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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Mar 04. 2017

친구를 만드는 여행

관점여행 여행자 과정_교감이 이끄는 여행


"여행에서 최고의 로망은 무엇일까요?"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에어비앤비 연 중 가장 큰 행사인 에어비앤비 오픈에 연사로 알랭드 보통이 등장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천 명의 슈퍼 호스트들과 여행계의 석학들은 그의 등장에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곧 관중들에게 의미 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행에서 최고의 로망은 무엇일까요?'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철학가의 질문에 왠지 진지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죠. 잠깐의 침묵이 흐립니다. 그때 알랭드 보통이 천천히 입을 뗍니다. 




강연 중인 알랭드 보통





"그것은 바로 현지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조용히 있던 수천 명의 관중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특히 부부 호스트들 중 여성분들 수십 명은 기립박수까지 치며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들은 부끄럽다고 빨리 앉으라고 아내의 옷깃을 당깁니다. 그것을 본 다른 관중들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네요. 알랭드 보통은 관중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줍니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 한 번 솔직해 지자'고 다시 한번 너스레를 떱니다. 알렝드 보통은 에어비앤비의 가치를 로컬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 빗대어 표현을 한 것이었죠. 





교감이 이끄는 여행 


이어지는 관점여행 여행자 과정도 알렝드 보통의 질문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어떤 곳에 친한 친구가 생기고, 단골 가게가 생기고, 좋아하는 거리가 생겼을 때 그 지역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 도시와 사랑에 빠진 여행객들은 몇 번이고 같은 지역을 다시 방문하기도 합니다. 여행지에 좋아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반겨줄 단골집이 있는데 안 갈 이유가 없는 거죠.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관광만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추억을 가지게 되며, 이는 여행의 질감을 깊어지게 만듭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린은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를 타고 그 안에서 우연히 미국인 제시를 만납니다. 짧은 대화 후 제시는 셀린에게 비엔나에서 같이 하루를 보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합니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둘은 비엔나의 곳곳을 걸으며 대화를 지속합니다. 마치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다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진 둘은 9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죠. 


영화 속 셀린와 제시처럼 여행지에서 우연히 친해진 여행자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사이의 교감으로 다시 새로운 감정과 발견에 눈뜨게 되는 것. 사실 여행에서의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여행에서 이런 교감이 우선시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멜로 영화의 주요 소재인 이런 여행지에서의 교감과 새로운 모험을 꿈꿉니다. 수많은 소설과 여행에서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사랑을 단골 소재로 사용하는 대에는 이유가 있죠. 

  



영화 Before sunrise 셀린과 제시




여행지에서 교감을 부르는 간단한 방법


하지만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모든 여행에서 이러한 교감을 만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아무리 여행해도 쓸쓸하기만 하다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새로운 교감을 위해서 멀리 떠나는 모험에는 지쳤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디 멀리 가야만 이런 교감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옆동네로 여행 가기처럼 가까운 관점여행에서도 충분히 충만한 교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취미를 배우면서도 커다란 세계와 교감할 수 있죠. 하지만 마음 가짐이 조금 달라야 합니다. 여기에 여행지에서 교감을 부르는 몇 가지 간단한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혼자 떠나기'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떠났을 때 좀 더 외부의 다양한 방향으로 시선을 둘 수 있습니다. 여행에 동반자가 있다면 상대의 선호를 인식하고, 그와 나의 관계에 집중하는 동안 많은 교감의 기회들이 지나가버립니다. 자기 자신만을 데리고 여행할 때 새로운 교감의 상황을 좀 더 민감하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놓여있는 상황에 따라서 혼자 떠나기가 굉장히 어려운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2시간 만이라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내어보세요.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옆동네로 혼자 걸어가서 새로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두 번째는 '작은 선물 준비하기'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교감의 상대에게 줄 작은 선물을 미리 준비해보세요. 큰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앞으로 만날 대상, 상황에 대비해 미리 선물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큰 인연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무의식이 우리를 대신해 누가 이 선물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안테나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상대가 나타났을 때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고 선물을 한 번 건네 보세요. 인연은 감동을 타고 새로운 여행을 안내할 것입니다. 게다가 선물을 주면 줄수록 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선물의 대상을 찾는 것은 너무 걱정 마세요. 딱 보는 순간 한 번에 그 주인공을 알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게는 드물게도 선물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한 사건이 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파리를 여행하다가 큰 테러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5분 거리의 바타클랑 극장에서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초유의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집 밖에 조금도 나갈 수 없었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밤새 공포 속에서 사이렌 소리만 듣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사건 발생지 인근으로 다가갔습니다. 이미 많은 히피들이 모여 각각의 방법으로 추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전통부채를 추모의 의미로 놓고 기도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총 5 군대의 테러 발생지를 돌며 같은 선물을 남기고 왔죠.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피해자들이었기에 더 깊이 교감했습니다. 당시 '마음의 안정'이란 뜻의 한자가 새겨져 있던 전통 부채는 존재만으로도 큰 안도감을 주었죠. 그리고는 충격으로 끝날 뻔한 여행을 다행히 계속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여행에서도 빛나는 인연들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고민 보여주기'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가장 빨리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은 고민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고민을 보여줄지 의아할 수 있는데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최근에 하고 있는 진솔한 고민을 꺼내어 놓으세요. 초면이기 때문에, 서로 겹치는 인연이 없기에 더 편할 수 있습니다. 시작을 할 수만 있다면 고민 보여주기의 힘은 상당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대부분 비슷하기 때에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듣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신의 삶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대의 고민에 공감하게 되고, 격려를 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교감을 나누게 됩니다. 더불어 대화가 이어질수록 일방적 고민 보여주기는 어느새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소통으로 발전되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토크쇼의 진행자와 게스트는 몇 시간의 토크 이후 마치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서로의 깊이 있는 속마음을 나눴기 때문이죠. 고민 보여주기는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내면의 악수 같은 역할을 합니다. 



네 번째는 '계획 많이 하지 않기'입니다. 때때로 빡빡한 여행 계획은 나를 계속 다음 일정으로 몰아세우는 채찍 역할을 합니다. 지금이 즐거운데, 느낌적으로 왜인지 이곳에서 좀 더 있고 싶은데 일정표는 그러면 안된다고 내 손을 잡아끌죠. 여러 여행지를 볼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감이 이끄는 여행에서는 일정은 좀 느슨하게 잡기를 권유합니다. 내 의식이 즐거움을 쫓아다닐 수 있도록, 갑자기 벌어진 인연과 사건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숨구멍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점심을 먹다가 친해진 친구들과 훌쩍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이죠. 


다섯 번째는 '사장님을 공략하기'입니다. 사장님들은 이미 다양한 로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교감이 퍼져나가는 효과가 높습니다. 간단하게는 숙소, 인근의 식당이나 바의 사장님과 앞선 네 가지의 방법들을 활용해서 교감을 나눠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큰 인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남양주에서 관점여행을 즐기다 숙소의 주인에게 제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음악일을 계속하고는 싶은데 부업과 회사 생활을 함께 지속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프리랜서로 음악일을 할 수는 없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는 시기예요.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진지하게 제 고민을 듣던 숙소 아주머니는 꽤 적극적인 성격이셨습니다. 옆 집 사는 누구 엄마도 음악 일을 했던 것 같다며 수화기를 듭니다. 그렇게 갑자기 소개받은 옆 집에 사는 누구 엄마는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내놓라 하는 프리랜서 홍보 전문가셨죠. 





가평 히피를 만나다


친구를 만나는 여행의 좋은 예를 소개합니다. 2016년 가을, 다양한 옆 동네 여행을 실험하며 관점여행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였습니다. 그때도 어느 날처럼 전혀 계획을 하고 있지 않다가 불현듯 좀 더 멀리 여행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서울을 떠나보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으로요. 그래서 갑자기 가평으로 장소를 정하게 됐습니다. 일을 마치기 2시간 전에 급히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지킬 것은 지켰습니다. 자기소개를 충분히 했고, 어떤 고민과 기대를 안고 가평을 찾는지도 자세히 썼습니다. 


'요즘 일은 많은데 또 따로 하고 싶은 것은 많아 욕심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가 많습니다.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하루 쉬며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하는 일은 음악 일인데, 여행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울에서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멋진 숙소를 운영하는 대표님과 대화도 나눠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제가 기고하고 있는 매거진 '아트레블'을 선물로 챙겼습니다.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곳이었죠. 그런데 제 소개글을 아주 잘 봐주셨는지, 대표님은 만나고 싶었다며 저를 숙소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선물로 준 매거진 아트레블을 받고 즐거워하는 숙소 주인장



급한 예약을 받아주어서 감사하다며 준비한 선물인 아트레블 매거진을 건넸습니다. 너무 기쁘게 선물은 받은 대표님은 여행작가는 처음 본다며 괜찮으면 자신이 운영하는 작은 연습실에서 내일 차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물어봅니다. 빡빡한 일정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제안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평일에 여행 올 수 있는 국내 여행의 장점을 살려 조용한 숙소를 편안하게 즐기며 긴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별 기대하지 않고 대표님의 연습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경기도에서 지정한 3개의 예술 단체가 한 곳에 모여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커다란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가지각색의 매력적인 사람들과 음악.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가득 모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죠. 


대표님의 친구로 초대된 것에서 그런 것인지 원래가 모두 열려있는 사람들인지 그들은 타지에서 온 저를 너무도 스스럼없이 대합니다. 심지어는 같이 먹으려고 한 밥이 많다며 그들의 식사 자리에도 숟가락 하나를 얹히게 됩니다. 직접 빚은 만두에 김치며 태국식 비빔밥을 먹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우리는 수다를 떱니다. 음식도 맛있고, 함께 나눈 이야기는 더 맛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남미 음악과 춤을 추는 팀이 있었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아르헨티나 여행기를 정말 넋을 놓고 들었습니다. 


식사 이후로는 넓고 따뜻한 거실에 모두가 모였습니다. 밥을 함께 먹고 나니 왠지 저도 이들과 가족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내가 가평에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객이란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그 거실에 모여 시시한 농담을 하고, 책도 보고 공연에서 쓸 인형도 만들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자유로운 시간이었죠. 그들은 너무나 빛나 보였습니다. 가평에 이렇게 멋진 예술가들의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가평 로컬인 숙소 사장님과의 교감이 아니었으면 결코 들여다볼 수 없었던 세상이었죠. 제가 떠날 때 그들은 이제 친구라며 남이섬 관람표를 선물로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평을 찾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가평이란 가깝고도 낯선 곳에 좋아하는 공간과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창 넘어 은행나무가 멋있던 방
별장 컨셉으로 파벽돌 장식이 멋있었던 거실
재미롱 식구들이 만들어준 멋진 밥상
문화공간 재미롱 @가평




여행을 떠나왔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친구를 만드는 여행에는 약간의 노력과 새로운 인연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꽤나 적극적인 타입의 여행법이죠. 하지만 이미 나를 데리고 가는 여행과 옆동네로 여행 가기를 완수한 여행자라면 이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여행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먼저 손을 뻗고 미소를 지으세요. 그럼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멋진 여행이 일상 근처에서 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은 교감이 이끄는 대로 그저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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