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자유학교'
Intro
지난 2018년 12월 25일에서 2019년 1월 1일 8일 동안
'자유학교'에 다녀왔어.
가기 전에 누구도 자유학교가 어떤 곳이다 똑 부러지게 말해주는 이가 없었어.
그런데 내가 직접 다녀와서 사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더라.
누군가는 '버닝 맨 페스티벌이 내게 현재를 살게 해 주었다.'
누군가는 '뜨거웠던 세계 여행이 내 삶에 전환이었다' 말 하지만
내겐 '자유학교'가 그랬어.
소꿉장난 속 우리만의 성을 세울 수 있었던 순수가 있었고,
꿈속에서 헤어졌었던 친구를 만난 듯했고,
내 발이 땅에서 떨어져 둥둥 떠있는 것처럼
순간순간이 믿기 어려운 동화 같았어.
하지만 정리가 안된다고 더 이상 미뤘다가는
어젯밤 꿨던 꿈처럼 금방 사라질 것 같아 여기 적어둬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
그 느낌이 오래 내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어.
자유학교의 첫날이 기억나.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낯선 공기에 대한 묘한 긴장감.
마치 기숙학원의 첫 기숙사를 배정받는 기분이었지.
난 자유학교에서 소셜(친목관계)을 전혀 원하지 않았어.
오히려 정제됨을 원했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던 2018년이 이 속도대로라면
한 해를 돌아볼 기회조차 없이 그대로 2019년으로 꽂혀버릴 것 같잖아?
그래서 나를 어떤 틀 안에 두고 쉬게 하고 싶었어.
첫날은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누구보다 일찍 잠들었던 기억이 나.
다음 날부터 만나게 될 엄청난 것들은 상상도 못 하고 말이야
* 자유학교 ㅣ 한국형 덴마크 인생학교
그런데 첫 만남에서 퍼실(퍼실리테이터)들이 보여준
단단하고 안정적인 미소는 잊을 수 없어
내게 조금 남아있던 경계심을
모두 녹여버리고 남을 아름다운 것이었어
난 네 말을 경청하고 있어
어떤 마음도 다 따뜻하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
퍼실이 나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가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만 보아도 알 수 있었어.
'아.. 내가 이곳에 올 가치가 있었구나'
'저 미소만 매일 보아도 8일의 의미가 있겠구나.'
실제로 퍼실들이 데워놓은 온기가 우리 모두가
너무도 부드럽게 자유학교에 랜딩 할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온기는 7박 8일 내내 계속되었어.
그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사회의 겉옷을 벗고,
순수하고 어린 나로 돌아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어.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난 1인 가구로 15년을 살았어.
그런 내게 없던 거실이 생겼어.
아침을 먹고 나오면 우르르 가족들이 몰려나와
하나 둘 양지바른 마루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시간을 즐겼어.
때로는 포근한 침묵이,
때로는 이야기 물결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눈물이 뺨에 흐린 곤 했어.
언젠가부터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찾듯
내가 커먼 룸을 찾고 있었어.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은 자유학교의 심장이었어.
이곳에서는 넘실 넘실 내 본모습도 살아났었어.
덩실덩실 어느새 입꼬리는 올라가 있더라
사회에서의 쉬크함(?)
그런 건 냅다 갖다 버렸지.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가 바다처럼 일렁이던 이곳에서
우리는 바다처럼 누워
서로의 얼굴을,
미소를 원 없이 바라봤어.
커먼 룸 아름다운 선실이었어.
일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멋진 파도였지.
우리에게는 거실이 필요해.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자유학교에 온 이유 중 절반은 이 밥이었어.
1인 기업가로 살며, 1인 가구로 살며,
서울에 온갖 살림을 떠안고 혼자 부유하는 내게
하루 꼬박꼬박 삼시세끼는 저 멀리 보이는 신기루 같은 거였어.
쫄쫄 굶고 정신없이 살다가 오후 5시쯤 늦은 저녁을 먹고,
심야에 야식을 먹는 생활의 반복이었지.
그렇게 막 다뤘던 내 식습관이 내 몸에게는 폭력이었더라.
그런데 여기 자유학교는 매 끼니 아주 따뜻하고 맛있고 성정스러운 밥이 나와.
게다가 귀여운 자유인들이 씻지도 않고
귀여운 몰골로 쪼르륵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광경이었어.
그 속에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면서 먹던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어.
그렇게 매 끼니 챙겨 먹으니 처음엔 배가 무르고 나중엔 마음이 부르더라.
그래서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급하게 먹었던 밥이
처음으로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갔어.
밥 같은 밥이.
그 옆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갑더라.
어. 이상하다 이상해..
이 많은 햇살들이 어디서 왔지?
이상해.
정말 이상한 일이야.
이곳엔 왜 이리 햇살이 많을까?
분명 강화도에서나 서울에서나 같은 사계절, 같은 24시간일 텐데 ,
자유학교에는 유독 햇살이 많았어.
저 사람의 발 끝에도,
이 사람의 등 뒤에도,
우리가 곳 이야기로 뒤덮을 아침의 커먼 룸에도,
언제라도 햇빛은 우리를 슬며시 반겨주는 친구처럼
늘 곁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어.
도시에 있을 땐 정신없이 컴퓨터만 보느라,
낮에는 똑같은 빌딩 속에서 벽만 보고 사느라,
이 아름다운 햇빛을 못 봤던 걸까?
원래 있던 거였는데,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못 본 거였다면 너무 슬픈 일이야.
햇살은 어느 순간 다가와있는 고양이처럼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존재였어.
'이곳에 와주어서 반가워~'
마치 우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익살맞은 집사 같았지.
과연 밖에서 '익살'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봤을까?
난 이 단어를 별로 쓸 일이 없었어.
그 누구도 나를 익살스럽게 보여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어.
그런데 그 귀한 익살이 자유학교에서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어.
만약 이런 사람들을 밖에 봤다면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들이었어.
'그런 표정을 해주어서 고마워.'
'너무 재미있다.'
'나도 저런 멋진 표정을 짓고 싶어.'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낼 수 없었지만,
8일이 지나가는 가운데 나도 가끔은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내 안에 꽁꽁 숨겨둔 익살을 꺼낼 수 있게 되었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떠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상대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바로 바라봄이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 이전엔 몰랐어.
자유학교에서 바라봄을 알게 된 후로
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 기분이야.
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 기분이야.
눈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마주하고,
그의 내면의 생김새를 이해하고,
다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정말 황홀했어.
상대가 되고 나서야
완전한 내가 될 수 있었어.
바라봄을 통해 상대가 되어보고,
그를 통해 다시 나를 바라보고,
그러고 나서 다시 나로 돌아왔을 때.
그때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옮길 수 있을까.
그의 눈을 통해 난 온전한 내가 되는 기분이었어.
그러니 가끔 너를 바라봄으로 바라볼래.
그때 손끝까지 황홀했던 기분을 잊지 않을래.
네 눈 안에 너를
그 안에 나를 바라볼래
자유학교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만지고 잡는 행동이 무척 자연스러웠어.
한번 무너진 경계 속에서
우리는 용감하게 상대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온기를 나눴지.
그 순간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
사회에서는 왜 우리는 잠깐 스치는 것에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했잖아.
자유학교에서는 서로를 맞잡고, 어루만지는데
어쩜 그리 자연스러웠을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아주던 그 모습은
어떤 락밴드의 울먹이는 마지막 곡만큼이나 감동적이었어.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자유학요에서는 매일 아침 강당에 모여 큰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불러.
이 부분은 내가 자유학교를 신청하며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어.
성인이 되어 다 함께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떤 분위기일지 상상이 안되잖아.
얼싸하게 취한 만큼 싸구려 조명이 있는 곳에서의
친구, 동료들과의 노래가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낮에 생목으로 노래라니?
그런데 처음에 어색하던 함께 부르는 노래가
점점 내 안에 무언가를 깨웠어.
그리고 우리가 현재에 이곳에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 줬어.
나중에는 우리 모두가
그 순간을 달콤하게 즐기고 있더라?
마지막 날에는 모두 손을 잡고 펑펑 울면서 노래를 함께 부를 정도였지.
꼭 아침 열기가 아니더라도
자유학교 8일간은 정말 어디서 곤 끊이지 않고 노래가 흘러나왔어.
매일매일 그 노래들이 쌓일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웃음 속에 연결되고 있었어.
노래와 춤.
우리가 너무 오래 잊었던 것 같아.
내 마음껏 목놓아 노래하고,
누가 볼까? 내가 이상할까? 생각하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곳.
참 신기한 곳이었어.
이 노래들이 여행이 끝난 지금 내 곁에도 머물러 준다면,
내 삶은 정말 많이 바뀔 것 같아.
그동안 우리는 많이도 쌓였었나 봐
그동안 우리는 많이 쌓여있었나 봐
스스로가 마음의 근육을 풀어버리니
스르륵 안 좋은 기운이 눈을 통해 나와버렸어
그리고는 상대가 주는 따뜻함 속에
나도 모르게 잠보다 더 깊은 잠에 들었어.
그렇게 편히 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에도
너무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다..
느끼고 느꼈어.
그리곤 눈을 떴을 때.
내 안에 어떤 것들이
해독되었어.
아니..
어른들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우리는 모두 아이가 되었어.
좀 더러워지면 어때.
내가 지금 즐겁잖아.
8일 동안 아마 내가 볼 20년 치의 눈물은 본 것 같아.
우린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울었어.
운다는 게 큰 의미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알아줘
나를 위해 울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며 울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울고,
이 시간이 행복해서 울고,
그 사람이 안타까워서 울고,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울고,
우리는 정말 원 없이 울었어.
누군가의 감정의 끝을 본다는 것
깨끗한 눈물방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전에는 그게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남의 눈물을 볼 때는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거든.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는 거.
그게 얼마나 아름답다는 거
이 모든 것들을 다 거치니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아?
바로 변신이 시작돼.
처음 뻣뻣한 얼굴로 만났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나 같이 다들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들어내는 옷차림과 몸동작으로 변신했어.
자유학교가 전환을 위한 실험실이라더니
그 실험이 성공했나 봐!
Re-born
전환에 성공한 우리 카프카들은
마음껏 숨겨둔 날개를 펼쳤어.
이 에너지로 한번 날아볼까,
아니면 다시 여행을 떠나볼까,
나를 찾은 이 기분이 너무 상큼했어.
마침 시간도 딱 2019년 1월 1일이었지.
자유학교에서 내가 썼던 닉네임처럼
일월.
일월이 시작되었어.
자유학교에서 만들어갔던 이 모든 것들 너무 이상적이고
만드는 사람에게나 참여한 사람에게나 너무 소중한 기억이라
다들 말하는데 조심스러운가봐.
그래서 자유학교에 대한 기록이 참 없어.
그런데 이해는 되.
너무 소중한 건 남에게 말하기 어렵잖아.
나 역시 그래.
그래도 난 여행작가잖아.
내가 여행한 멋진 세상을 또 이렇게 알리고 싶었어.
또 작은 재주라고 글쓰는 걸로라도 운영진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기도 했고.
두서없는 글이었어.
또 자유학교에서 썼던 수평어로 전달해서
아마 어색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하지만 이 기억들은 진짜야
내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혹시 이 글을 읽는 너에게도 자유학교가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마
삶을 위한 멋진 전환이 될 거야.
* 글쓴이_최재원
낯선 이들과 깊은 인생의 대화를 나누는 대화형 리트릿 프로그램 '라이프쉐어'를 운영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 근처에서 휴식하고 여행을 좋아합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를 썼습니다.
자유학교 2기에 참여한 후 자발적으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