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낯선 나라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여행기… ①

by 제피
바람 불어와 서러운 마음을 달래고 시간은 또 흘러서 언젠가는 그 끝에선 새하얀 웃음으로




도시의 첫인상은 버스나 기차에서 내리고 3초 만에 결정된다. 사람 간의 첫인상도 처음 서로를 보고 순식간에 정해지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예레반(Yerevan, 아르메니아Armenia의 수도)에 막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버스는 터미널도, 정류소도 아니고 중심가도 아닌 길 한가운데에 날 내려주고 떠났다. 현지 언어를 못 하는 외국인 여행자의 숙명이다. 그들이 내려주는 곳에서부터 도시를 떠날 때까지 우리는 이 도시를 사유해야 한다. 그게 여행자의 숙제고, 그걸 해내지 못하면 여행은 찝찝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누군가 여행은 어땠냐고, 뭘 배웠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하거나 어물쩍 넘어가야만 한다. 사유하면 사유할수록 우리는 도시의 한 조각만을 봤음을 깨닫게 되고, 하루 이틀짜리 주요 관광 코스로 빚어진 도시의 후기는 그 앞에서 부끄러워져야 한다. 우리는 도시의 규모가 어떻든 간에, 그 속에 담긴 삶과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도시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버거울 뿐이다.



예레반의 첫인상은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둘째치고, 소련식 건물과 회색의 스모그 띠는 도시를 더 갑갑하게 만들었다. 도로 위에 굴러다니는 차들도 바로 옆 나라인 조지아(Georgia)보다 더 구식이었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매부리코는 은근한 위압감마저 줬다. 그렇지, 이런 곳을 여행해야 진짜 여행이지. 알량한 내 여행 경험으로 도시의 첫인상을 애써 외면하고 자위하며 숙소로 향한다. 예레반에도 지하철이 있지만 단 한 개 노선뿐이고 내가 갈 숙소는 역세권과는 거리가 멀다. 길찾기를 시도하니 버스가 나오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 30분을 걸어가라는 안내가 나온다. 눈앞에 다니는 버스가 몇 대인데! 다행히 지하철을 타나 걸어가나 소요 시간에 차이가 없어 그냥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뒤지기야 하겠어? 최고의 이동 수단은 바로 도보다.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마저 걷기를 통해 붙잡을 수 있고, 같은 거리를 걷는 이들의 표정과 그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웃음, 혹은 고단함도 엿볼 수 있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이야기도 훔칠 수 있다. 도시를 사유하려면, 뭐든 훔쳐야만 한다. 훔쳐야만 내 것이 되고, 보기만 하고 돌려주면 금세 잊기 마련이다.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본 건 ‘만약 소련 시절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딱 적합한 것들뿐이었다. 비참한 소련식 아파트, 그보다 더 비참한 회색의 단층집, 편의점은커녕 동네 슈퍼마저도 드물고, 가끔 보이는 케밥 가게만이 냄새를 흘리고, 신호등마저도 그 빛이 희미해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게 하는 도시. 내가 본 건 그런 것들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창밖으로 같은 것들을 다시 바라본다. 아, 옆집에서 틈만 나면 짖는 개 소리까지 추가. 이 도시는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도시는 입체기 때문에 반드시 여러 방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의 첫인상은 마치 흑백 유화를 보는 것처럼 색이 없어 다가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께서 카톡을 하나 보내셨다. 아르메니아는 안전한가? 아제르바이잔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던데. 나는 2년 전 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이 절망에 빠지고 생활고는 더 심해졌다는 뉴스를 입국하기 전부터 수없이 접했다. 그게 고정관념이 되어 아직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도시를 바라봤던 걸지도. 고정관념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하려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했다.


VideoCapture_20231106-220800[1].jpg 도시를 사유하려면, 뭐든 훔쳐야만 한다. 훔쳐야만 내 것이 되고, 보기만 하고 돌려주면 금세 잊기 마련이다.



숙소에서 20분쯤 걸어 나오면 예레반 기차역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서울역 같은 한 국가의 최대 규모 기차역이지만 시간표와 열차 운행 현황은 썰렁하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과 너무 대비됐다. 역 주변으로는 노점상이 몇 있었고, 창고로 쓰이는 것 같은 건물들이 조금 있었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게 맞나? 아무리 관광지보단 현지인들의 삶의 공간에서 숙박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만 계속 본다면 난 그저 ‘옛날에 소련은 이랬다’라고 보여주는 박물관에 온 느낌만 받고 떠날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퇴근해 보금자리로 돌아갈 시간인데도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숙소 근처를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내일은 시내로 가봐야겠어. 사람들을 보면 뭐라도 훔칠 게 있겠지. 근처의 노점상에서 케밥을 포장해와 먹는 동안 도시엔 어둠이 드리웠다. 새벽 한 시의 예레반은 쌀쌀했고 드문드문 빛나는 도시는 슬퍼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예레반의 중심이자 아르메니아의 심장인 공화국 광장으로 갔다. 역시 시내 한복판은 외곽 지역과는 다르게 번듯한 건물도 많았고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도시는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었고 공원에 설치된 분수대는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도 많았고, 그걸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도 많았다. 날씨도 완벽했고 밥상은 다 차려졌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훔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떻게? 아르메니아어를 하지 못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보고 듣고 쓸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내 입맛에 맞게 상상해서 써내려가야 하나? 고백하자면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가 아닌 소설을 쓰는 건 여름에 대한 모욕이자 실례다. 쾌청하고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이곳의 여름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꽃피우기 가장 알맞은 계절이고 이걸 외면하는 건 도시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내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의자에 앉아 눈앞의 이야기를 구경하다 일어났다.



예레반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예레반 캐스케이드(Yerevan Cascade Complex)일 것이다. 언덕 위에 555개의 계단을 만들고 밖에는 조각 공원, 안에는 미술 단지로 만들었다. 세계의 유명하고 웅장한 관광지랑 비교하면 규모가 보잘것없긴 하지만, 이런 유형의 관광지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오직 예레반만이 가질 수 있는 곳이었다. 조각 공원 옆으로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일렬로 이어졌다. 아마도 아르메니아에서 제일 비싼 곳일 것이다. 평일 업무시간이었지만 레스토랑과 카페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처음에는 ‘일 안 하고 놀고먹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고쳤다. 이런 이들이 있어 도시가 웃을 수 있겠구나. 당장 내가 지금 서울로 돌아가면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 중 한 명이 될 거고 그런 나조차도 서울을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예레반에 오기까지 수많은 도시를 방문해봤고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도시도 여럿 가봤지만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도, 런던(London)에서도, 시드니(Sydney)에서도 평일 낮에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들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 이들을 보고 의문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예레반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걸까. 머릿속을 관통한 제목만 훑고 넘긴 인터넷 뉴스 기사들. 2년 전 전쟁의 패배, 그 이후로도 이어진 국경 분쟁. 나는 비극적인 역사에 매몰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들의 웃음소리와 커피잔에 반사되는 햇빛에 내가 알던 세계가 균형을 잃는다.


VideoCapture_20231106-221043[1].jpg 머릿속을 관통한 제목만 훑고 넘긴 인터넷 뉴스 기사들. 나는 비극적인 역사에 매몰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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