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명분이 무엇인가?
TV에서 봤었나, 어디에서 봤었나, 재활용품으로 한강을 건너는 장면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적당히 무모하면서,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되어 보이는 것을 보면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엄청 끓는다. TV 안에 저 사람이 나였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30년 넘게 살아오면서도 많은 것들이 나를 끓게 만들었지만, 끓어 넘친 것에 비해 많은 것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혼자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도전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들은 혼자보단 2,3명이 같이 했을 때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재활용품으로 울산에 있는 강을 건너자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함께 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조건은 두 가지다. 먼저 이 짓에 무조건적인 재미를 느껴야 할 것. 그래야지 논리나 합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끝까지 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여름 방학에 학교에 잔류를 하느냐이다. 학기 중에는 나도 학점을 신경 써야 했기에 다른 것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 학교에 계절학기 수업이나 다른 일로 잔류를 하는 친구들이 필요했다.
소중한 방학에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며 두 번째 이유로 많은 친구들이 거절했고, 두 명의 동생들이 1초의 고민도 않고 같이 하자고 따라와 주었다. "페트병으로 강 함 건너볼래?", "좋아요" 간단했다.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낸다. 이제 주제가 정해졌고 함께 할 친구들도 모았다.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무작정 페트병으로 배를 만들어 건너보자라는 재미로 시작했기에 구체적인 방안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얼마만큼의 페트병이 필요한지, 배는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는 뒷전으로 생각해 두고 내가 계속 생각했던 것은 왜 이 짓을 하는가라는 명분이었다.
그냥 쓰레기로 강을 건넜다고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젊은 애들이 울산 구석에서 모여서 엉뚱한 짓을 하지만, 그 안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담겨 있으면 보기 좋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 이유로 찾은 것은 간단했다. 우리 학교는 어찌 보면 고립되어 있다. 위치적으로 산속에 고립되어 있고, 많은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나가서야 아파트가 있고 상권이 형성된 마을이 나온다. 그로 인해, 근처의 치킨집과 배달음식집에는 저녁마다 전화가 불타고, 밤늦은 시간까지 배달 오토바이가 치킨을 가져왔다. 그렇게 되어 새벽에 기숙사휴게실의 쓰레기통에는 먹고 남은 페트병들이 쓰레기통을 넘어 바닥까지 점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학기 중에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면 페트병이 하루에 100개 정도는 충분히 모인다고 생각했었다. 이 단순히 배달음식으로 소비되고 남은 페트병이 우리 학교의 고질병으로 남게 되어 총학생회나 기숙사자치회 같은 학생단체에서 이를 고쳐보겠다고 여러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이런 배달 쓰레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이를 버려 지기만 보다 새로운 것으로 활용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인터넷과 TV에서 재활용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재활용 분리수거를 통해 어떻게 새롭게 탄생하는지 가까이에서 직접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재료도 충분하고, 재사용됨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겠다는 명분을 만들고, 우리도 그 자리에서 치킨을 시켰다.
강건너는 도라이들이라고 검색하면 아마도 나올 것이다. 명분도 있겠다, 이런 우리의 행동들을 알리고 싶었다. '이 학교에도 이상한 짓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가까운 데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한번 재미있게 봐주세요'라는 취지로 만들었었다. 한 번은 우리와 같은 대학생이 운영하는 페이지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재미있다고 소개해주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우리 진행상황을 계속 업데이트를 할 테니 궁금하신 것 얼마든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엄청 초기에 연락이 왔었고, 우리 페이지를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를 진행하진 못했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썼었더라면 다른 페이지에 소개도 되면서 학교 밖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방학이 되었다.