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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Jan 26. 2019

자유학교 7박 8일의 후기 '내게 없던 시간'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자유학교'

Intro


지난 2018년 12월 25일에서 2019년 1월 1일 8일 동안

'자유학교'에 다녀왔어. 


가기 전에 누구도 자유학교가 어떤 곳이다 똑 부러지게 말해주는 이가 없었어. 

그런데 내가 직접 다녀와서 사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더라. 


누군가는 '버닝 맨 페스티벌이 내게 현재를 살게 해 주었다.'  

누군가는 '뜨거웠던 세계 여행이 내 삶에 전환이었다' 말 하지만

내겐 '자유학교'가 그랬어. 


소꿉장난 속 우리만의 성을 세울 수 있었던 순수가 있었고, 

꿈속에서 헤어졌었던 친구를 만난 듯했고, 

내 발이 땅에서 떨어져 둥둥 떠있는 것처럼 

순간순간이 믿기 어려운 동화 같았어. 


하지만 정리가 안된다고 더 이상 미뤘다가는

어젯밤 꿨던 꿈처럼 금방 사라질 것 같아 여기 적어둬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 

그 느낌이 오래 내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어. 














자유학교에서 만났던 낯선 12가지


자유학교의 첫날이 기억나.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낯선 공기에 대한 묘한 긴장감. 

마치 기숙학원의 첫 기숙사를 배정받는 기분이었지.


난 자유학교에서 소셜(친목관계)을 전혀 원하지 않았어. 

오히려 정제됨을 원했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던 2018년이 이 속도대로라면

한 해를 돌아볼 기회조차 없이 그대로 2019년으로 꽂혀버릴 것 같잖아?

그래서 나를 어떤 틀 안에 두고 쉬게 하고 싶었어. 


첫날은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누구보다 일찍 잠들었던 기억이 나.

다음 날부터 만나게 될 엄청난 것들은 상상도 못 하고 말이야 


* 자유학교 ㅣ 한국형 덴마크 인생학교



1. 미소





그런데 첫 만남에서 퍼실(퍼실리테이터)들이 보여준

단단하고 안정적인 미소는 잊을 수 없어


내게 조금 남아있던 경계심을

모두 녹여버리고 남을 아름다운 것이었어



난 네 말을 경청하고 있어
어떤 마음도 다 따뜻하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





퍼실이 나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가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만 보아도 알 수 있었어. 


'아.. 내가 이곳에 올 가치가 있었구나'

'저 미소만 매일 보아도 8일의 의미가 있겠구나.'


실제로 퍼실들이 데워놓은 온기가 우리 모두가 

너무도 부드럽게 자유학교에 랜딩 할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온기는 7박 8일 내내 계속되었어. 


그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사회의 겉옷을 벗고, 

순수하고 어린 나로 돌아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어.

믿을 수 없는 일이야.  





2. 커먼 룸(공용 거실)


늘 사람들로 붐볐던 커먼 룸. 아침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어





난 1인 가구로 15년을 살았어. 

그런 내게 없던 거실이 생겼어.

아침을 먹고 나오면 우르르 가족들이 몰려나와 

하나 둘 양지바른 마루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시간을 즐겼어. 


때로는 포근한 침묵이, 

때로는 이야기 물결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눈물이 뺨에 흐린 곤 했어. 


언젠가부터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찾듯

내가 커먼 룸을 찾고 있었어.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은 자유학교의 심장이었어. 


이곳에서는 넘실 넘실 내 본모습도 살아났었어.

덩실덩실 어느새 입꼬리는 올라가 있더라 

사회에서의 쉬크함(?)

그런 건 냅다 갖다 버렸지.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가 바다처럼 일렁이던 이곳에서

우리는 바다처럼 누워

서로의 얼굴을,

미소를 원 없이 바라봤어. 


커먼 룸 아름다운 선실이었어.

일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멋진 파도였지. 


 

우리에게는 거실이 필요해. 







3. 밥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자유학교에 온 이유 중 절반은 이 밥이었어. 


1인 기업가로 살며, 1인 가구로 살며, 

서울에 온갖 살림을 떠안고 혼자 부유하는 내게 

하루 꼬박꼬박 삼시세끼는 저 멀리 보이는 신기루 같은 거였어. 


쫄쫄 굶고 정신없이 살다가 오후 5시쯤 늦은 저녁을 먹고, 

심야에 야식을 먹는 생활의 반복이었지. 

그렇게 막 다뤘던 내 식습관이 내 몸에게는 폭력이었더라. 


그런데 여기 자유학교는 매 끼니 아주 따뜻하고 맛있고 성정스러운 밥이 나와. 

게다가 귀여운 자유인들이 씻지도 않고

귀여운 몰골로 쪼르륵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광경이었어.










그 속에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면서 먹던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어.

그렇게 매 끼니 챙겨 먹으니 처음엔 배가 무르고 나중엔 마음이 부르더라. 


그래서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급하게 먹었던 밥이

처음으로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갔어. 


밥 같은 밥이. 

그 옆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갑더라. 








4. 햇살





어. 이상하다 이상해..
이 많은 햇살들이 어디서 왔지?










이상해.

정말 이상한 일이야. 

이곳엔 왜 이리 햇살이 많을까?


분명 강화도에서나 서울에서나 같은 사계절, 같은 24시간일 텐데 ,

자유학교에는 유독 햇살이 많았어. 


저 사람의 발 끝에도, 

이 사람의 등 뒤에도, 

우리가 곳 이야기로 뒤덮을 아침의 커먼 룸에도, 


언제라도 햇빛은 우리를 슬며시 반겨주는 친구처럼

늘 곁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어. 


도시에 있을 땐 정신없이 컴퓨터만 보느라,

낮에는 똑같은 빌딩 속에서 벽만 보고 사느라, 

이 아름다운 햇빛을 못 봤던 걸까?









원래 있던 거였는데,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못 본 거였다면 너무 슬픈 일이야. 


햇살은 어느 순간 다가와있는 고양이처럼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존재였어. 


'이곳에 와주어서 반가워~'


마치 우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익살맞은 집사 같았지. 




5. 익살




과연 밖에서 '익살'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봤을까?

난 이 단어를 별로 쓸 일이 없었어. 


그 누구도 나를 익살스럽게 보여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어. 

그런데 그 귀한 익살이 자유학교에서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어. 


만약 이런 사람들을 밖에 봤다면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들이었어. 


'그런 표정을 해주어서 고마워.' 

'너무 재미있다.' 

'나도 저런 멋진 표정을 짓고 싶어.'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낼 수 없었지만,

8일이 지나가는 가운데 나도 가끔은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내 안에 꽁꽁 숨겨둔 익살을 꺼낼 수 있게 되었어. 




6. 바라봄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떠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상대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바로 바라봄이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 이전엔 몰랐어. 

자유학교에서 바라봄을 알게 된 후로

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 기분이야.



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 기분이야. 



눈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마주하고, 

그의 내면의 생김새를 이해하고,

다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정말 황홀했어. 


상대가 되고 나서야
완전한 내가 될 수 있었어. 


바라봄을 통해 상대가 되어보고, 

그를 통해 다시 나를 바라보고, 

그러고 나서 다시 나로 돌아왔을 때.  

그때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옮길 수 있을까. 


그의 눈을 통해 난 온전한 내가 되는 기분이었어.









그러니 가끔 너를 바라봄으로 바라볼래. 

그때 손끝까지 황홀했던 기분을 잊지 않을래. 


네 눈 안에 너를 

그 안에 나를 바라볼래 






7. 손길






자유학교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만지고 잡는 행동이 무척 자연스러웠어. 


한번 무너진 경계 속에서

우리는 용감하게 상대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온기를 나눴지. 


그 순간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 

사회에서는 왜 우리는 잠깐 스치는 것에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했잖아. 


자유학교에서는 서로를 맞잡고, 어루만지는데 

어쩜 그리 자연스러웠을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아주던 그 모습은

어떤 락밴드의 울먹이는 마지막 곡만큼이나 감동적이었어. 





8. 노래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자유학요에서는 매일 아침 강당에 모여 큰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불러. 


이 부분은 내가 자유학교를 신청하며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어. 

성인이 되어 다 함께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떤 분위기일지 상상이 안되잖아. 

 

얼싸하게 취한 만큼 싸구려 조명이 있는 곳에서의 

친구, 동료들과의 노래가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낮에 생목으로 노래라니?


그런데 처음에 어색하던 함께 부르는 노래가

점점 내 안에 무언가를 깨웠어. 

그리고 우리가 현재에 이곳에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 줬어. 


나중에는 우리 모두가 

그 순간을 달콤하게 즐기고 있더라?

마지막 날에는 모두 손을 잡고 펑펑 울면서 노래를 함께 부를 정도였지. 










꼭 아침 열기가 아니더라도

자유학교 8일간은 정말 어디서 곤 끊이지 않고 노래가 흘러나왔어. 

매일매일 그 노래들이 쌓일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웃음 속에 연결되고 있었어. 


노래와 춤. 


우리가 너무 오래 잊었던 것 같아. 

내 마음껏 목놓아 노래하고, 

누가 볼까? 내가 이상할까? 생각하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곳. 

참 신기한 곳이었어. 


이 노래들이 여행이 끝난 지금 내 곁에도 머물러 준다면, 

내 삶은 정말 많이 바뀔 것 같아. 




9. 해독







그동안 우리는 많이도 쌓였었나 봐



그동안 우리는 많이 쌓여있었나 봐

스스로가 마음의 근육을 풀어버리니

스르륵 안 좋은 기운이 눈을 통해 나와버렸어


그리고는 상대가 주는 따뜻함 속에

나도 모르게 잠보다 더 깊은 잠에 들었어. 


그렇게 편히 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에도 

너무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다..

느끼고 느꼈어.











그리곤 눈을 떴을 때. 


내 안에 어떤 것들이


해독되었어.







10. 동심








아니..

어른들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우리는 모두 아이가 되었어.










좀 더러워지면 어때.

내가 지금 즐겁잖아. 




11. 눈물


8일 동안 아마 내가 볼 20년 치의 눈물은 본 것 같아. 

우린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울었어. 


운다는 게 큰 의미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알아줘


나를 위해 울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며 울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울고, 

이 시간이 행복해서 울고, 

그 사람이 안타까워서 울고,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울고,


우리는 정말 원 없이 울었어. 

누군가의 감정의 끝을 본다는 것 

깨끗한 눈물방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전에는 그게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남의 눈물을 볼 때는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거든.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는 거. 

그게 얼마나 아름답다는 거












12. 변신(전환)








이 모든 것들을 다 거치니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아?


바로 변신이 시작돼. 


처음 뻣뻣한 얼굴로 만났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나 같이 다들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들어내는 옷차림과 몸동작으로 변신했어.


자유학교가 전환을 위한 실험실이라더니

그 실험이 성공했나 봐! 










Re-born


전환에 성공한 우리 카프카들은 

마음껏 숨겨둔 날개를 펼쳤어. 


이 에너지로 한번 날아볼까,

아니면 다시 여행을 떠나볼까,


나를 찾은 이 기분이 너무 상큼했어. 

마침 시간도 딱 2019년 1월 1일이었지. 


자유학교에서 내가 썼던 닉네임처럼 

일월. 

일월이 시작되었어. 







Epilogue


자유학교가 끝난 이후에도 우린 이렇게 종종 만나요. 같이 밥도 먹고, 수평어도 계속 쓰고, 마치 가족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자유학교에서 만들어갔던 이 모든 것들 너무 이상적이고

만드는 사람에게나 참여한 사람에게나 너무 소중한 기억이라

다들 말하는데 조심스러운가봐. 


그래서 자유학교에 대한 기록이 참 없어. 


그런데 이해는 되.   

너무 소중한 건 남에게 말하기 어렵잖아.

나 역시 그래. 


그래도 난 여행작가잖아

내가 여행한 멋진 세상을 또 이렇게 알리고 싶었어. 


또 작은 재주라고 글쓰는 걸로라도 운영진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기도 했고. 


두서없는 글이었어.

또 자유학교에서 썼던 수평어로 전달해서

아마 어색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하지만 이 기억들은 진짜야

내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혹시 이 글을 읽는 너에게도 자유학교가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마 

삶을 위한 멋진 전환이 될 거야. 






사진은 자유학교에서 안데르센이 찍어준 강화도의 노을과 함께


* 글쓴이_최재원 

낯선 이들과 깊은 인생의 대화를 나누는 대화형 리트릿 프로그램 '라이프쉐어'를 운영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 근처에서 휴식하고 여행을 좋아합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를 썼습니다.  

자유학교 2기에 참여한 후 자발적으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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