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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Feb 17. 2019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예찬

정리정돈, 하고 살아야 할 때가 왔나보다.

빨래를 안하면 입고 나갈 옷이 없고 설거지를 안하면 다음 식사를 할 그릇이 없지만, 정리정돈은 내게, 엄마 열받게 하지 않으려면 또는 손님을 초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늉이라도 해야하겠으나, 하지 않는다고 하여 내 일상이 물리적으로 치명타 입을 일은 없기에 방치하면 그 뿐일, 우선순위도 위상도 가장 낮은 1회성 가사노동 정도였다.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게 태어났을 뿐이기 때문에 잘 해보려고 억지로 애쓰기 보다는, 타고난 성정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하고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매우 뜬금없이, 정리정돈이라는 것이 그렇게 사소한 수준의 도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있었으니....<1일1개 버리기> 라는 책과 <Tidying Up with 곤도 마리에> 라는 Netflix시리즈였다.


#1.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리의 시작은 버리는 것에서부터'라는 말을 귀에 따갑도록 들어도 ‘뭐 그런 당연한 말을,흥!’하고 말았는데, <1일1개 버리기>의 '집이 어질러지는 것은, 내가 정리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라는 글귀 한 마디에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차근차근 하나씩 버리면 너도 할 수 있어' 하는 그 토닥임 한 마디에 책장이 수루룩 넘어가기 시작했다. '대대적으로 날잡고 내다버리려면 막대한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며,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니, 하루에 1개씩 뭐라도 버리는 습관을 들이자, 버릴 수 없는 물건은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요약. 난 그동안 열심히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왜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걸까 했는데, 이 책에 저자가 곁들여 놓은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충분히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버리라고만 했지 '얼마나'를 얘기해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저자가 처음으로 가이드를 제시해준 것 같다.

<Tidying Up>의 한국어 제목은 곤도 마리에의 유명한 어록이자 그녀의 컨설팅 핵심 메세지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이다. 버릴지 말지의 기준이 '설렘' 이라니 너무나 로맨틱하면서도 그보다 합당한 기준이 있을까 싶어 묻따말 따르고 싶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설레였었냐?’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니고 싶을 만큼 설레느냐?’) 나의 경우엔 1일1개 버리기 미션에 앞서, 크게 한 덩어리 시원하게 덜어내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설렘' 이라는 잣대를 갖다대자 이 큰 덩어리가 순식간에 구분되어 나왔다.

버리는 것은, 무엇을 남길지 선택과 집중의 의사결정을 배워 나가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정 이후의 삶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거라고 한다. 뒤에서도 얘기하겠지만, 한 때 돈이었던 물건을 버리는 것은 비경제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매몰비용 청산하여 심플하고 홀가분한 앞날을 살기 위한 기회비용을 챙기는 경제적 의사결정이기도 하다.


#2. 버리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곤도 마리에의 저서<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제목은 내겐, 딱 '안읽어도 되겠다' 라는 결론 내리기 좋은 류의 제목인데 이를테면 정리정돈한다고 인생이 '빛날' 것 까지야...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하는 코웃음을 치게 만든달까. 최근에 이사한 수영이가 <Tidying Up>이 넷플릭스에 올라왔다며 추천할 때만 해도, 옷을 다 걸어서 보관하기로 한 내게 옷 개는 법 따위의 스킬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뭔 의미가 있으려나 했으나, 내가 코웃음 쳤던 책을 TV쇼로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해져 한 편 켜 본 게,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 완료하게 만들었다.

<Tidying Up>은 인생이 빛나게 된 사례를, 의뢰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출연자들이, 'to move forward' 라는 표현을 쓰며 곤도 마리에에게 컨설팅을 의뢰하는데, 계기들은 각양각색이다. 가사에 허덕이다 대화는 짜증으로 끝나는 가족, 자녀들이 다들 독립하고 떠난 노부부, 살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간 가족, 셋째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 부모님을 초대해 더 이상 철부지 대학생이 아니라 성숙하고 진지한 관계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게이 커플,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 그들 모두 입을 모아 얘기하는 고충은 '당췌 정리가 되지 않는 집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한 발짝 나아가고 싶은데 엄두가 안나요'. 이 지점에서부터 난 열심히 이들에게 이입하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가 회사에서 종일 시달리고 돌아와 서로에게 말이 이쁘게 나가겠나?" 라디오스타에서 이효리가 했던 말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생계의 터전에서 치열했던 그날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끝에 날 기다리는 것이, 시각적인 불쾌함과 대면하는 순간 몰려오는 짜증, 치워야 한다는 부담감,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 이 기분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의욕저하를 유발하는 곳이라면? 퇴근 이후의 일상은 나도 모르는 새에 어질러진 공간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잠식되어 온 것이었겠구나, 마음의 짐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꼴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때렸다. 범인을 찾았다!

컨설팅을 받고 정리정돈 과제를 수행하고 난 후, 마음의 짐에서 해방된 부부가 따뜻하고 상냥하게 서로를 대하고, 창고나 다름없던 방을 비워내 자아실현 공간이나 셋째의 방을 마련하고, 홀가분하게 과거를 떠나 보내고 희망으로 빛나는 얼굴로 인터뷰하는 의뢰인들을 보니 어질러 놓은 집이 그동안, 관계, 일상의 감정, 미래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 지배해왔을 거라 생각들며 만감이 교차했다.


#3. 집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가?

곤도 마리에는 의뢰인의 집을 첫 방문하면 적당한 장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그 집(House를 뜻합니다. 집 건물과 공간)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의식을 갖는다 (매우 오그라들면서도 오바스럽지 않나 싶은 대목이긴 하나 저분은 일단 정리 컨설팅으로 나보다 훠얼씬 대성하신 분임을 상기...). 자기가 집에게 인사하는 동안, 의뢰인들에게는 이 집에 우선 감사인사를 하고 앞으로 이 집이 여러분에게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지 그려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려보았다.

돌아왔더니 누가 날 맞이하러 뛰어나오고 이런 거 다 필요없고(라기보다는 현재는 불가하고), 그래 방금 막 메이드가 다녀간 소박하지만 깨끗한 호텔방에 매일 체크인 하는 기분이 드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솟고 영감이 마구 떠올라 주체가 안되고, 대짜로 뻗어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도 '다 잘될거야'라는 희망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또 하나는 울집이, 유부녀 친구들이 남편과 싸우고 애들 냅두고 나와 마음달래는 동안 자신있게 도피처로 삼으라며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내게 몇 년 전 그런 공간이 필요할 때 기꺼이 내어주었던 누군가의 집이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그들의 집이 울집보다 훨씬 넓고 좋기 때문에 그들이 딱히 와 있고 싶어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얘들아, 울집은 방문객 종일주차가 7천원이야. 참고해~


제가 정리정돈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예찬할 날이 다 올 줄은 저도 꿈에도 몰랐으나...그만큼 이 깊은 각성의 사건을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집을 구매하느냐 보다, 내게 주어진 집을 어떻게 대접하고 사느냐가 나의 성장과 건강한 일상을 위해서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라이프스타일을 갈아탄다는 것은 참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오늘도 노력 중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고는 지속적으로 찔끔찔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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