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여행기… ②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이 있었다. 살 건 없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뭘 팔고 뭘 먹으며 사는지 궁금했다. 그 나라를 가장 짧은 시간에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시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시장은 도매시장처럼 큰 건물 안에 상인들이 여럿 있어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내 관심을 끌었던 건 말린 과일을 파는 아저씨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파는 물건에 내가 먼저 흥미를 보였다. 말린 과일 같기도 하고 한과 같기도 한 음식을 궁금해하다 아저씨가 먹어보라고 알라니(Alani, 복숭아와 호두, 꿀을 말려 만든 아르메니아의 간식) 한 조각을 주셨다. 이거 아르메니아 비아그라야. 그래? 머나먼 타국에서 이런 걸 마다할 수 없지. 그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한 입 먹고 힘이 불끈 솟아나는 포즈를 취했다. 노 노~ 이걸 먹으면 힘이 더 나야지. 아저씨는 온몸에 힘을 불끈 내며 다소 민망한 자세를 취하셨다. 디저트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아저씨의 반응에 왠지 모르게 더 먹고 싶어져 한 봉지를 샀다. 가격은 이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시내를 계속해서 걷다가 학생들이 모여있는 걸 봤다. 무슨 일로 모여있나 궁금해 물어봤더니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냥 나를 같이 데리고 들어가셨다. 순식간에 학생들 사이에 낀 동양인 한 명. 갑자기 나는 학생들의 이목을 다 받게 되었고 그 뒤에 이어지는 질문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니하오~ 중국인?
“아냐, 난 한국인이야.”
그때 익숙한 언어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젤리입니다.”
“뭐야, 한국어 할 줄 알아요?”
“초끔, 초끔 할 줄 알아여.”
확률에 대해 생각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학생들의 행사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을 만나게 될 확률. 아무리 여행이 생각하지 않았던 사건의 꾸러미가 딸려 오는 행위라고 해도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은 예상의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잘 지냈어요?”
“잘 지내요. 저 예레반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일부러 한국인이 듣기엔 어색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쉽게 문장을 어설프게 말했다. 그러나 나젤리의 한국어가 예상보다 능숙해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됨을 알았다. 내가 그리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여학생들에게 인기만점이었고 사진을 같이 찍으려고 가던 길을 계속 멈췄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남자애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빨리 가자며 친구들을 재촉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공연장 같은 곳으로 나를 이끌었고 나도 그들과 같이 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갑자기 아르메니아어로 적힌 드라마 포스터 같은 걸 보여줬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서 나젤리에게 물어봤더니 한국 드라마란다. 우리는 아르메니아라는 나라를 잘 모르지만 아르메니아에는 한국 문화가 생각보다 많이 알려진 듯했다. 내가 모르는 티를 내자 남자애는 실망한 듯했고 이후로 그 애와의 대화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젤리는 자기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주며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곤 했다. 한국 가요 뮤직비디오도 보여주며 내가 이만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심지어는 한국 남자와 아르메니아 여자의 커플 유튜브 계정까지 보여줬다. 나는 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열광하고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나젤리의 마음이 공감되지 않는 건 전혀 아니다. 원래 사람이란 좋아하고 배우고 있는 걸 자랑하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무대에서는 시상식도 이뤄지고 공연도 하고 발표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으니 바로 옆에 있는 나젤리의 자랑에 더 집중했다.
무대가 끝나고 나젤리는 자신의 친한 친구 두 명과 나를 데리고 함께 캐스케이드로 데리고 갔다. 분수의 물줄기는 더 강해지고 있었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햇빛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더위가 한풀 꺾이자 사람들의 웃음은 더 진해졌다. 친구들은 캐스케이드의 분수 앞에서 ‘브라질 춤’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게 요즘 이곳 청소년들의 틱톡 유행이란다. 춤이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한, 우스꽝스럽고 흐느적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춤으로 보였다. 이 계절에 딱 맞는 춤. 끝나가는 여름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 머지않아 닥쳐올 추위를 견뎌낼 움직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의 날갯짓. 칙칙한 도시에 색을 더해주는 화가들과 그들의 붓질.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훔치려고 왔지만 이곳에서 내가 본 건 너무 거대해서 감히 들고 갈 수 없었다. 그들의 웃음은 이미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어쩌면 이미 만개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속에서 꽃의 향기, 색깔, 그리고 소리만 들고 가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 온 보람이 있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도 되겠다. 나젤리에게 안녕을 말했다. 브라질 춤을 추던 친구들은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지만 나젤리는 내가 가는 걸 많이 아쉬워했다.
여전히 나는 예레반이라는 도시를 알지 못한다. 누군가 예레반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웃음과 표정도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아니, 일부분이 맞다. 대단한 이야기를 훔쳐오겠다는 목표 아래에서 그들의 밝은 모습만 애써 바라보려 했던 걸지도. 첫인상을 구성하던 무채색 덩어리들이 오히려 진짜 예레반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다. 내가 훔친 여러 색의 표정들로 흑백사진을 알록달록 꾸미는 일. 그들의 행위가 춤으로 보이게 칠하는 일. 내게 그 도시는 무도회장이었고 시민들의 삶은 춤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