '관점여행'을 발견했습니다. 집 앞에 뱅쇼 한 잔을 마시러 가더라도 관점을 바꾸어서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다고 느끼고 즐기는 방법들입니다. 저는 이를 직장생활 5년 동안 조금씩 발전시켜왔는데요. 입문 과정부터 중급자, 여행자 과정까지 혼자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참 이건 의미 있는 작업이야.'라고 되새기며 끝까지 정리를 해보았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앞으로 꾸준히 연재하겠다는 다짐을 지난주에 브런치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무려 50분에 가까운 분들이 제 글을 공유해주셨어요. 별 홍보를 안 했기에 정말 놀랐습니다.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 정말 의지를 가지고 꼭 연재를 완성시켜보겠습니다.
관점 여행의 가장 첫 단계인 입문자 과정을 소개해드립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지만, 효과는 어떤 여행법보다 좋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요. 바로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 내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시는 분들입니다. 그럴 때 잠도 좋고 혼술도 좋지만 관점을 바꿔서 여행 한 번 다녀와 보세요. 일상에 분명한 쉼표가 생기고, 자기 자신을 찾는 기분이 드실 겁니다.
이 입문자 단계에서는 준비물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 편한 운동화. 이 두 가지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이니 꼭 챙겨주세요. 준비물을 확인하셨다면 우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세요. 직장에 다니든 자영업을 운영하시든 아침에 퇴근하시든 그런 것들은 무관합니다. 먼저 집으로 한 번 가세요. 꼭 집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편한 곳으로 가서 샤워를 하세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샤워'입니다. 꼭 샤워를 해야 합니다. 끝나지 않은 일, 상사의 꾸지람,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물이 피부에 닿고, 밖에서 묻어온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그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세요. 그리고 몸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평소보다 약간 천천히 길게 그 과정을 즐깁니다.
이것은 일상과 나를 떨어트려놓는 일종의 의식입니다. 여행의 시작은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가벼운 산책에서 조차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하와이를 간다고 하더라고 제대로 여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행을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시작이니까요. 꼭 한 번 바깥세상과 나를 떨어뜨리는 갭(Gap)을 가지세요. 이 작은 움직임은 큰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사실 갭(Gap) 타임은 외국인 게스트와 룸 셰어를 3년 간 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도 종종 브레이크(Break)를 줍니다. 예를 들어 저녁 7시에 집에서 만나 파티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제가 집에 6시 50분에 오면 게스트는 이미 메이크업에 드레스업까지 모두 하고 있습니다. 외출 준비가 완료된 것이죠. 하지만 게스트는 괜찮으면 20분만 외출 시간을 늦출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안될 것이 없죠. 그래서 그러자고 하면, 그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있다가 다시 평온한 얼굴로 방문을 나옵니다. 저는 왜 아까 준비가 다 되었는데, 안 나갔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주 심플한 답이 돌아옵니다. "미안. 아까는 내 상태가 조금 오버되었었어. 좀 쉬면서 정신을 나에게 돌려놓는 시간을 보냈어." 처음에는 이런 유럽 게스트가 좀 너무 새침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많은 유럽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보았고, 저도 점점 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참 좋더군요. 짧은 외출을 해도 온전히 나인 상태로 즐길 수가 있었고, 짧은 시간동안 높은 리프레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갭(Gap) 타임을 보내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 뜨거운 물 샤워였습니다.
샤워를 마치셨다면 몸을 잘 건조하여주세요. 아마 몸이 한 결 가벼워지신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다음은 다음 준비물이었던 운동화를 꺼내 신어보세요. 예쁜 운동화, 비싼 운동화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으세요. 낡고 구명이 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좋습니다. 관점여행 입문자 과정의 핵심은 바로 '나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기 때문이죠. 남의 시선이나 SNS 속 좋아요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내 발이 좋아하는 운동화를 신는 것은 그 여행에 첫출발입니다.
자 이제 관점을 한 번 바꿔볼 차례입니다. 신호흡 크게 하시고 간단한 현금과 휴대폰만 챙겨서 집 밖으로 나오세요. 마치 가벼운 여행을 다녀온다는 마음으로요.
이제 아마 익숙한 집 앞 풍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거기에 잠시만 서보세요. 그리고 공기를 한 번 깊게 마셔보세요. 그리고 온도의 질감을 느낍니다. 공기에는 미세한 시간의 향기가 있는데요. 코끝으로 들어오는 공기에서 지금이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인지를 한 번 느껴보세요. 평소에 잘 안 보는 하늘도 쳐다보세요. 평범한 동네의 하늘이 걸려있네요. 가로등도 보시고, 앞 건물도 한 번 무심하게 바라봐주세요. 처음에는 '아 이렇게 새겼었구나.' 하면서 조금의 관심만 가져주세요. 실제로 집 근처인데도 조금은 평소와 달라 보이실 겁니다. 자 그럼 몸도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는데, 좀 더 멀리 나가볼까요? 익숙한 출근길이건, 평소 다니지 않던 방향이건 상관없습니다. 그저 발이 이끄는 쪽으로 한 번 걸어가세요. 아마도 직감이 미세하게 어디 쪽을 가라고 알려줄 겁니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여행 같은 시간입니다. 여유를 가지세요. 그리고 평소보다 살짝 천천히 걸어보세요. 그러면서 주변을 걸으며 주변 사물들을 관찰해봅니다. 보도 블록을 밟아보니 생각보다 깨끗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항상 복잡한 줄만 알았는데 드문 드문 차가 없어진 작은 도로가 꽤나 예뻐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카페도 한 번 찬찬히 둘러보니, 그 앞에 화분이 참 건강하게 잘 자라 있습니다. 주변 조명과 함께 있으니 꽤나 분위기가 좋습니다.
지나가다 보니 항상 보던 미용실도 나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천천히 지나가 보니 미용실이라고 창문에 적힌 폰트가 괜스레 멋지게 느껴집니다. 그냥 그런 촌스런 미용실인 줄만 알았던 곳인데 이런 매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뭔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흔적도 느껴집니다. 많은 동네 할머님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어딘가 있긴 있는가 봅니다.
그냥 지나쳤던 가로수도 한 번 만져봅니다. 지난봄에는 벚꽃이는데 지금은 꽤나 듬직한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그 위로 어스름이 깔린 하늘은 이렇게 생겼나 싶을 정도로 높습니다. 가을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도로로 시선을 옮기니 아까보다 좀 더 어두워졌습니다. 그럴수록 점점 도로를 밝히는 간판이며 가로등, 크고 작은 전구들이 각자의 빛을 더 밝히고 있습니다. 따뜻한 기분이 들어 계속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따뜻하게 빛나는 전구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참 오래 잊고 살았네요.
걷다 보니 평소 가보고 싶었지만 지나치기만 했던 예쁜 가게들도 보일 것입니다. 잠시 멈춰보세요. 흥미는 가는 곳이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곳입니다. 시간도 없었지만 왠지 항상 피로에 찌들어있는 상태로는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게도 예쁘고 왠지 점원도 멋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여행을 왔는데 머 못할게 있을까요. 그래도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립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문을 열어봅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처음에 두려움은 단번에 사라집니다. 과연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고 예쁩니다. 저기서 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옵니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미소입니다. 그동안 괜한 겁을 냈던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제품들을 살며보고 가격도 물어봅니다. 마침 손님이 별로 없어서 용기를 내어 점원과 간단한 대화도 나눕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곳은 옆 옆 건물에 위치한 구두가게와 자매 브랜드였습니다. 누나 동생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맨날 지나가는 곳이지만 전혀 몰랐던 동네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왠지 모르게 좀 더 이 동네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야기 중에 마음에 꼭 드는 가방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장 결정하기에는 좀 벅찼지만, 다음 달에 돈이 좀 더 들어오다면 못 살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하는 아이쇼핑의 재미를 느꼈습니다. 다시 둘어봐도 가게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점원과도 조금 안면을 텄으니 다음에는 좀 더 편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밝은 표정으로 가게를 나옵니다. 점원과도 인사를 나눕니다.
거리에는 더 깊은 저녁이 깔려있었습니다. 가게에서의 훈훈한 분위기 덕분에 몸안에 조금 에너지가 생긴 것 같습니다. 출근 길에는 생기 없어 보이던 동네도 점점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좀 더 밝아진 기분으로 발걸음을 더 옮겨봅니다. 얼마간인가 천천히 걷고 있는데 인도에 자그마한 밴치가 두 개가 나타납니다. 달빛 밑에 가만히 놓여있는 밴치를 보고 있자니 한 번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영업을 위해 내어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우선 앉아보기로 합니다. 밴치에 앉아있으니 서있을 때와 달리 또 다른 모습의 거리가 펼쳐집니다. 작은 시야의 변화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거리 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즐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도 바라봅니다. 매일 직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일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기로운 척을 하고 사는 나지만, 이런 혼자만의 시간도 꽤나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맞은편에 작은 카페가 보입니다. 예전에 가보기는 했지만 안 간 지 6, 7개월은 된 것 같은 곳입니다. 그 안이 아늑해 보입니다. 책도 많이 꽂혀있는 것 같고 기억에 커피 맛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페 사장님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수다를 떨 친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밴치에 앉아 가만히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팀의 사람들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곧 주문을 받아한 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들이 부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문득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죠.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기에 한 번 카페에 혼자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커피 향이 확 느껴집니다. 곳곳에 세월의 흔적과 오래된 책도 보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손님이 그다지 많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럴 것도 그런 것이 오늘은 주말도 아니고, 이곳은 관광지도 아닙니다. 그저 집에서 걸어서 7, 8분 거리에 평범한 카페니 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퇴근 후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도 없고, 딱히 할 것도 없지만 조용히 카운터로 다가갔습니다. 혼자 작업을 하고 계시던 사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주문을 받습니다.
환절기도 다가오고 감기를 예방할 겸 유자차를 한 잔 시킵니다. 달콤하고 따뜻한 유자차와 가게에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이 꽤나 잘 어울립니다. 훌륭한 샤워 후 이렇게 편안한 의자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으니 한결 더 나른해집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속으로 침전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봅니다. 음악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내가 느껴집니다. 참 편안합니다.
그렇게 충분히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고 나니 뜨거웠던 유자차는 미지근하게 식어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꽤나 늦은 시간입니다.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은 것 같네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찻잔을 카운터로 가져다 드립니다. 문을 나서니 집에서 나올 때보다 머리가 훨씬 정돈된 기분이 듭니다. 참 이런 나만을 위한 시간이 오랜만이었습니다. 내가 저녁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참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몸은 더 나른해졌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합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안 익숙한 골목이 오늘따라 더 평온하게 다가옵니다. 공기도 가볍고, 집 앞 가로등은 오늘따라 정겹게 느껴집니다.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왠지 좀 가볍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따라오셨나요. 보신 것처럼 입문자 과정은 마치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며 동네를 거닐고 탐험하는 것입니다. 돈도 거의 들지 않고, 안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간단해서 쓸데없어 보이기까지하는 이 여행은 큰 여행 만큼이나 효과적입니다. 몇가지 효과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진정한 휴식입니다. 관점을 바꾸면서 일상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가졌기 많은 것들에서 벗어나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멍하니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일과 나', '가족과 나', '친구와 나'가 아닌 '나와 내'가 있는 시간 속에서 잊혀진 감각들이 살아나는 것이죠.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그것을 자주 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요?
오늘 저녁 한 번 동네를 여행하듯 걸어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발견할지 모릅니다.
'관점여행' 브런치 연재는 매주 KBS 2Radio 'MUSIC PLUS'에서 오유경 아나운서님과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07:10 ~ 09:00 MUSIC PLUS으로도 놀러 오세요. 감합니다.
http://smart.kbs.co.kr/radio/2r/mplus/program/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